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할 말이 있어

본문 7

by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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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 말도 마라, 말도 마. 그래서 너네 아빠가.


오늘도 우리의 전화 주제는 애아빠가 되었다. 요새 통 수입이 좋지 않아 온 가족이 골머리를 썩고 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몇 개월, 아니, 정확하게 3년 동안 제대로 된 수입이 들어온 적이 없었다. 대출이란 대출도 다 끌어당겨 쓰고, 현금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다. 애들한테 부담 주지 말자, 괜한 소리 해서 애들까지 속상하게 하지 말자, 생각하면서도 얼마 전 딸애의 집에 갔다가는 사실대로 얘기해 버렸는데 큰애가 특히 많이 충격받은 것 같았다. 입을 열면 자꾸만 이런 얘기가 툭툭 튀어나온다. 아마 나도 요즘 이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탓일 것이다. 게다가 딸애가 얘기를 잘 들어주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입방정을 떤다. 결혼을 하고, 첫째를 낳고 삼사 년 동안은 그래도 꽤 안정적이었다. 새로 구한 신혼집, 아기 용품이 가득한 집안, 안정적인 돈벌이, 나는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두고 전업 주부가 되었다. 아이에게도 최고급까진 못 해주더라도 못나게 해주진 않았던 것 같다. 처녀 적에도 아이를 좋아하긴 했지만 실은 딱히 아이를 가질 생각은 없었다. 낳아서 기를 자신은 없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20대 후반이 되니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니 아이를 낳아야지, 장남인 남편의 어머니가,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시아버지가, 친척 어르신들이 입이 닳도록 아이는? 아이는? 노래를 부르셨다. 그즈음에 내 이름이 '아이는'인가,라고 친구들에게 투덜댔던 기억이 난다. 하도 나만 보면 아이는, 아이는, 하시길래. 그래서 아이를 가졌다. 나는 아이를 낳는다면 딸이 좋겠다고 줄곧 생각해 왔다. 남편에게 그 얘길 하니 딱히 다른 말은 없었지만 시댁에서 그리 아들 노래를 불렀고, 남편도 장남이라는 입장이 있었으니 아마 내심 아들을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딸을 낳았다고 시어머니를 따라 남편도 면박을 주는 일은 없었지만 결국에 아들 하나 보겠다고 삼 남매를 낳은 거니 말은 안 해도 그 속은 뻔하다.


으응, 아빠가 좀 그랬네, 엄마가 속상했겠네.


나는 역시 딸이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애를 좋아한다. 사실 표현이 많은 편도 아니고, 애교도 없다.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다, 특히 내겐. 보통 사람들이 딸을 갖고 싶다고 하면 그런 기대들을 하곤 하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 든든한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건 꼭 내 성격을 닮아 달리 할 말도 없다. 딸은 종종 내게 맏아들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실은 가끔 그렇다기보다 거의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더 어렸을 때, 아주 아기일 때는 예쁜 옷을 입혀 나들이 가는 걸 좋아했다. 어린 시절의 사진에는 늘 꽃무늬 원피스나 드레스 같은 것에 프릴이 달린 양말을 신고 앞코가 둥그런 에나멜 구두를 신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입히기도 입혔지만 애도 그렇게 입는 걸 좋아했다. 양갈래로 높이 땋아 묶어준 머리를 아이가 참 좋아했다. 그렇게 잔뜩 꾸며 데리고 나가면 너도나도 지나가며 어머, 아기가 너무 예쁘다고,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 애를 보다 갔다. 꽃놀이 가서도, 놀이공원에 가서도, 늘 주목을 받았다. 아들이 싫은 건 아니지만 수더분하고 어여쁜 여자아이를 낳아 예쁜 옷을 입혀 나들이를 나가면 좋겠다고, 봄꽃이 피면 그 속에선 아이가 얼마나 이쁠 것이며 여름 볕이 강하게 내리쬐면 그 얼마나 빛이 날 것이며 가을 하늘 아래에서도 아인 그보다도 더 맑음을 자랑할 것이고 흰 눈 사이에서도 곧 올 봄보다도 따듯하니 그것 참 예쁘고 좋겠다고,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을 때부터 생각해 오던 터였다.


그렇지? 생각을 해 봐, 아주 답답하다니까, 너네 아빠. 같이 있으면 속이 터져, 속이. 엄마가 병들면 다 아빠 때문이다.


그래, 그래, 답답한 면이 좀 있지, 아빠가.


딸의 목소리가 눌렸다 풀린다. 아마 전화를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여서 그럴 것이다.


