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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예요. 큰딸이라고 할까요, 민주라고 할까요? 엄마가 듣기 좋으신 대로 들으셔요. 음, 갑자기 이렇게 존댓말을 쓰니 엄마가 저를 조금 어색해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저 엄마를 미워할 때도, 서운해할 때도 많았고, 말을 안 들을 때도, 말썽을 부릴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엄마의 의젓한 큰 딸이고 싶었으니까, 든든한 딸이고 싶었으니까, 마지막은 존댓말로 인사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돼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어서, 조금 횡설수설할 것 같아요. 엄마에겐 하고픈 말이 참 많은데, 어쩌면 그래서 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사를 남기자, 생각하고 처음으로 쓰는 편지가 이 글이에요. 아마, 이 편지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계속해서 수정하게 될 것 같아요. 직접 손으로 꾹꾹 눌러써서, 좀 더 마음을 담아, 좀 더 진심 어린 글을 전해드린다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힘이 들 것 같아요. 미안해요. 엄마에게 쓰는 편지는 참 오랜만이네요. 언젠가 엄마 생신 때, 아마 제 기억으로는 성인이 된 후였던 것 같은데, 그때 편지를 썼던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아요. 지금은 그때 무슨 이야기를 썼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엄마는 무슨 편지를 이야기하고 있는지 기억이나 하실까요? 엄마, 마지막이니만큼 하고 싶었던 얘기를 다 하고 싶어서, 물론 대답을 듣지는 못하겠지만, 그래서 이런저런 얘기 그냥 다 하려고 해요. 그래서 이 편지가 엄마를 엄청 힘들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르겠어요. 읽다가 읽다가, 참다가 참다가 너무 힘드시면 그냥 찢어버리세요, 엄마. 어차피 그래도 저는 엄마가 이 편지를 찢었는지 태웠는지 어쨌는지 알 리가 만무하니까. 힘들고 마음 아파도 끝까지 다 읽어달라고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이니까 바라지 않을게요. 딸은 이렇게 힘들다 힘들다 하다 포기해버린 주제에 엄마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읽다 읽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으면 그냥 버려버리세요. 부탁이에요. 저는 괜찮으니까요.
가장 첫 번째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 아주 오래 고민해 보았는데, 역시 가장 처음으로 하게 될 말은 죄송해요, 인 것 같아요. 죄송해요. 정말, 정말로. 정말로 죄송해요. 엄마의 큰 딸이 이리 못나서 죄송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건 그거대로 엄마를 속상하게 만들 것 같으니 이 정도로만 적을게요. 어쩌면 엄마는 늘 저를 불안해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렸을 때엔 엄마가 아무것도 모른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어찌 아무것도 모를 수가 있을까요? 어머니시니까. 저의 엄마니까. 우리 엄마니까. 제가 어렸을 때부터 느껴온 이 불안함은, 어쩌면 엄마는 내가 그걸 인지하기 훨씬 이전부터 알고 계셨고, 또 걱정스러워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 저는 참 겁쟁이였어요, 그쵸? 지금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어렸을 땐 낯도 참 많이 가리고 무서울 것도 많았잖아요. 그래, 무서운 게 많은 건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네요. 아직도 기억이 나요, 처음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거기 있잖아요, 목화영재원에 처음 다니기 시작했었을 때요. 그때 친구들 사귀는 것도 굉장히 힘들어했었어요. 먼저 나에게 말 걸어주는 친구들이 정말 반가웠지만 그렇다고 또 반가운 티를 잔뜩 낼 수 있는 성격도 못 되었죠. 붙임성이 좋거나, 친화력이 좋거나 하지 못해서 먼저 친구에게 다가가는 것도 무서워했고요. 어느 날, 유치원 위층에 있던 식당으로 심부름을 가게 되었었는데, 계단을 오르다 말고 주저앉아서 울었던 게 기억나요. 그날 특별한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어려운 심부름을 하러 간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울고 싶었어요. 