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할 말이 있어

본문 13

by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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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뱅 도는 강아지를 마루에 앉아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얘, 너는 무얼 찾아 그렇게 뱅글뱅글 도니?


내가 불러도 이제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턱을 괴고 앉았다. 옆집 담 너머로 흙길을 터덜거리고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금방 익숙한 다리가 삐둘빼둘 꽂힌 나뭇가지들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온다. 시커먼 다리를 타고 올라가 얼굴을 보니 동생이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어디 다녀와?


여전히 우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이 관계가 굉장히 일방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말을 계속 거니까, 계속, 계속. 나를 향해 말하는 소리를 들은 건 족히 1년은 된 것 같다. 작년 이맘 즈음,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으니까. 선선한 가을바람에 묻혀가던 남동생의 목소리를 들은 게 마지막이었으니까. 여전히 고개만 까닥까닥 움직인다. 말없이 신발을 내 신발 옆에 벗어두고 올라가려 한다.


얘, 앉어봐, 여기.


하면서 손목을 잡아챘더니 그새 키가 많이 커서 앉아서 그 애의 손목을 잡으려니 생각보다 팔을 높이 들어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여전히 말이 없다. 신경질이 난다. 정신없이 마당을 돌고 있는 저 개 때문이다. 저놈 때문에, 저놈이 정신없게 하니 내가 성이 나서, 그래서 동생을 미워하고 있는 거라고 착각하는 거다. 동생을 미워하다니, 누나가 되어서 동생을 미워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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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1년 만에 들은 동생 목소리는 변성기가 막 시작되려 하는 탓인지 조금 변해있었다. 나는 오히려 말을 했다는 데에 놀랐다. 무서운 걸 보듯이 찬찬히 손목을 따라 고개를 들어 동생 얼굴을 바라보았다.


앉아 보래두.


내가 이어 말했으나, 내 말을 찬찬히 쳐다보는 동생 얼굴은 잔뜩 화가 나있었다. 너도 저 개 때문에 화가 난 것이지? 네가 나를 미워할 이유가 없잖아. 나는 너를 위해. 난 너 때문에.


동생은 그 이상은 말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다정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분노를 찌그러 삼키는 목소리. 성대를 꾸욱 눌러, 이를 앙 물고 뱉은 소리. 조금만 더 입을 열면 툭툭 입 밖으로 몹쓸 말들이 튀어나올까 봐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 목소리. 동생은 말없이 제 손을 잡아당겨 내 손 안에서 벗어나고는 제 방으로 미련 없이 들어가 버렸다. 나는 손에 있던 걸 힘도 한 번 못 써본 채 멍하니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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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와 다시 전화통화를 하게 된 건, 그로부터도 일주일이 더 지나서였다. 결국엔 참지 못한 사람이 전화를 걸게 되는 것이다. 그건 나였다. 도무지 다른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 정도로 그 애가 생각나서 핸드폰을 켰다 껐다 일주일 내내 반복했다. 통화 버튼 앞에서 손가락이 우물쭈물한 것은 족히 백 번은 될 것이다.


여보세요.


평소와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그 애. 사람 목소리가 보였다면 지금 이 녀석의 목소리는 떨어지는 빗방울 같았을 것 같다. 우렁차게 지붕을 내려찍던 것과는 달리 힘없이 처마 끝으로 주루룩 흘러내리던, 그런 목소리로 '왜?'라고 말을 이어 붙여 온다.


그냥 해봤어, 심심해서. 거기 비 안 오니?


응, 여기 비 안 오는데. 맞아, 거기 계속 비 왔다며? 뭔 일이래, 장마철도 아닌데.


그러니까, 빨래가 안 마른다니까.


그런 목소리치곤 하는 얘기나 말의 본새가 아무 일도 없는 모양이다. 도리어 그게 더 이질감 느껴질 정도로. 방금 막 널어둔 빨래를 넌지시 바라본다.


여긴 해가 쨍쨍해서 요새 빨래가 잘 말라, 좋아.


그래?


그래서 내가 묻고 싶은 건 달리 있었다.


응, 하루면 빨래가 금방 마르던데.


너는 그래서 좀 말랐는지. 나는 그게 궁금했다. 연락을 하지 않았던 몇 주 동안 너는 무얼 하고 지냈는지, 먼저 묻지 않아도 네 입에서 술술 나오던 그 일상이 궁금했다. 엄마, 뭐 해, 하고 전화를 걸어왔던 네가 갑자기 잠잠해졌던 그 이유가 궁금했다.


엄마, 나 지금 도서관에 있어서 다시 들어가 보려고, 왜 전화했어?


아, 도서관에 있어? 별일 아니야, 들어가~.


알겠어. 안녕.


전화기를 내려두고 한참 동안 애먼 방바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 고등학생 즈음해서였나, 집에서 키우던 개가 마당을 빙빙 돌던 모습이 떠올랐다. 텅 빈 방바닥 위로 몸에 진흙을 잔뜩 묻힌 개가 뱅뱅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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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그나마 고개라도 까닥이던 동생은 이제 나를 거의 본체만체한다. 한동안 신경이 쓰이던 나는 이제 그게 익숙해졌다. 마당을 뱅글뱅글 도는 개를 보는 것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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