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할 말이 있어

본문 11

by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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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뜻대로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나는 그럭저럭 적응하며 지냈다. 농사라고 하면 신물이 나서 상고를 택해 이곳으로 왔지만 여전히 농사일을 도운다. 학교를 마치면 집으로 곧장 가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밭으로, 논으로 나간다. 가면 아직 어린 동생들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든다.


언니, 이것 봐라. 올챙이.


올챙이 처음 보니.


막내가 논물과 함께 올챙이를 떠 와서 내게 보여준다. 시큰둥하게 대답하곤 얼른 다시 풀어줘, 올챙이들은 피부가 여려서 우리가 만지면 아파해, 하니 동생이 화들짝 놀라며 다시 물속으로 올챙이를 넣어준다.


것 봐, 내가 만지지 말라고 그랬지?


막내보다 한 살 많은 넷째가 핀잔을 준다. 남동생이 모판을 들고 서서 멀뚱히 쳐다보다 흙길 위에 모판을 내려놓곤 그 옆에 털썩 앉는다.


올챙이가 크면, 개구리가 되는 거야. 너 개구리, 싫어하잖아.


남동생이 말하니, 막내가 입술을 비죽 내민다.


나도 알아, 개구리는 징그러워도 올챙이는 귀엽잖아. 아직 애기잖아.


그 애기가 크면, 그 징그러운 개구리가 되는 거라니까? 어차피, 같은 거라고.


나도 안다니까!


티격태격 실랑이를 한다. 아마 막내를 놀리려 시비를 자꾸 거는 것이겠지. 아버지가 논의 저쪽 끝에서 모를 내다가 남동생을 부른다.


얼른 안 가져오고 뭐 하니!


멀리서 메아리쳐 들려오는 소리가 꼭 귓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귓속으로 파고 들어온다. 아버지는 우리가 실없이 떠드는 것을 싫어하신다. 우리에게 말을 할 때도 꼭 필요한 말 이상으론 하지 않으시고, 우리 역시 그러길 원하신다. 남동생이 다시 벌떡 일어나 모판을 잡아 올린다.


예에, 가요!


내가 상고로 진학한 후로는 통 남동생과 대화를 하는 일이 없어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남동생은 우리 다섯 남매 중에 나를 유난히 잘 따르는 편이었다. 오빠는 아버지를 닮아 말수가 통 없었고, 여동생들은 제 둘째 오빠를 퍽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이 애는 그 둘을 귀찮아하는 기색이었다. 나와 세 살 터울이지만 나와 취미나 취향 같은 게 잘 맞아 퍽 잘 어울렸던 것이다. 사실 이전에 언덕에 앉아 나눴던 말들이 마지막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무어라 말을 걸어도 딱히 목소리를 내어 대답하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는 것 정도는 하지만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나 오빠가 생각나면서도 그래도 그 사람들은 할 말은 한다고! 하고 속에서 불길이 솟았다. 말을 좀 더 걸어볼까 하다가도 나는 이내 그만두었다. 말을 꼭 해야 할까. 그건 내 자존심인지도 모른다. 니가 공부를 하든 말든, 대학을 가든 말든, 니가 무얼 하는 것과 내 인생은 사실 아무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상고에 진학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할 것이다. 버는 돈은 집으로 가져다 줄테고, 동생의 학비가 되어 줄 것이다.


