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할 말이 있어

본문 12

by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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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려 부쩍 바람이 서늘해졌다. 지난 일주일 동안 딸애는 한 통의 전화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하지 않았다. 뭔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생겨서 딸애에게 연락할 수 있을 만한 핑곗거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더니 하루가 쌓이다 쌓여 일주일이 되어버렸다. 평소 같으면 편하게 전화를 해서 아무렇지 않게 떠들었을 아무런 것도 아닌 이야기들은 그 핑곗거리가 되지 못했다. 그 일주일 동안 나는 즐거웠다. 그건 평소와 같았다.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이어나가고 있는 모임에도 참석하고, 문화센터에서 듣고 있는 꽃꽂이 강의도 다녀왔다. 다음 주에 친구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갈 계획이라 새 캐리어를 사러 다녀오기도 했다. 집에 있던 캐리어를 딸애가 가지고 가서 아직 돌려주지 않았으니까. 캐리어 쇼핑에 막내아들이 쫓아와서 그날은 함께 장을 보고 짐꾼도 되어주었다. 막내는 수다쟁이에다가 애교도 많아 함께 있으면 늘 정신이 없다. 그렇지만 그게 즐거움이 되곤 한다. 내가 무뚝뚝한 탓에 꾸준히 그러기 쉽지 않을 텐데 아무래도 기질이 그런 듯하다. 즐거운 일주일 사이에 큰애는 어디에도 없었다. 작은애는 워낙 독립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큰애와 같이 살고 있는 탓에 항상 큰애가 나와 오랫동안 통화를 하고 동생에게 전달해 주곤 하기 때문에 평소엔 워낙 왕래나 전화통화가 없었지만 괜히 전화를 한 번 걸어보기로 했다. 둘째가 받아선 특유의 심드렁한 태도로 왜 전화했어? 웬일로?라고 했던 것 같다. 그냥 둘째 딸 잘 지내나 해봤지~, 하곤 별다른 얘기 없이 학교 얘기나 여행 간단 얘기 같은 걸 나누다가 말았다. 둘째 입에서 큰애 이름이 나오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 애 이름이 나온다면 필시 안 좋은 일일 거라고,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걷어온 빨래를 개어놓으려고 끙하며 바닥에 앉았다. 옷들 여기저기를 손바닥으로 눌러 만져본다. 널어놓은 지 이틀이나 됐는데 계속 우중충했던 탓에 빨래가 눅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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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방바닥의 가운데 조그만 원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의 끝나지 않는 선분을 쫓아 뱅글뱅글 돈다.


난 돌고 있어. 제자리를. 어쩌면 제자리가 아닌 곳을. 돌고 있어. 돌고 있어. 언제까지. 모르겠어. 나는 그냥 돌고 있어. 엄마. 나는 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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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윤희를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늘도 잘 안 마르겠네.


비가 오는 창 밖을 한참 허망하게 보다 핸드폰을 켜 날씨를 검색해 보니 이번 주 내내 비가 올 거란다.


볕 기다리다간 답이 없겠다.


또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세탁을 마친 옷들을 꺼내왔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게 15살이었는데, 우리 애들이 벌써 나이가 스물이 훌쩍 넘었다.


그러니까. 시간 참 빠르네.


윤희네는 우리 애들 또래의 아들이 둘이 있다. 어려서부터 애들이 반듯반듯하더니 그 모습 그대로 커서 말썽 한 번 없이, 윤희의 속을 썩이는 일 없이 잘만 자라왔다.


얘, 우리 옛날에 고등학교 다닐 때 했던 얘기 기억나니?


무슨 얘기?


윤희가 차를 마시다 말고 별안간 번뜩인다. 아주 재미있는 얘기를 할 것처럼. 윤희는 목소리도 작고 아주 조용하면서도 즐거운 일이 떠오르면 금방 날아갈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이는 버릇이 있다.


우리, 각자 아들 딸 나눠 낳으면은 애들끼리 결혼시키자고 그랬잖아~, 왜. 생각 안 나?


