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0
-
남편이 결혼 전부터 하던 사업이 무너졌다. 결혼하며 들어와 살았던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작고 지은 지 꽤 된 아파트였지만 들어가면서 인테리어도 새로 하고 살면서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모양이 퍽 마음에 들었었다. 첫째가 태어나고 추억이 그득그득하던 그곳은 내가 팔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넘어가 버렸다. 되도록 오래 그곳에서 살고 싶었다. 첫째가 좀 더 커서 그 집을 기억할 즈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백일을 맞고, 돌을 맞았고, 처음으로 이가 난 것도, 처음으로 걸음마를 뗀 것도 모두 다 그곳이었다. 하필이면 둘째가 막 태어났을 무렵이었다. 우리 네 식구는 이제 살 집이 없었고, 하나 둘 팔고 보니 최소한의 살림과 첫째에게 입혔던 예쁜 원피스들만 남아 있었다. 남편과는 허구한 날 싸웠고, 갓난아기는 매일 울었고, 나는 하루가 다르게 지쳐갔다. 그즈음엔 많은 걸 놓고 살았던 것 같다. 내가 기댈 곳은 남편도, 애들도 아니고 사실 첫째에게 입혔던 예쁜 원피스들이었다. 나는 그 옷들을 둘째에게 입히지 않았다. 이제 어딘가 놀러 나갈 여력이 없었다. 돈이 없었고, 나와 애 아빠에게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영원하리라 맹세했던 사랑은 공사판의 먼지만도 못 하게 부서져서 모두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원망으로 쌓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 사랑이 사라지고 생만 남게 되었다. 나는 다시 일을 시작했고, 아이들은 근처에서 자취를 하던 막냇동생이 데려다가 나와 교대로 돌보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며 일을 그만뒀던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아 처음엔 아르바이트를 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오히려 그래서 동생과 내가 교대로 애들을 볼 수 있었다. 동생이 일을 하러 가는 시간을 피해 나는 저녁에 근처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고, 내가 출근하기 전 저녁밥이나 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두고 가면, 아르바이트를 마친 동생이 자연스레 우리 집으로 와서 마치 근무교대를 하듯이 잘 부탁해, 인사를 나누고 하나는 집 밖으로 하나는 집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내가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씻고 잘 준비를 마칠 때까지, 11시 정도 즈음까진 아이들을 봐줬다. 가끔씩은 아이들을 하나씩 품에 안고 떠들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까지 남았다 가는 날도 있었다. 남편은 밤낮없이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렇게 우리 둘이 딸 둘을 키웠다. 동생은 내가 결혼을 일찍 한 것도 있고 동생이 동글하니 어리게 생긴 탓에 밖에선 종종 늦둥이 동생 둘을 데리고 다닌다든가, 아니면 사고 쳐서 낳은 딸이라든가 하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막냇동생은 늘 자기도 동생을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었다. 시골이란 게 어디나 그렇듯 남의 집 우리 집 없이 오가다 보니 동네 여기저기에 동생의 동생을 자처하는 어린애들이 많았다. 심성이 곱고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막내가 여기저기 받은 사랑을 뿌리고 다녔던 것이다. 그즈음 저보다 한 두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동네 꼬마들에게 너 같은 동생 하나 있음 참 좋겠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닌 것도 그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 동생이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갈 때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언니, 누나, 하며 따르는 동생들이 항상 많았다. 집에선 늘 챙김만 받고 잔소리만 듣던 막내가 밖에 나가 언니 소릴 들으며 챙겨주는 모습을 봤을 땐 사실 우습다,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나를 도와 아이를 돌보는 모습을 보니 내 그 생각이 참 우스운 생각이었구나, 싶었다. 나도 애를 볼 때 저렇게 웃고, 저렇게 예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나는 거의 확신에 차서 지금에서야 이야기한다. 그때 우리 집에 사랑이라고 할 것은 사랑을 머금고 갓 태어난 아이들과 내 동생밖에 없었으니까.
-
여자의 엄마가 주말에 들러 방에 꽃을 꽂아두고 갔다. 여자는 심드렁하게 앉아 턱을 괴고 꽃을 본다.
난 꽃을 좋아해 본 적이 없어. 예쁘다고 생각한 적도.
좋아하지도 않는 꽃잎을, 혹시라도 상할까 봐서 살살 손끝으로 만졌다가 코 근처로 가지고 간다.
향기롭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그렇게 말하곤 한참을 더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