나는 유달리 아이를 좋아하기도 하고, 공부를 하는 것도, 가르쳐 주는 것도 좋아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선생님. 5학년이었던가, 젊은 여자였던 담임 선생님이 뺨을 갈긴 일이 있고 나선 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건 저런 인간도 선생질을 하는데, 하는 그 사람에 대한 경멸이기도 했고, 내가 선생이 된다면 아이들을 더 사랑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그 어느 것이 이유가 됐든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인 헬렌 켈러 위인전에서 나는 설리번 선생님을 만난 대목을 정말 좋아한다. 그게 사실 내가 그 책을 좋아하는 이유의 전부이기도 하다. 내가 선생님이 되어도 그런 위인이 되진 못하겠지, 하지만 그 발끝이라도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선생이 되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쯤에야 그런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선생님이 되긴 글러 먹었다. 다른 무엇도 될 수 없다. 나는 너를 위해 사는 사람, 너, 나의 남동생, 우리의 아들, 너. 나는 그런 존재로 태어난 것이겠지. 이런 마음으로, 나는 일종의 심술을 부린다. 니가 뭔데 내가 먼저 억지로 말을 붙여봐도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냥 고개만 까닥이는 거야. 니가 뭔데. 니가 우리의 아들이라 유세라도 떠는 거냐, 그런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이렇게 심술을 부리는 것이다. 내 속을 니가 얼마나 안다고. 나를 얼마나 이해한다고. 나 대신 돈을 벌 수 있는 건 그 애가 아니다. 그건 나의 오빠가 하게 될 일도 아니고, 그 아래로 있는 여동생이 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란 얘기다. 그래서 나는 내가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을 하나 있는 남동생 탓을 한다. 니가 없었으면 나는 선생님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어린 여자애 뺨이나 때리는 그 선생은 무슨 재주를 타고나 선생님씩이나 될 수 있었을까. 내가 5학년 때의 일이라고 치면 12살이었다. 막내 손을 잡고 동네를 쫄래쫄래 거니는 넷째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종종 그때 생각을 한다. 나는 곧 죽어도 저런 애들 뺨을 때리진 못하겠다고. 그 여자는 나한테 없는 무언가를 가진 걸까, 아니면 나한테 있는 무언가를 그 여자가 가지지 않았던 걸까. 어린 여자애의 뺨을 잘 때리는 게 혹시 선생이 될 자격이 되는 건 아닐까, 선생이 되는 시험을 볼 적에 어린 여자애들 데려다가 뺨을 때려보는, 그런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내 또래 애들 중에서 선생한테 뺨을 맞아보지 않은 애는 없을 테니까. 여자애고 남자애고 선생님의 손바닥이 뺨에 닿을 때 얼마나 매서운 소리를 내는지 모르는 애가 없을 것이다. 허공에 오른손을 휘둘러 본다. 앞에 애 하나가 서 있다고 생각하고. 순간 남동생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그래서 잠깐 놀랐다가, 다시 허공에 손을 휘둘러 본다. 내 손에도 사람의 뺨이 스치면 그렇게 매서운 소리를 낼까. 나는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동생이 미운 걸까.


남들은 다들 그렇게 잘들 산다. 우리 엄마도 그렇게 남동생을 키웠노라고 자랑스레 얘기했었다. 내 친구 윤희도 상고에 들어갔다. 윤희의 꿈은 사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그 애는 그나마 집에 자식이 둘 뿐이라 나와 같은 중학교를 갔지, 그도 아니면 산업체에 들어가 일을 하며 학교를 다니고 그렇게 졸업을 간신히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윤희는 처음부터 제가 돈을 벌어 동생을 키울 생각이었다. 나는 실업계에 가서 기술 배울 거야, 동생 학교 보내야지. 그 녀석은 똘똘해서 공부를 아주 잘할 거야. 동생은 아마 학교를 보내면 큰 사람이 될 거야. 얘, 우리 집에서 용 나는 거 봐라. 내가 보여준다니깐, 하고.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단다. 내 단짝도 그렇단다. 그런데 나는 왜 이리도 욕심이 많은지. 가진 것도 없는 게, 남들 흔히 먹는 곶감도 나는 남동생에게 빼앗겼는데도 나는 욕심을 부린다. 내놔, 니 곶감. 빼앗고 싶다. 빼앗고 싶어. 하지만 빼앗으면 혼나겠지. 아버지께 혼쭐이 나겠지. 아버지가 너를 주려고 어머니에게 시켜 만든 곶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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