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할 말이 있어

본문 9

by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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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애와의 통화를 마치면 이상하게 늘 마음이 허하다. 한번 통화를 하면 꼭 한 시간이 넘도록 이렇게 떠든다. 아픈 목을 가다듬으려 한번 헛기침을 하고 물을 따라 마시다 다 식어 빠진 커피가 눈에 들어왔다. 딸애한테서 전화가 오기 전에 마시려고 타다 둔 커피였다. 남편과 아직 고등학생인 아들이 각자의 역할을 위해 밖으로 모두 나간 후, 남편이 먹고 담가둔 그릇들을 닦고 청소기를 한 번 돌리고, 세탁기까지 돌려둔 후에 홈쇼핑을 보면서 커피를 한잔 할 생각이었다. 오늘도 통화 한 번에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세탁 바구니를 들고 세탁기 앞으로 가며 쉴 틈이 없구만, 생각했다가 딸이랑 이렇게 통화하는 게 쉬는 거지, 생각을 고쳐먹는다. 며칠 전엔가 우리 큰애랑 비슷한 또래의 아들을 가진 친굴 만났다가 아들이 요새 뭘 하고 사는지도 잘 모른단 얘길 들었다. 전화는 5분이면 끝이고, 집에도 잘 오지 않더란다고. 몇 년 전의 우리 애랑 딱 닮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럴 때가 있나 봐~ 기다려 봐, 우리 애도 그랬잖아. 근데 요샌 전화만 하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니까.'


탈수를 마친 옷들은 아직 눅눅하다. 접어뒀던 건조대를 펼친다. 오후의 햇살이 건조대를 건너서 거실 바닥 위로 떨어진다. 알루미늄으로 된 빨래 건조대의 매끈한 면과 찌그러진 면을 거쳐서 바닥에 불규칙한 반짝임이 떨어졌다.


오늘 날씨가 참 좋네. 빨래 잘 마르겠다.


그런 말을 했던 난 우리 딸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오늘의 한 시간 통화 동안 애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시답잖은 얘기들, 밥은 뭘 해 먹었고, 어제 도서관에서 어느 정도의 진도를 나가려고 했는데 다 하지 못했다고. 그래서 오늘 그것까지 포함해서 할 일이 많아. 다녀와서 청소하려구. 화장실 청소도 해야겠다. 같은 것들. 그런 시답잖은 얘기들. 처음 상담에 다시 다니게 됐단 얘기를 한 후론 그런 얘기는 먼저 꺼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금기어인 것처럼. 축축한 빨래를 하나 집어 들어 허공에 착착 털고 건조대에 잘 걸어준다. 반듯하게 널어야 구김이 덜하다. 바닥에 그림자가 조금 더 늘었다. 그 애는 항상 그랬다. 어렸을 때가 아니고선 힘들단 말을 내게 한 적이 있었나, 힘들었을 것을 안다. 누구나 그러니까. 누구나 힘든 것들을 겪으면서 크니까. 나도 그랬고, 애 아빠도 그랬고, 둘째는 고3 때 힘들다면서 내 앞에서 엉엉 울었다. 엄마, 너무 힘들어, 너무 힘들어, 하면서. 요즘 막내도 곧잘 운다. 눈물이 많은 건 나를 닮아서 집에 와서 우는 일이 많곤 했다. 며칠 전만 해도 친한 친구랑 다퉜다면서 처음엔 흉을 보기 시작하더니 마지막엔 줄줄 울면서 걔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 하고. 그런데 큰 애는 그런 게 없었다. 우는 일이야 많았지만 내게 털어놓는 게 없었다. 내가 답답해서 앉혀두고 말해 보라고, 얘기를 해달라고 해도 끝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더 어렸을 적엔, 그리니까 유치원에 다닐 때 즈음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유치원에서 친구랑 싸우고 와서는 속상하다며 울고, 어딘가 다치면 아프다며 울고, 옆집 강아지가 무섭다며 울었다. 내게 곧잘 안겨서 울었다. 내가 그때 울면 안 된다, 울면 안 된다 해서 그럴까. 그런 걸까. 건조대 위로 놓이는 빨래들이 많아질수록 바닥의 그림자도 많아진다. 그런데 왜 말을 하지 않을까, 분명 힘이 들었을 텐데, 왜 내게 말하지 않았을까. 왜 힘이 든다 말하지 않고 상담을 다시 가게 되었을까. 무언가 있으니까 힘이 든 거 아닌가. 왜. 이윽고 세탁 바구니 속 빨래들을 다 널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아 섬유의 한 올 한 올이 이따금씩 번쩍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방바닥엔 건조대에서 반사되는 작은 빛들을 빼곤 모두 그늘이 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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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 허공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여자는 곧 죽을 것만 같다. 숨이 막힌다.


