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생각보다 튼튼하답니다 (2024)

비누꽃 한 송이

by 김민주

꽃은 생각보다 튼튼하답니다 (2024)


친구를 마중 나가겠다고 해놓고는 늦잠을 잤다. 지난밤에 잔뜩 긴장을 해서 잠들지 못하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든 탓이다. 혼자서 집 근처까지 온 친구의 전화를 받고 겨우 일어나서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부리나케 뛰어 나갔다. 친구의 손에는 비누꽃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그냥 너 주려고 가져왔어, 라면서 내 손에 쥐어주기에 대전에서부터 이걸 들고 왔어? 하니 그렇단다. 손에 들린 꽃을 만지작거렸다. 꽃. 꽃. 꽃.

함께 점심을 먹고, 빙수가 먹고 싶다는 친구 말에 함께 빙수를 먹으러 갔다가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어떻게 지냈느냐, 물었다.


친구도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괜히 다이어리를 뒤적거리면서 나는 바쁘게 살았어, 이런 얘기를 먼저 했던 것 같다. 테이블 위에 내가 주문한 커피 한 잔과 친구가 주문한 고구마 라떼 한 잔, 그리고 내가 펼쳐 놓은 노트 한 권과 손에 쥔 볼펜 한 자루가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아침에 받은 꽃 한 송이를 눈으로 만지작거렸다. 고개를 숙였다가 친구 눈을 봤다가, 다이어리를 뒤적거리다가 그렇게 말을 꺼냈다. 내가 대전에 가기 전에 실은 유서를 써놨었어. 친구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친 소리 하고 있네,라고 큰 소리를 냈다. 기대해 보자. 실망하더라도 기대해 보자. 어차피 잃을 것 없어 죽기로 했다면, 그 상실감도 실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그러니까 그냥 뱉어나 보자, 새벽 늦게 잠들기 전에 그렇게 마음먹었다. 진짜야, 제정신 아니었어. 친구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그간의 얘기들을 꺼냈다.


실은 그런 생각을 되게 많이 해왔었어. 그게 참 말하기가 힘들었어. 힘들다는 말을 하는 거. 도와달라는 말을 하는 거. 죽고 싶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게, 내가 그런 말을 꺼내면 누군가 내게 물들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았었는지도 몰라. 힘들다는 말을 꺼내면 그냥 그대로 무너져 내릴 거라고 생각했거든, 말하는 순간. 그러다가 작년 가을 다시 상담을 다니게 되면서 그 말을 하게 됐어. 나는 무서운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아서,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걸 사람들이 알면 나를 무서워할 것이라고. 내게 그 생각이 무어냐 묻는 선생님 말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라고 말했어. 그리고 그날부터였던 것 같아. 죽어야겠단 생각이 서서히 들어온 게. 그냥 그게 끝이 없을 것만 같았어. 계속 그래 왔거든. 괜찮은 듯하다가, 또 끝없이 바닥으로 떠내려가는 마음을 억지로 붙들고 끌고 올라오는 게 너무 힘이 들었거든. 그 말을 꺼내고 나서 그게 너무 절망스러웠어. 지금 어떻게 내가 이 상황을 지나쳐 가도, 이다음에 다시 힘들어지는 시기가 오게 되면 나는 또 오늘의 나를 원망할 것 같았거든, 그때 왜 죽지 않았느냐고. 그게 너무 무서웠어. 그러면서도 힘들지 않은 척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고.

길게 자봐야 하루에 두 시간이 겨우였어. 그렇게 일어나면 머리가 아파서 두통약을 먹고, 그렇게 깨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또 큰 컵에 커피를 내려서 새벽부터 도서관에 가서 앉아있는 내게 요새 왜 그러느냐고 니가 물었었지. 그래서 내가 그랬을 거야. 그냥,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아무것도 안 하다가 갑자기 죽으면 억울할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할 땐 이미 죽을 마음을 먹은 후였어. 이렇게 말하는 게 참 미안하지만, 너한테 그냥 좀 언질을 해주고 싶었어. 나 곧 죽을 거니까 마음의 준비를 좀 하라고.


친구는 내 이야기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고, 응, 어, 하며 대답을 붙여주고, 보이지 않는 한숨을 쉬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너한테 이제 와 이런 얘기를 한다는 건, 그냥 그러지 않아 볼까 하고. 내가 정말 죽을 거였다면 오늘 널 만나지도 않았을 거고, 너한테 이런 얘기를 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냥 죽었겠지, 그냥 죽었을 거였으니까. 날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걱정받는 거 싫고, 내가 누구한테 짐이 될 거란 생각 때문에 한 번도 이런 얘기 제대로 꺼내본 적 없는데 그냥 걱정받아볼까 싶어서. 그럼 내가 살 수 있을까 싶어서.


친구는 연신 몰랐다고, 몰랐다고 했다. 그냥 늘 웃고, 자기 얘길 잘 들어주고, 늘 그래서. 늘 맞는 말을 하고 늘 생각이 곧은 친구라고 생각했다고. 재밌고, 좋은 친구라고 그렇게만 생각했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고 그랬다. 나는 그 말에 묘한 섭섭함을 느끼면서도 차마 입 밖으로 더 나오지 못한 친구의 마음이 느껴져서 섭섭함이 금방 가셨다. 그 친구의 마음을 따라가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친구를 지하철역으로 가는 버스에 태워 보내고 나는 혼자 집으로 걸어왔다. 울음이 나오지도, 기쁘지도 않고, 그냥 이상하고 묘한 기분만 맴돌았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비누꽃의 꽃잎 끝부분을 계속 만지작댔다. 주먹 안에 꽃을 감싸 쥐었다가 혹시 망가질까 봐서 다시 살살 손을 펼쳤다. 꽃은 멀쩡했다. 생각보다 튼튼하구나. 그리곤 집에 돌아와 책상 위에 꽃을 올려 뒀다. 친구를 만난 게 꿈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지난밤에도 잠을 잘 못 자서, 그래서 친구를 만나면서 꿈을 꿨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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