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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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비가 주륵, 주르륵 내렸다. 베개에 머리를 뉘이고 얼마 되지 않아서 잠이 드는 줄도 모르고 잠이 들었다. 그러다 천둥이 치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며칠째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아 허기가 느껴졌다. 단식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탓이다. 아버지는 굽힘이 없으시다. 항상 그래 오셨다. 그런 건 그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한 번 아니라고 하면 그걸로 끝인 사람. 나도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고집을 피우는 건, 내가 욕심쟁이라서 그런 걸까. 비가 지붕을 두드린다. 투둑투둑 하던 소리를 들으며 눈을 잠시 감았다가 그 소리가 점점 거세져 이윽고 쿵쾅쿵쾅, 그 소리에 누가 대문짝을 두드리는 줄로만 알고 화들짝 놀라 다시 깨어났다. 낡은 지붕이 처음에 덧대던 날보단 분명 여려졌을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나갔다. 여기저기 좀먹은 낡은 나무 문틀 옆에 우두커니 서서 마당을 쳐다본다. 오빠가 시내로 나가기 전에 어디선가 나뭇가지를 주어와서 삐뚤빼뚤 담을 만들어두고 갔다. 아무렇게나 엮은 나뭇가지들, 우리 집을 지켜주는 담장은 이렇게나 볼품이 없다.
요 며칠 우리 집 개는 마당을 계속 빙빙 돌고 있다. 내가 얘, 얘, 정신 사나우니 그만 돌아라, 해도 들은 체도 않고. 우리 엄마가 개죽을 만들어다 줘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또 마당을 뱅뱅 돌았다. 창가의 벽에 시계가 붙어 있어 무심결에 보니 20분 정도 후면 학교에 갈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그냥 이대로 깨어있기로 마음먹고 창가에 의자를 바짝 붙여 세워 뒀다. 지붕을 망치 같은 것으로 내려찍는 소리를 낸 주제에, 그렇게 나를 깨운 주제에, 처마 끝을 따라 그저 후루룩, 툭, 툭, 지붕을 미끄럼 탄 물방울들이 소심하게 떨어져 내린다. 아버지의 낡은 오토바이를 세워둔 곳 아래에 닭이 앉아 꾸벅꾸벅 졸음을 탄다. 고개를 창 가까이 갖다 댄다. 입김을 부니 내 숨의 따듯함을 빼앗아 가는 대신 창문의 표면에 머물러 있던 가을비의 찬 기운이 볼 위로 기어 올라온다. 처마 밑에 강아지가 넋을 놓고 앉아있다. 나처럼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바닥 위로 툭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푸릇하게 날이 밝아지는 게 느껴진다. 가을의 일출은 어느 때완 다른 것 같다. 곧 겨울이 올 것을 아는 탓인지 같은 푸른빛이면서도 봄동이 틔어 오르는 것과는 다르게 개울물의 푸른빛을 닮았다. 여름에도 발을 담그면 앗, 차, 하고 깜짝 놀라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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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 방에 책걸상과 책장, 그리고 침대, 그리고 옷장으로 가득 차 있고, 침대 끝에 어린 여자애가 걸터앉아 있다.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참이다. 동이 터 오르는 탓에 방 안에 차갑고 푸레한 빛이 돌고 있다.
엄마, 해가 떠오르고 있어요. 엄마. 또, 하루가 생겨나고 있어요. 끝도 없이. 끝도 모르구서요. 나는 하루가 저무는 것도 싫고, 하루가 떠오르는 것도 싫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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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비는 그치고 마당이 밝아졌다. 오빠가 꽂아 놓은 마당 끝의 들쑥날쑥한 나뭇가지들도 마당의 흙고, 강아지의 털 끝도 비를 맞아 척척하게 젖었다. 진흙이 된 마당을 강아지가 또 뱅뱅 돌기 시작한다. 발이고 배고, 꼬리고 뭐고 온몸에 진흙칠을 하며 엉성하게 덤벙덤벙 뛴다. 그걸 가만 보고 있으면 마치 초침이 도는 것과 같아서 나도 모르게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얘, 정신없으니 그만 돌아라, 해도 뱅뱅 돈다. 마당이 강아지 발자국으로 진창이다.
단식 투쟁은 계속되었다. 등교하기 전에도 이러다 쓰러진다, 하시며 내민 아침밥을 기어코 먹지 않았다. 학교에 가서는 엄마 몰래 대충 소금간만 보태 뭉쳐 집어온 보리 주먹밥을 먹었지만. 밥시간에 윤희가 찾아왔다.
너 아직도 단식하니?