너무 캄캄해, 불을 켜야 돼. 죽을지도 몰라. 죽을지도 모른다고!


허공을 동동 차던 발길질은 바닥을 내려찍는 것처럼, 사실은 반대로 무릎으로 자기를 내려찍고 있는 것처럼 모양새가 바뀌어서는 괴로워하다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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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가서 산책도 하고 그래, 우울하다고 집에만 있으면 더 우울해져.


나도 알지, 엄마. 세로토닌이라는 게 있대. 그게 빛을 보면 만들어진다더라고. 요즘 공부하면서 알았어. 그게 우울감이랑 관련이 있는 신경전달물질이래. 신기하지? 그놈이 부족하면 우울해진대. 그래서 요새 도서관 가기 전후로 산책도 하고, 아르바이트 끝나고 운동도 해.


잘하고 있네. 그래, 방에 커튼도 좀 걷어두고.


응, 알겠어.


오늘도 왜냐고 묻지 못했다. 내게 말할 수 없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얘기하기 싫은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럼 내가 묻는 것보단 기다려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왠지 통화가 짧았다. 딸애가 도서관에 가야 하니 이만 끊자고 해서 알겠어, 열심히 해, 하고 끊었다. 어제 널어둔 빨래들이 거의 다 마른 것 같다. 바닥에 깔린 카펫 위로 앉았다. 탁자에 놓아둔 커피를 홀짝 마시면서 빨래를 흘깃 쳐다본다. 오늘도 볕이 좋다. 옷들이 보송보송하게 잘 마를 것이다. 우리 애도 볕 받고 보송보송 말랐으면. 울지 않고 씩씩하게. 볕만 좋으면, 볕만 좋으면, 그 볕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났으면. 볕만 좋거든 보송한 향을 내면서 미끄러울 것 없이 마르는 옷가지들처럼. 하지만 내가 흘깃 본 옷 중에는 딸애의 옷은 단 한 장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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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누나!


바람이 동생의 목소리를 막아선다. 나는 아버지가 내게 하시듯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한 체를 한다. 작년 가을에 낫질을 하다 베인 무릎이 괜히 아린 느낌이 든다.


늦은 시간까지 동네를 뱅글뱅글 돌았다. 처음엔 동네를 가운데 두고, 윗동네를 넘어가는 다리까지 갔다가 아랫 고개로 넘어가는 골목의 슈퍼까지 갔다가, 나중에는 우리 집 앞의 조그만 다리를 사이에 두고 뱅글뱅글 돌았다. 우리 집 강아지처럼. 더 시간이 늦어지면 분명 혼이 날 텐데, 그걸 뻔히 알면서도 집을 코 앞에 두고서 뱅뱅이를 돈다. 내가 시곗바늘이었다면 이렇게 돌았으면 벌써 3일 밤은 지났을 것이다.


누나.


다리 건너 골목 입구에서 남동생 목소리가 들린다.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누나. 집에 가자.


그래.


까만 마당을 뱅뱅 돌고 있는 강아지를 지나쳐 집으로 들어간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서 내내 동생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생은 우물쭈물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비가 개고 난 뒤의 흐릿한 비 냄새, 그리고 그 축축함이 아직 가시지 않은 공기 사이로 동생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나는 입 소리가 축축함에 붙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잔뜩 화가 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진 않는다. 나는 그대로 밥상 앞에 앉았다. 고등어는 이미 먹어치워 사라진 뒤였다. 밥그릇에 밥을 조금 퍼와선 맨밥을 꾸역꾸역 삼켰다. 고등어라도 먹을걸. 고등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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