그랬었다. 고3이 되고, 나와 윤희는 취업을 하며 각자 다른 길로 흩어졌었다. 내가 먼저 취직해서 회사 기숙사로 이사를 가던 날, 대수롭지 않아 했던 나와 다르게 윤희는 엉엉 울며 내 손을 잡고 아쉬워했었다. 그날 윤희의 등쌀에 못 이겨 다리 근처에 새로 지은 정자에 앉아 그런 얘기를 했었다.


아아, 생각나지. 언제 얘기했는지도 기억나는 걸. 근데 요즘 세상이 어느 땐데! 우리가 결혼시키고 싶다고 시키니.


애들끼리 좀 만나보라고 할까?


그것도 애들이 바라야 말이지. 게다가 우리끼리 어린 시절에 우스갯소리로 한 걸 요즘 시대에 무슨.


왜애, 그러니까 한 번 물어나 보자 이거지, 우리 아들한테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계속 얘기했는걸?


조용한 윤희는 즐거운 일에는 이렇게 물고 늘어지는 고집이 있다.


얘, 너네 아들이야 번듯하니 사윗감으로 아주 좋지. 애도 멀끔하고 착하잖아.


왜애! 너네 큰 딸이랑 나이 차이도 얼만 좋니. 너네 큰 애도 나는 참 참하고 바르고 싹싹하고 좋던데!


한참을 이 일로 실랑이를 했다. 카페 창밖엔 밥집에 있을 때보다 비가 더 쏟아지기 시작해서 이제 주룩주룩,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요새 비가 계속 오네.


말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가, 안방에 널어두고 온 빨래가 생각났다. 그리고 당연스레 큰애 생각도.


말 돌리려는 거 모를까 봐, 어떠냐니까. 애한테 가서 물어봐 봐~.


아유 거, 고집은! 우리 애 분명 싫다고 할 거라니까. 자긴 결혼 안 할 거라고 했어!


그래도 물어봐~.


늘어지는 윤희의 말끝을 따라 손사래를 치며 알겠다고, 알겠다고 해 버렸다. 윤희는 큰애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 애를 좋아했다. 방긋방긋 잘 웃는다며. 윤희도 아직 첫애만 있을 때라, 작은 꼬마를 하나 달고 자주 집에 놀러 왔었다. 윤희네 아들도 어설픈 말투로 '애기, 애기'하며 우리 애 곁을 맴돌았다. 애는 하나만 낳겠다던 윤희가 마음을 바꿔 먹은 것도 그 모습을 보고 난 후였다.


요새 빨래가 통 안 말라.


왜 이렇게 정신을 빼놓고 있어, 아줌마? 그래서 우리 며느님은 서울에서 잘 지내냐니까.


내가 멍하니 비를 보고 있으니 윤희가 닦달을 한다.


으응, 잘 지내지, 영민이도 잘 지내고?


그쪽 사위도 잘 지내지~, 이번에 들어간 회사에서 대우를 잘해주나 봐. 괜찮게 다니고 있는 것 같아. 자기 적성에도 잘 맞는 것 같고. 근데 며느님은 취직은 여전히 생각 없으시대?


뭐, 그렇지. 자기 하고 싶은 게 있다니까. 그래도 알바라도 하면서 자기 몫은 해.


하고 싶은 게 있는 게 너무 멋있어. 우리 아들이 더 멋있어져야 며느님한테 어울릴 텐데.


뭐라는 거야, 너는 생판 남이니까 그런 얘기하지.


왜, 자부심을 가져, 자부심을!


영민이가 그래 봐라, 너 맨날 천날 나한테 전화해서 죽는소리할 거야, 아마.


비가 그칠까. 일주일이 지난 이다음 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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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방 안에, 노트북을 켜고 앉아있는 여자. 어떤 글을 쓰는 데에 몰두한 듯하다. 쉼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다 잠시 멈칫하더니 책상 위로 머리를 쾅 떨어뜨린다. 그리곤 소리도 내지 않고 엉엉 울고 울었다. 밤이 지나가는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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