응.
물통에 물은 한 움큼 떠 왔는데 목이 막혀도 물은 못 마시겠다. 요새 배가 고파 계속 물을 채워 마셨더니 물만 봐도 신물이 난다.
그만둬라. 맨날 소금 묻힌 보리밥 먹어서 어떻게 살래?
돈 벌어다 동생 학교 보내면 소금 묻힌 보리밥 안 먹는다니?
윤희가 입을 꾹 눌러 닫곤 나를 빤히 쳐다보다 제 도시락 속 김치를 내 가 먹던 주먹밥 위에 올려 주었다.
윤희 너 먹어라.
우리 엄마 김치 맛없어서 맨날 몰래 버리구 가잖어. 너 먹어라.
그런 것 치고 적당히 익은 김치가 맛이 좋았고 윤희는 김치까지 싹싹 도시락을 비웠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니 엄마가 밥상머리 앞에 앉아 골머리를 썩고 있다. 내가 들어가니 또 나를 붙들고 앉혀 밥 좀 먹어라, 밥 좀 먹어라, 하신다.
학교 보내준다고 하면 먹겠다니깐.
너네 아버지 고집 몰라서 그러니, 얼른 밥 먹어, 괜히 몸만 상한다니까.
드물게 밥상 위에 생선구이가 올라와 있다.
옆집에서 생선을 한 마리 줬어, 이번에 추석 선물로 들어왔다면서.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더라니까, 니가 학교 안 보내준다고 밥 안 먹는다고 말야. 너 해먹이라면서 고등어를 덜컥 한 마리 꺼내주더라니까. 그러니까 먹어. 먹어야 학교를 가든 말든 하지.
온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다 알겠는가, 엄마가 여기저기 한숨을 푹푹 쉬며 떠들고 다녔을 테니까 모두들 알겠지. 동네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뻔하다. 기집애가 무슨 고집이 그리 세댜~ 고생이 많네. 이거 하나 줄 테니까 이거라도 먹여, 고등어 먹은 지 오래 됐지? 걔가 생선 참 좋아하잖어, 안 먹고 배기겠어?
나만 먹으라고?
엄마는 생선을 참 맛있게 구웠다. 자주 먹진 못 했지만, 먹게 되는 때면 늘 그렇게 생각했다. 속살이 어쩜 그리 야들야들하게 맛있게 굽는지. 매일매일 먹을 수 있다면 매일이고, 삼시 세 끼고, 계속 계속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안 가득 고소한 생선 기름 냄새와 비린내가 섞여 퍼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아직 밥상 위로 손도 올리지 않고 멀뚱히 앉아있는 내 앞에 밥을 산만큼 퍼서 가져다준다. 표정만 보아서는 나보다는 엄마가 며칠 굶은 사람 같다. 정확히는 내게 밥을 먹이지 못해 안달이 난 표정이겠지만. 나는 여전히 손을 올리지 못하고 밥상 밑에서 치마 끝자락만 만지작댔다.
그래애, 너 먹으라고 구운 거라니깐. 어서 먹어, 어서, 배고프지?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젓가락을 들어 고등어 배를 가른다. 윤기가 잘잘 도는 살들을 발라 집어 들더니 가시가 한 살이라도 남았을까 봐 코앞까지 살점을 가져다 살펴본다. 내가 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나 같아서는 귀찮아서 그냥 꾹꾹 씹어 삼켜버릴 아주 작은 잔가시들까지 손으로 골라낸다. 둥그렇게 쌓인 밥 위로 올라온 예쁜 고등어 살점 하나. 손등을 꼬집는다. 마음 쓸 일이 있으면 늘 하는 버릇이다.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일.
엄마, 내가 바본 줄 알아. 이거 한 점 먹으면 다 없던 일이 되리란 거 모를까 봐?
엄마는 매번 그런 식이었다. 내가 이렇게 별안간 고집을 피우면 어디서 났을지 모를 엿을 한 개 쥐어주고, 우유를 한 팩 쥐어주고, 내가 좋아하는 누룽지를 만들어다 주곤 우리 착한 맏딸이 이번만 넘어가 달라고. 그 말을 할 즈음이면 엿은 이미 진득하게 녹아 뱃속까지 달짝지근하고, 우유팩은 분리수거를 하려고 잘 헹궈 펼쳐놓은 후였고, 누룽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후였다. 그럼 나는 그 어쩌다 한 번 오는 착한 어린애 행세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허망한 표정을 짓는 엄마를 뒤로 하고 잘 맞지 않아 한 번에 열리지 않는 문을 덜컹대며 마당으로 나왔다. 여전히 마당을 뱅뱅 도는 강아지를 지나 그 못지않게 신발 앞코며 옆구리며 진흙을 진창 묻히며 마당 밖으로 빠져나왔다. 옆집 담을 따라 도니 남동생이 서서 신발 바닥 밑으로 작은 돌멩이를 돌돌 굴리고 섰다.