예정일에 가까워졌을 즈음, 의사가 아기가 작다는 얘기를 했다. 혹시나 너무 작아 위험할 정도는 아닐까 걱정을 했다. 이제 와 하는 얘기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엄마라는 것에 대한 자각이 적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알기야 알았겠지만,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뱃속의 아이를 사랑하진 못하고 있었다. 가끔 꿈틀거림이 느껴지기도 하고, 의사가 초음파로 아기를 찍어서 보여주기도 했지만 내가 살아있는 생명을 뱃속에서 기르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나진 않았다. 그저 막달이 되어갈수록 배가 불러 불편하고 힘들었고, 퉁퉁 쪄올라가는 살들을 보면서 마르고 작았던 내가 이렇게 살이 찌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래서인지 걱정을 하기는 했지만, 진짜로 이 애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마음을 다해 속상하진 않았다. 다행히 의사도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해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예정일보다 며칠 늦게 양수가 터졌다. 아기가 작다는 의사의 말과는 다르게 아이는 4.1kg이 막 넘은 몸무게로 태어났다. 그것도 낳는 와중에도 계속 아기가 작다는 의사의 멍청한 말을 믿어 자연분만으로 아이는 태어났고 말할 것도 없이 나는 거의 죽을 뻔했다. 그건 아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가 나오기까지는 한나절이 걸렸다. 머리가 보인다, 보인다, 하더니 이마가 입구에 걸렸다가 또 어떻게 머리가 정말로 나와 이제 됐구나, 싶으니 어깨가 문제였다. 어찌나 온몸에 힘을 주었는지 뼈가 다 으스러지는 것 같고 애를 낳는 게 아니라 장기가 입으로 다 튀어나올 것 같았다. 지옥을 오가던 와중에도 생명체가 왈칵 태어났구나, 하고 딸애가 드디어 밖으로 나온 게 느껴졌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순간, 지금이 진짜 지옥이구나, 생각했다. 분만실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리질 않았다. 양수를 뱉어내고 울음이 터져야 했을 아이가 울지 않은 것이다. 안 그래도 예상보다 길어진 분만 덕에 어수선했던 분만실이 순식간에 전쟁통이 되었다. 내가 무얼 할 새도 없이, 실은 할 수 있는 게 없었겠지만, 아이는 실려 나갔다. 딸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했고, 아이도 나의 얼굴을 한 번 보지 못했지만 나 역시 딸 걱정할 새도 없이 쓰러져 실려 나갔다. 아이는 큰 병원으로 이동해야지만 되는 상황이었다. 오랜 시간 끝에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눈 깜작할 새였지만 사실 그건 생명이지 못 했고, 대신 두 명의 죽어가는 핏덩이가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고,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을 때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허나, 그때 역시 그 애를 내 딸이라고 생각진 않았던 것 같다. 너무 아파서, 너무 힘들어서,라고 하면 그게 엄마냐, 할 일이겠지만 정말로 그랬다. 너무 힘들어서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지도 잊고, 내가 출산을 했다는 것도 잊고, 그저 몸이 너무 아플 뿐이었다.


그래도 사이좋게 지내, 어차피 계속 같이 살 거면서~.


딸은 웃으면서 내 이야길 받아쳐 준다. 그건 그렇지, 그래도 괘씸하니까 그렇지,라고 하면 딸은 그저 웃을 뿐이다.


상황을 안 것은 많은 것이 꽤 정리된 후였다. 남편에게 전해 듣기로 내 몸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덩어리는 엄마 품에 안겨 보지도 못하고 큰 병원으로 이송됐다. 말이 이송이지, 그 작은 산부인과에 응급차랄 건 기대도 못하고, 따로 차를 부르는 것조차 시간이 아까워 애 아빠가 직접 운전을 하고 내달렸단다. 조수석에 앉은 간호사가 아이를 안고 숨을 쉬지 않는 그 애의 입에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그렇게 파란 불인지 빨간 불인지 옆에서 차가 오는지 마는지 사람이 길가에 있는지 마는지도 모르고서 내달려 갔단다. 어차피 뭐가 있었어도 안 보였을 것이란다. 딸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라기보다 통곡을 하며 운전을 해서 앞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단다. 큰일이 났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다른 사람이나 차라도 쳤어 봐, 아니, 사고라도 났으면 애고 뭐고 간호사고 다 같이 죽으면 어쩌라고, 하고 혼을 내니 그냥 눈물이 그냥, 그냥 그렇게 줄줄 나더란다. 그렇게 실려 가서야 아이는 태어났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조차 울지 않았다. 분만실에 들어가 힘을 주느라 나왔던 눈물이 아니고는 그 애를 낳으며, 낳고 나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그 애 역시 그랬지만. 아이는 분만 과정에서 어깨가 부러져 큰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상태였다. 나도 움직일 수 있는 몸 상태는 아니라서 아이를 본 건 아이가 태어난 지 3주가 지나서였다. 머리가 거멓고 커다란 애가 내가 낳은 첫째 딸이라며, 창 너머에서 그 애를 처음 봤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옆에는 배는 작아 보이는 아이들이 이름표를 달고 누워 있었다. 보드랍고 여린 팔다리 사이로 그 애 혼자만 꽤 튼튼해 보이는 기색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그게 마냥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내 애라니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만하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3주 만에 봤으니. 아이가 크는 중간중간, 나와 애 아빠는 그때의 일을 수도 없이 많이 이야기해 줬다. 아이가 속을 썩일 때마다 '그때 엄마가 너를 얼마나 고생해서 낳았는데~ 말 좀 잘 들어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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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를 왜 낳았어요? 왜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짧게 자른 어린 여자애의 단발머리가 축축하게 젖었다. 베개가 젖는 게 싫어, 실은 베개가 젖어 누군가에게 울었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 베개는 젖혀두고 베개가 놓여 있던 자리에 얼굴을 묻어 두었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또 한다. 이미 잔뜩 젖은 이불 안으로 묵묵한 소리를 내며 말이 묻힌다.


왜 낳았어요? 나는 태어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또 하고, 또 하고, 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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