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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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마지막 통화라는 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오늘은 도서관에 다녀왔니? 가서 무얼 했니? 밥은 먹었는지, 먹었다면 무슨 반찬을 먹었는지도 세세하게 물어봤을 것이다. 오늘은 왜 옛날이야기를 묻지 않았는지 되물어보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귓구멍에,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 그리곤 내가 빼놓고 하지 않았던 얘기가 있다면 빠짐없이 모두 해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밤이 새도록 해주었을 것이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고,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의 첫 번째 아이로 태어난 네가 네 엄마의 수많은 첫 번째 실수를 겪으며 얼마나 잘 성장해 주었는지. 그게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운지. 널 처음 봤던 날 어색해 마지않았던 나지만 그 속으로 얼마나 벅찬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말해주었을 것이다. 너를 앞에 앉혀두고, 오래된 사진을 전부 펼쳐놓고 오래도록 너의 어린 시절을 함께 나누었을 것이며, 그 사진들이 사랑하는 너를 오래도록 담고 싶었던 나의 마음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통화가 마지막이 아니게 될 수만 있었더라면. 목이 쉬도록, 밤이 새도록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서 너의 마음이 동하던 그 시간에 내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면 네가 생각을 바꿀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마지막 통화라고 결정짓고 내게 건 전화였다는 걸 알았더라면, 나는 얼마 전 네가 내게 할 말이 있다 했던 것을 기억해 내고 끈질기게 되물어봤을 것이다. 할 말이 있다던 거 뭐였어? 나를 위했던 길고 긴 배려를 거둘 것이다. 그게 네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라고 하여도, 당장에 너를 힘들게 하는 일이라고 하여도. 너를 끝까지 붙들고 무슨 할 말인데? 기다려 줄 테니까 천천히 말해 보라고. 손에 걸려있던 빨랫감을 천천히 내려두고 네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그게 내 마음을 찢어지게 하는 소리였다고 한대도 제발 말해달라고 사정을 했을 것이다. 그게 조금이라도 네 마음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얘기였다면.
아니, 후회를 할 것이라면 나는 더 오래된 것들을 모두 후회해야 할 것이다. 너와 보낸 많은 시간들과 그 속의 나와 너. 내가 너에게 했던 이야기 하나, 그 속의 단어 하나, 그리고 찰나의 표정과 손짓들. 20여 년의 시간이 쌓이는 동안 내가 놓친 너의 시간들, 너의 이야기, 너의 말 한마디, 너의 표정, 너의 손짓, 그리고 너의 마음들.
네가 건 마지막 통화인 줄 알았다면, 그게 마지막 통화라는 걸 알았다면, 네 손으로 내 번호를 꾹꾹 눌러 걸었던 마지막 전화인 줄 알았다면. 숱한 후회가 모두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자꾸만 넋을 놓고 앉아 그게 마지막 통화가 될 줄 알았다면, 그랬다면, 끝도 없이 되뇌고 죽은 개 한 마리가 내 주변을 뱅글뱅글 다시 돌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