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너한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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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대전에 갔다 오면서 기차에서 그림을 그린 후로 한 주 내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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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매일 하고 있다. 그림 그려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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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는 그림을 잘 그리지 않으려고 한다. 그림을 왜 그려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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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다니던 어느 날, 자신의 장래희망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___이 되고 싶어요>라고 적힌 종이를 나눠줬다. 나는 그 빈칸에 삐뚤한 글씨로 화가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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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학원에 가고 싶어. 예고에 가고 싶어. 엄마, 아버지에게 할 말이 있다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얘기했다. 성적을 올리면 학원에 보내주겠단 말에 울면서 공부를 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미술 학원에 가기 위해서 꾸역꾸역 울면서 공부를 했다. 360명 정도의 친구들 사이에서 230등 정도를 하던 내가 바로 다음 시험에서 110등 언저리까지 성적이 올랐다. 하지만 미술 학원에 가지 못 했다. 엄마는 '거 봐, 하니까 되잖아.'라고 했다. 예고 입시가 다 끝나고 나서야 미술학원에 등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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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려서 뭐 하려고, 그림 그려서 뭐 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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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일반계고에 진학한 나는 여름의 어느 날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게 됐다. 절룩거리며 교무실에 들어갔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한 명씩 불러 면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1학기 성적표와 모의고사 성적표들을 들썩거리면서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미대 가기 아까운 성적인데, 왜 미대에 가려고?' 미대에 가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한 건데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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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저차 삐뚤 해진 나는 그즈음부터 미술 학원에 가지 않았다. 다리를 다쳐서 가기 힘들다는 좋은 핑계를 댔다. 마치 잠시 쉬는 것처럼 말을 꺼내놓고 주욱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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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저차 학교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성적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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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자퇴 하겠다 하니 엄마가 미술 학원을 다시 보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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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3이 되던 해에, 둘째가 예고에 진학했다. 서른이 넘은 어느 즈음에 엄마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너를 예고에 보내지 않은 것을 계속 후회해서 둘째가 예고에 간다고 했을 때 두말없이 보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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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은 지옥이었다. 바닥을 친 성적을 다시 끌어올려야 했고, 뒤늦게 다시 시작한 미대 입시도 팍팍했다. 그래도 다시 미대에 가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서 지옥 속을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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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저차 미대에 들어갔다. 원하는 대학은 아니었지만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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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려서 뭐 할 건 아니에요. 그냥 그림 그리는 게 좋은데 어쩌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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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가끔 내가 그림을 왜 그릴까? 생각하곤 한다. 어쩌면 하지 못할 뻔한 일에 대한 나의 집착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가 어떤 압박 없이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나를 보면서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정리했다. 그냥 내 인생에 저절로 주어진, 그리고 저절로 내가 가지게 된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 행복하다. 내가 그릴 수 있을 때 그리고,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릴 수 있다는 것이. 그림은 나와 평생을 함께 해줄 친구, 내가 평생을 데리고 갈 단짝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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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오늘은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아서 손도 대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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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싶은 날이 또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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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려야지, 하고는 멍 때리다가 쓰는 어떤 짧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