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라 우리 아가(2024)

만약에

by 김민주

잘 자라 우리 아가 (2024)


어느 신이 있었다. 그는 때로 구름 위에서, 때로 땅 아래에서, 때로 나뭇잎 위 이슬이 되어, 때로 비가 되어 내리면서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어떤 때에 그는 햇살이고, 어떤 때의 그는 바람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비 사이를 가르며 바삐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우산을 줄기차게 때리는 일, 반짝이는 햇살을 번쩍이며 사람들의 눈에 한 번씩 들어가는 일, 나무 사이를 살살 누비며 사람들에게 냄새를 전하는 일, 그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시간들에도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이 있다면 좋겠어. 신이 있다면. 신이 있다면.


바람이 되어서 어느 집의 창문을 두드리고 있을 때, 어렴풋이 들려오는 마음을 그는 들었다. 그는 살짝 열린 창문 틈을 비집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한 아기가 울고 있었다. 한 아이가 울고 있었다. 한 여자가 울고 있었다. 그가 보는 그 여자는 그런 모습이었다. 아기였다가 아이였다가 어른이었고, 다시 아기로 돌아갔다가 아이로 돌아왔다 어른이 되길 반복했다. 신은 창문 틈에 기대앉아 한참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울다 지쳤는지 조용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더니 어느새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가쁜 숨과 울음이 섞여 나왔다. 신은 여자의 눈물이 되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여자의 손이 눈가를 슥슥 문지르니 손등 위에 신이 축축하게 묻어났다.


엄마, 신이 있다면, 나를 엄마가 되게 해 줄 수 있다면 좋겠어. 엄마, 신이 나의 바람을 들어준다면, 내가 당신이 될 거야. 내가 엄마가 될 수 있다면 나는 나를 안아줄 거야. 어느 순간에도. 우는 날 안고 달래줄 거야. 내가 잠에 들지 못하고 울고 있을 때 조용히 다가가서 어깨를 만져주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줄 거야. 어렸을 때 불러줬던 자장가를 다시 불러줄 거야. 괜찮아, 괜찮아, 주문을 외우면서 제 가슴팍을 다독이며 잠드는 나를 본다면 이부자리를 한 번 정리해 주고 손을 잡아줄 거야. 나를 혼자 두지 않을 거야. 동생들을 옆에 눕혀놓고 작은 손으로 아이들을 토닥이며 자장가를 불러주는 나를 본다면, 내 얼굴이 닳도록 쓰다듬어주곤 품에 안아 재워줄 거야.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고 있는 나를 보면 차분하게 기다려줄 거야. 잠든 나의 곁에 나란히 누워서 머리칼을 넘겨주고 나의 꿈에 무서운 게 나오지 않도록 엄마의 주문을 걸어줄 거야. 잘 자라. 잘 자라. 우리 아가.


엄마, 신이 있다면, 나를 엄마가 되게 해 줄 수 있다면 좋겠어. 엄마, 신이 나의 바람을 들어준다면, 내가 당신이 될 거야. 내가 엄마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엄마를 안아 줄 거야. 어느 순간에도. 우는 엄마를 안고 달래줄 거야. 엄마가 잠에 들지 못하고 울고 있을 때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어깨를 쓸어내릴 거야. 오늘도 힘들었지? 잘했어. 괜찮지 않은 하루의 끝에도 괜찮아, 괜찮아, 주문을 외우면서 엄마의 가슴을 다독이고, 잠에 들 거야. 이부자리를 단정하게 정리하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잘 거야. 엄마를 혼자 두지 않을 거야. 손을 내미는 어린 나의 손을 뿌리치지 않을 거야. 작은 내가 잠들었을 때, 얼굴이 닳도록 쓰다듬어주고 작은 나의 품에 얼굴을 기대고 잠이 들 거야.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고 있는 나를 본다면 슬픈 얼굴로 함께 울 거야. 잠든 아기들의 사이에 편안하게 누워서 주문을 외울 거야. 잘 자라. 잘 자라. 우리 아가.


잘 자라. 잘 자라. 우리 아가. 여자는 꿈을 꾼다. 신이 준 꿈 속에서 여자는 여자의 어머니가 된다. 신이 불러주는 자장가를 따라 여자는 꿈을 꾼다. 여자는 꿈속에서 아이들과 단잠에 든다. 잘 자라. 잘 자라. 우리 아가. 편안한 꿈을 꾼다. 아이들은 엄마의 품에서 엄마는 아이들의 품에서 단꿈을 꾼다. 잘 자라. 잘 자라.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든 여자를 토닥이던 신은 다시 바람이 되어 창문 틈으로 나갔다. 여자는 꿈속에서 한참 동안 엄마를 매만지고 품에 안았다. 엄마, 괜찮아. 괜찮아. 고마워. 괜찮아. 여자는 꿈속에서 제 몸보다 훨씬 커다란 엄마를 품에 안고 짧은 팔을 빙 둘러 엄마의 팔 위에 올려놓고 토닥였다. 엄마. 괜찮아. 괜찮아.


잘 자라 우리 엄마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양도 다들 자는데 달님은 영창으로 은구슬 금구슬을 보내는 이 한 밤 잘 자라 우리 엄마 잘 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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