여기서 뭐 해, 아버지 밭일 도우러 안 갔니?
응, 다녀왔어, 좀 전까지, 잠깐 아버지 심부름하러 왔다가.
동생은 말 틈틈이 숨을 섞어 말한다. 말 틈이 긴 편이다. 더 어렸을 땐 곧잘 버벅거리며 말을 하더니 그게 고쳐지니 말을 하는 틈이 길어졌다. 동생은 말끝을 흐리며 자기 발 앞으로 굴러다니는 작고 작은 돌멩이들을 쳐다본다.
아버지, 식사는 하셨니? 심부름하고서 아버지 모셔다가 집에 와 밥 먹어라. 엄마가 고등어 구워 놓으셨더라. 식기 전에 먹어야 맛있어. 엄마, 생선 참 맛있게 굽잖어.
그런데, 왜 누나가 먹지 않고? 누나 생선 좋아하잖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곶감을 들고 태어난 남동생은 모르겠지. 내가 그 맛있는 엄마의 고등어구이를 왜 먹지 않는지.
누나 어제저녁도, 안 먹고, 오늘 아침도 안 먹었잖아. 같이 밥 먹자.
누나는 배 안 고파. 어서 가서 먹어. 아버지도 시장하시겠다.
내 말엔 대꾸도 없이 내 소맷자락을 살짝 잡더니 질질 끌고 앞장선다. 어디 가는 거야, 물어도 아무 말을 않는다.
도착한 곳은 10분쯤 걸어야 나오는 다리 건넛댁 밭 옆에 자그맣게 솟은 언덕이었다. 앞에는 시내에서부터 어쩌면 그보다도 더 위에서 흘러올 개울이 졸졸 또 어딘가 아래로 흘러가고 있고, 봄이면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피어 나와 여동생들이 자주 와서 꽃놀이를 하는 곳이다. 막내가 꽃을 아주 예뻐해서 이곳에 데리고 오면 참 좋아한다. 사실 꼭 여기가 아니어도 봄이 되면 온 동네 천지에 꽃내가 진동을 하지만. 하기야 마을을 둘러싸고 산과 들과 논밭뿐이니 싫다 해도 꽃내가 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여기는 왜?
누나, 밥 안 먹는 것, 나 때문이야?
주저앉은 자리 옆으로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다리가 근질거린다. 치마 옆으로 자꾸 살랑대는 풀잎을 한 장 뜯어 손가락으로 매만진다. 손가락 지문에 잎맥이 묻고, 풀잎의 잎맥에 내 지문이 묻는다.
응? 누나.
그런 거 아니야.
그러면 왜 밥 안 먹고 화를 내는 거야?
내가 너한테 화를 냈어?
동생도 나를 따라 말없이 잎을 한 장 뜯는다. 그리고 또 한 장, 또 한 장, 자꾸 뜯어다가 손바닥 위로 올린다. 나는 내 지문을 묻힌 풀잎의 끄트머리를 손톱 끝으로 뭉갠다.
누나, 나는, 공부하고 싶지 않아.
말없이 손바닥 위의 풀잎을 고르던 동생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풀잎을 고르는 동생의 손끝이 참 다부져 보인다. 어린 동생의 손 끝이 이리 단단할 일인가, 하면서 문득 잎을 뭉개고 있을 내 손 끝을 보면 짧동하게 끝이 나 버린 작은 손이 그리 힘이 없어 보인다.
왜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아, 너랑 오빠는 대학을 하면 아버지가 집 팔고 우리를 팔아서라도 보내주실 건데, 니가 싫다고 해도 그렇게 해주실 거라고.
누나, 누나! 나는 그렇게 하기 싫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생이 소리를 빽 지르는 바람에 반 정도 짓뭉개진 잎을 떨어뜨렸다. 선선한 바람이 그 끝을 잡더니 어디로 데리고 날아가 버린다. 손에 쥘 것을 잃어버린 내게 동생이 손바닥 위에서 고르고 골랐던 풀잎 한 장을 슥 내민다. 손도 내밀지 않고 그저 동생을 향해 웃기만 했다.
너 해라. 집에 가자. 해 지면 추워져.
짧동하게 끝이 나버린 손톱 안 쪽에만 푸레하게 풀색이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