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둑. 두둑. (2024)

끼익. 끼익

by 김민주

두둑. 두둑. (2024)


비가 온다. 비 예보를 들었을 때 오는 김에 시원하게 쏟아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예상보다 비가 훨씬 많이 내렸다. 그리고 나는 비가 오는 것을 핑계 삼아서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집에 있었으면서.


두둑. 두둑. 닫힌 창문 너머로 빗소리가 넘어온다. 두둑. 두둑. 책상 앞에 앉아서 자주 듣는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놓고, 크진 않지만 귀에 잘 들릴 정도의 소리로 틀어놓았다. 가만히 앉아 발 끝으로 바닥을 짚고 의자를 휘휘 돌린다. 서울에 이사 오면서 산 의자는 꽤나 노쇠했는지 끼익 끼익 소리를 냈다. 끽끽 소리 사이로 빗소리가 올라탔다. 두둑. 두둑. 끽. 두둑. 두둑. 신경을 빗소리에 금방 빼앗기게 된다.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 나도 같은 옷을 입은 채 그 틈에 서서 살살 눈치를 살피곤 했다. 누군가 내 편이 되어주지 않으려나.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는 언제나, 역시 내 편은 없겠지, 하곤 고개를 운동장 바닥으로 쑤셔 박았다. 교내에서 일어나는 그 많은 일들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언제나,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곤 했다.


나, 자퇴하고 싶어.


엄마, 아빠를 앞에 앉혀 놓고 그런 말을 툭 던져놓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묻거든 다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입을 꾹 다물고 소리도 없이 줄줄 울기만 하는 나를 엄마가 흔들면서 재촉했다. 아빠는 가끔 한 번씩, 얘기해 보라고 나를 타일렀다. 미안하지만 얘기하기가 힘들어. 아무도 나를 구해주는 사람이 없어. 엄마, 아빠도 나를 구해주지 못할까 봐 겁이 나. 나는 그냥 이렇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봐, 그냥 어쩔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릴까 봐. 그래서 지금은 말을 못 하겠어.

어느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 교복이 흠뻑 젖도록 비를 맞다가 집에 들어갔다. 엄마는 얘가 왜 이러냐며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거냐며. 뭘 하고 돌아다니긴. 그냥 비를 맞았을 뿐이야. 그냥 비가 그렇게 와서. 그런데 우산이 없어서. 내 편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수군대는 걸 들어 버렸어. 내가 없는 곳에서 내 얘기가 아닌 것들이 내 얘기인 것처럼 퍼져 나가는 것을 알아 버렸어. 그냥 비가 오듯이. 그냥 비가 그렇게 와서. 그런데 우산이 없어서. 그래서 손 쓰지 못하고 그냥 비를 맞은 거야. 어차피 맞을 것을 흠뻑 맞으면 마음이라도 시원하지 않을까 해서 그냥 온몸이 물들도록 두드려 맞았어. 그냥 그런 거야. 별 일 아니잖아. 내가 그렇게 적셔질 때까지 비를 맞아도 우산 하나 씌워주는 사람이 없었는걸. 나 하나 그렇게 흠뻑 젖어드는 건 세상의 별 일이 되진 못하잖아.


그래서 겁이 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비에 맞는데도 그건 그렇게 큰 일은 아니어서, 아니, 엄마에게, 아빠에게, 그렇게 큰 일은 되지 못할까 봐. 그래서 그냥 뭐 그런 일로, 나를 타박하는 사람 중에 엄마, 아빠가 들어가게 될까 봐. 그러면 정말로, 정말 작은 조각도 세상에서 기댈 곳이 없어지게 될까 봐. 쏟아지는 비에 두들겨 맞다가, 맞다가 구멍이 나고, 구멍이 나다가 그저 물컹한 진흙같이 되어버릴까 봐.


두둑. 두둑. 두둑, 두둑.


다행히 혼자서도 빗 속을 뚫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물컹한 진흙이 되기 전에. 끽끽. 내가 움직이는 대로 의자가 소리를 낸다. 10년도 더 된 비가 가끔 흙탕물을 튀긴다. 별 일도 아니면서. 별 일도 아닌 주제에 바지 끝자락을 적시고 물들인다. 별 일도 아닌 일로 젖은 바지 끝자락을 보고 괜히 끽끽 소리를 낸다. 괜히. 정말 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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