다음엔 진짜 죽여 버릴 거야 (2024)

우정

by 김민주

다음엔 진짜 죽여 버릴 거야 (2024)


이번 주는 유난히 추운 날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 주말까지만 해도 겨울치고 그리 춥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월요일이 되면서 한파네 뭐네 하면서 기온이 뚝 떨어졌다. 어제저녁에 날씨 어플을 켜고 며칠 간의 날씨를 더 찾아보았다. 다음 주까지는 더 추울 예정이란다. 하필이면, 이런 날을 골라 약속을 잡았다. 눈을 뜨고,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침대 위를 아무렇게나 구르던 핸드폰을 찾아들었다. 통화 목록을 내려 ‘김민주’를 찾았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아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씻고, 준비를 마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시간을 보니 약속시간까지 아직 한 시간 남짓 남았다. 가는 데에 이십 분 정도 걸리니 지금 나가면 너무 이르게 도착한다. 그리고 민주에게서 아직 답장이 없다.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들었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이부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 주었다. 어젯밤에 남편과 먹고 대충 모아둔 설거지거리가 눈에 밟혔다. 아직 출발하기까지 시간이 충분하다. 게다가 아직도 민주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더 많은 시간이 있을 수도 있다. 설거지를 꼼꼼히 할 수 있었다. 마음이 하나도 급하지 않았다.


나는 일단 집에서 나와 운전대를 잡았다. 시동을 켜고, 출발하기 직전에 다시 김민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그래도 출발한다. 나는 시간에 맞춰 가야 하는 인간이라 어쩔 수 없다. 혹시 모른다. 핸드폰을 잘 확인하지 않는 김민주가 내 연락을 미처 보지 못하고 재빠르게 준비를 하고 이미 도착해 있을 수도 있다. 김민주는 그런 녀석이다. 아니다. 어쩌면 어젯밤에도 늦게까지 잠을 못 이루고 있다가, 새벽 늦게서야 잠이 들었고, 지금 아직 깨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잠들면 알람을 통 듣지 못하곤 하는 모양이었다. 뒤늦게 깨어나서 부리나케 전화를 걸어올 수도 있다. 김민주는 그런 녀석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다시 전화를 해봤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 만나기로 했던 곳이 카페 앞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카페에 그대로 들어갔다. 카페에 혼자 가는 일이 별로 없는 나는, 무엇을 시킬지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한참의 고민 끝에 시킨 게 고작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혼자 앉은 나는 음료 한 잔이 나오기까지를 기다리지 못하고 민주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 자식, 나 모르게 지난밤에 죽어 버린 것은 아닐까? 연달아 두 번의 부재중 전화를 더 남겨 놓았다.


30분이 더 지났다. 김민주를 죽여 버릴 것이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그냥 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일정을 정리하고, 멍하니 짧은 영상들을 넘겨 봤다. 핸드폰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갑자기 손 안에서 핸드폰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투머치토커’ 남편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응, 민주 씨 만났어?”

“아니, 아직 못 만났어.”

“오늘 약속, 한시라고 하지 않았어? 벌써 두시 다 되어가는데?”

“응, 죽여 버릴 거야.”


몇 마디를 더 나누고 끊었다. 오빠에게 말하고 나니 화가 치밀었다. 참고 있던 감정이 밀려들어오는 것 같았다. 김민주를 죽여 버리겠다. 김민주를 죽여 버리겠다. 김민주를 죽여 버리겠다. 세 번을 외쳤을 무렵, 핸드폰이 울렸다.


“의정아, 어디야!”


김민주였다. 안도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여기, 카페지~ 빨리 와.”

“안 씻고 가도 돼? 그럼 삼십 분이면 갈 수 있을 것 같애.”


15분 만에 카페의 통창 너머로 캡모자에 후드티의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나온 김민주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 보였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너, 진짜 죽여버린다.”

“미안해, 미안해, 내가 밥 사줄게, 진짜 미안해.”


뛰어오느라고 거칠어진 숨과 함께 쉴 새 없이 미안함과 고마움을 토해내는 김민주를 보면서 요동치던 마음이 잔잔해지는 걸 느꼈다. 비싼 거 사달라고 해야지. 무얼 먹으면 좋을까, 생각하면서 민주의 등짝을 한 번 내리꽂았다.


“너 진짜 죽여 버릴 거야.”

“진짜 미안, 미안…. 뭐 먹을래? 다 말해, 다 말해.”


늦은 점심으로는 맛있는 일식 돈카츠를 먹었다. 카페에 가서 디저트로 스콘을 먹었다. 물론 민주가 모든 걸 계산했다. 다음엔 진짜 죽여 버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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