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게 생겨서 (2024)

괜찮았으면 해서

by 김민주

귀엽게 생겨서 (2024)


벽에 걸린 그림이 너무 알록달록하고 정신없어서 자꾸만 시선을 빼앗겼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면서 그림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을 때 그녀가 나를 보면서 씨익 웃는 게 보였다.


왜요?

귀엽게 생겨서.


나는 입을 비죽거리면서 웃었다. 언니는 참. 이런 말을 그냥 막 해버린다니깐. 귀엽다는 말에는 유난히 약한 나다. 언니는 내가 입을 비죽거리는 것까지 짚으면서 저 입을 어떻게 할 거야, 같은 말을 했다.


언니, 괜찮지 않을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그녀는 마음을 뒤흔드는 말을 듣고 왔다. 언니는 내게 심란해, 라고도 했다가 또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했다가, 다시 또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언니를 심란하지 않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무슨 말을 해야 마음이 좀 진정될까, 그런 고민을 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언니는 나의 무던한 태도가 좋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아요, 라고 말하는 내가 좋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괜찮아요. 저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말을 했다. 아니다. 언니가 괜찮았으면 해서 내 마음이 그렇게 튀어나온 것이다. 나는 시종일관 괜찮단 말을 했다. 괜찮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지내세요. 괜찮아지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오늘은 내가 이렇구나, 그냥 그 정도 생각쯤으로 해두세요. 너무 애쓰지 말고요. 언니의 표정을 읽기가 힘들었다.


집에 갈래.


대뜸 집에 간다고 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짐을 챙겨 일어난 언니가 팔을 벌리면서 안아줘, 라고 했다.


너한테서는 좋은 냄새가 나는구나.


그런 말을 하면서 카페 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카페에 좀 더 있겠다면서, 카페 앞까지 언니를 배웅했다. 우산을 펼치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같이 몇 걸음 앞까지 나왔다. 나는 담배를 하나 피우고 들어가려 한다면서 지붕 아래로 들어갔다. 나는 지붕 아래에서, 언니는 비가 내리는 하늘 아래에서 우산을 들고선 손을 마주 잡고 인사를 했다. 한 번 더 안아드릴까요? 하곤 손을 잡아끌었다. 응, 하면서 안긴 언니는 나보다 조금 작게 느껴졌다. 오늘 고생했어요, 그런 말을 하면서 등을 토닥거리고 다시 인사를 나눴다.


조금은 비가 그쳤을 때 카페에서 나왔다. 언니는 비가 꽤 올 때 나갔다. 나는 우산을 접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몇 정거장 되지 않는 동안에 책을 읽었다. 꽤 많은 페이지가 넘어갈 동안 나는 틈틈이 언니 생각을 했다. 내가 너무 쉽게 말하진 않았나?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말한 건 아닐까? 무슨 말을 했으면 좋았을까. 무슨 말을 하는 게 정답이었을까. 집 근처의 역에 도착해 나왔을 때는 비가 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둘둘 말아 정리해서 손목에 걸었다. 언니가 가는 길에는 계속 비가 왔을까. 조금 더 언니를 배웅해 줄 걸 그랬다. 비 오는 길을 혼자 보낸 것이 영 마음이 쓰였다. 괜찮다는 말을 했던 건, 아마도 언니가 괜찮길 바라서. 괜찮았으면 해서. 아마도 그래서 그런 말을 해버린 거겠지. 언니는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을 거라고 주문을 걸어두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냐, 이것도 정답은 아닐 것이다. 내가 뭘 해줄 수 있다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귀엽게 웃고 좋은 냄새를 풍기면서 안아주는 일 뿐일텐데. 그런 일이라도 해줘도 괜찮을까요? 그럼 조금은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아냐, 그 조금도 괜찮아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안아줘, 라고 말해줘요. 언니가 필요할 때 언제든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줘요.


작은 자극들도 쌓여서 금이 가게 만들 수 있대.


언니는 문득 그런 말을 했다. 잠깐의 포옹이 쌓여서 언니를 지켜줄 수 있게 해 줘요. 다음에 만날 날에는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더 따듯해진 봄 날씨를 느끼면서, 맑은 하늘을 보면서 날씨가 좋네, 같은 말을 나누고 맑은 하늘 아래에서 언니를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도 언니가 맑은 하늘을 보면서 갈 수 있게.

매거진의 이전글이 연필은 뭐야?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