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할 말이 있어

본문 5

by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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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그 애는 자주 그렇게 전화를 해왔다. 하루는 도서관에 있다며 전화를 해오고, 하루는 집에 그냥 누워 있다며, 하루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전화를 하고, 어느 날엔 아침 일찍, 어느 날엔 늦은 밤에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럼 나는 아침에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세수도 못한 채로 전화를 받기도 하고, 양손에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한 손에 몰아 들고 낑낑대며 받는 날도, 설거지를 하려고 일어섰다가 전화를 받고 도로 앉기도, 방금 막 손빨래를 하다 젖은 손으로 대충 핸드폰을 들어 올리기도 했다. 얼마 전에 상담을 다시 받게 되었다며 끅끅 울었던 것은 마치 없었던 일인 양 전화를 할 때마다 딸애는 웃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해도 깔깔거리며 곧잘 뒤집어지며 웃어댔다. 어려서도 잘 웃었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후에 울기를 걱정하고 있는 내 모습 역시 그대로였다. 그때는 웃다가도 곧잘 잘 울더니, 이제 울지 않는다. 왜 울지 않니, 아가, 왜 울지를 않아.


딸애는 주로 같이 자취를 하고 있는 여동생 얘기를 많이 한다. 아니면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이나, 그도 아니면 지난밤에 천장을 기어가는 바퀴벌레를 봤다던지 아침에 밖에 나가보니 눈이 너무 많이 왔더라, 처럼 쓸데없는 이야기만으로도 한 시간 두 시간을 꼬박 채워 떠든다. 나는 주로 애아빠 얘기를 하든가, 막내 얘기를 한다. 그런 얘기를 꺼내면 이 애는 이 세상엔 자기 얘기라곤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처럼 곧장 내가 하는 이야기에 휩쓸려온다. 그 애는 곧잘 그랬다. 자기 얘기를 신나서 하다가도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거기로 훅 빠져들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애의 눈은 반짝거린다. 그 눈빛이 날카롭지 못하고 항상 은은한 빛에 머무른다. 그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그 빛에 빠져 홀린 듯 말을 꺼내게 되는 것이다. 이런저런 시시한 이야기들까지도. 아무리 시시한 이야기라고 해도 그 애는 할 수 있는 만큼을 다해 귀 기울이고 있는 걸로 보인다. 그 속이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그 눈을 마주치고 있다 보면 그렇게 보인다는 얘기다. 얘기를 한창 하며 눈을 마주치고 있다 보면 그 애 눈 속에서 내가 하는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게 보인다. 아마 그 애의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내 얘기가 살아나고 있는 탓이겠다. 이야기를 들으며 딴짓을 한데도, 가령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그 애는 테이블 앞에 앉게 되면 손을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영수증 같은 걸 북북 찢어대거나 티슈 위에 이상한 캐릭터 같은 것들을 그려두고, 그도 아니면 자기가 늘 들고 다니는 드로잉북을 꺼내 의미가 없는 직사각형 같은 것들을 잔뜩 그리며 이야길 듣곤 한다. 그럼 눈도 따라 자기 손 끝을 응시하곤 하는데 나도 그 손 끝을 같이 보고 있다 보면 그 작은 직사각형 하나하나에 필름처럼 내 이야기가 새겨져 들어가는 게 보인다. 그 눈빛의 끝에서 다시 또 영사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내 얘기를 따라 라 꽃이 피고 개울가를 거닐다가도 폭풍우 속에 다 뒤집어진 우산을 든 내가 우두커니 서있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내가 휩쓸렸는지, 그 애가 휩쓸린 건지 모를 이야기 속을 헤매다 문득 또 묻는다. 너는 왜 웃기만 하니, 왜 이제 울지를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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