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미음, 네모.
이상한 마음 (2024)
네모를 하나 그렸다. 손에 잡히는 대로 색연필을 하나 골라 칠했다. 빨간 네모가 되었다. 그 옆에 네모를 하나 더 붙여 그려본다. 다시 손에 잡히는 대로 색연필을 골라 칠하니 노란 네모가 되었다. 그리고 네모, 네모, 네모, 네모를 그렸다. 어느 것에는 하늘색과 노랑을 같이 칠하고, 어느 것에는 검정을 칠하고, 어느 것에는 보라와 분홍을 같이 칠했다. 전부 다른 색을 가진 네모가 모인다. 네모. 네모. 네모.
ㅁ, ㅏ, ㅇ, ㅡ, ㅁ. 나는 마음을 그리려고 하다가 글자를 전부 흐트러뜨려 놓았다. ㅁ, ㅣ, ㅇ, ㅡ, ㅁ, 미음. 그리고 마음 대신에 비슷한 모양을 찾아서 바로 옆에 적어 놓는다. 미음. 미음. 미음은 네모랑 닮았다. 마음을 그리려고 연필이며 색연필을 죄다 꺼내 놓고 결국에 네모를 그린다. 어떤 것은 검정이고, 어떤 것은 노랑과 주황이 섞여 있고, 어떤 것은 보라와 갈색을 섞어 칠했다. 각자의 색을 가진 네모가 점점 모여든다. 미음이면서 네모면서, 마음 대신인 것들이 종이에 가득 그려져 나갔다. 미음이면서 네모면서, 마음이진 못한 것들이.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좀 전에 먹고 온 야끼 소바와 소주 한 병을 떠올렸다. 누군가와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퍽 좋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나는 웃음소리가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내가 했던 말을 곱씹어 봤다. 실수한 것은 없었나?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했나? 내 마음이 잘 전달됐을까? 얼마 전부터 오른쪽 다리가 뻐근하다. 근육통인지 뭔지 모를 것에 시달리고 있다. 허공에 오른 발목을 휘휘 돌려보다가 담배를 끄면서 발을 내려놓았다.
집에 돌아와서 침대 끝에 걸터앉아 다리를 한참 주물렀다. 나는 마음이 드러나는 게 무섭다. 잠깐의 마음이 드러났다가 내가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까 봐. 그래서 한마디의 말을 할 때도 머릿속을 스쳐가는 수많은 단어 중에 가장 내 마음과 닮은 것을 고르려 한다. 그래서 말 틈이 길게 늘어진다. 늘어진 말 사이에 헤아리기 힘든 마음들이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담배를 피우면서 내가 했던 말을 곱씹는다. 내가 가지고 있던 마음과 얼마나 닮았는지 헤아려 보느라고. 마음도 어렵고, 마음을 말하는 것도 어렵다.
마음이지 못한 것들에 칠을 하면서 나는 야끼소바를 떠올렸다가, 소주 한 병을 떠올렸다가, 나의 웃음소리를 떠올렸다. 작은 드로잉 노트 한 면에 수두룩하게 쌓인 네모를 따라서, 아니면 미음에 야끼 소바가 갇혔다가, 소주 한 병이 갇혔다가, 내가 갇힌다. 야끼 소바는 분홍이 되었다가, 소주는 주황이 되었다가, 내 웃음소리는 파랑이 된다. 마음이지 못 했던 것들이 마음에 남아 마음이 되었다. 분명 그저 미음이면서 네모였는데. 분명 그저 야끼소바고, 소주 한 병이고, 웃음이었는데.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노트를 가만히 보면서. 뭐가 마음일까, 어떻게 마음이 되는 걸까, 왜 마음이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네모도, 미음도, 야끼소바나 소주, 웃음 같은 것들도 원래 마음이라서 마음이 되는 건 아닐까. 이상하게도 그냥 원래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냥 원래. 내가 마음을 대신해 그린 것들이니까. 그냥 원래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냥 원래. 그냥 원래. 내 마음은 그냥 원래. 이상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