그냥 무서웠어요. 그냥 엄마가 보고 싶었어요. 생각해보니 저는 그때도 혼자 숨어서 울었더라구요. 잠시 동안 계단 위에 쭈그리고 앉아서 훌쩍훌쩍 울다가 심부름이 생각나 일어나서 눈물을 슥슥 닦고 마저 계단을 올랐어요.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교실로 돌아갔었구요. 제가 기억하는 첫 번째예요, 혼자 숨어서 울기 시작한.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어쩌면 이유를 모르겠어서 그랬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왜 우는지, 뭐가 무서운지, 뭐가 아픈지 모르니까. 누군가의 앞에서 운다면 분명 왜 우느냐 물어올 테니까 그럼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잖아요. 왜 우는지 모르니까요. 뭐가 그리 무서웠을까요. 그날 왜 그리 마음이 시리고 아팠을까요, 그 계단이 문제였을까요, 심부름이 문제였을까요? 아무 문제 없었던 것 같아요, 엄마, 그냥, 그냥 제가 그런 아이였던 것 같아요. 이유 없이 울 수 있는, 이유 없이 아플 수 있는, 그치만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못하는. 저는 이미 그때부터 이런 사람이었나 봐요. 그래도 잘 지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니 친구들도 조금씩 사귈 수 있었고, 유치원 다니는 것도 적응할 수 있었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그렇고. 저는 늘 내가 모자라고 부족하고, 바보 같고, 단점 투성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제 주변에는 늘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 주곤 했었더라구요. 처음 그걸 느꼈을 땐 참 의아했거든요.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없는데 왜 사람들이 먼저 내게 다가와 줄까, 왜 그렇게 먼저 다가와서는 내 곁에 머물러 줄까, 알 수 없는 일이네 정말,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그게 부담스럽기도 했거든요. 더 가까이 다가오면 내가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게 탄로 날까 봐 노심초사했었거든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 생각보다 저는 괜찮은 사람이었나 봐요. 생각만큼 단점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나 봐요. 아, 어쩌면 단점을 가리려고 이런저런 노력을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전 같으면 엄마는 동의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엄마도 저랑 같은 생각을 하실 거라고 믿어요. 저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실 거라고. 사실 저는 아직도 확신이 없지만요, 엄마는 확신에 차서 이야기해주실 것 같아요. 이제는요.
한창 상담을 막 시작하고, 처음에는 아무 얘기도 못 했었어요. 너무 갑작스럽게 시작한 상담이었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고, 사실 누군가한테 제 얘기를 털어놔 본 적이 없어서 어색하고 무서웠어요. 역시나 무서워했네요. 겁쟁이. 학교에서 만났던 상담 선생님, 정말 좋은 분이셨어요. 덕분에 졸업까지 무사히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야기하기를 무서워하는 저를, 제가 마음 편히 이야기할 때까지 늘 기다려주셨어요. 늘 제 편이 되어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인정해주시고, 공감해주셨어요. 때로는 저 대신 우신 적이 있어서 제가 당혹스러웠을 때도 있었지만요, 정말 좋은 분이셨어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이야기하게 되더라고요. 일상을 나누는 게 아니라 감정을, 기억을 나누는 게 시작된 건 상담을 시작하고도 4~5개월 후부터였던 것 같아요. 꽤 오래 걸렸네요. 그리고 한참 동안, 꽤 오랫동안, 그리고 아주 많이 엄마를 미워했었어요. 다 엄마 때문인 것만 같았고, 모든 걸 엄마 탓하고 싶었어요. 상담이 계속 진행되고 아주 오래전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그때 엄마가 그러지 않았다면, 그때 엄마가 이렇게 해줬더라면, 지금의 내가 이렇지 않을 텐데, 라고 생각했어요. 생각이라는 게 한 번 하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되잖아요. 그래서 꽤나 오래 엄마를 미워했어요. 엄마,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때 엄마한테 편지를 썼던 일이 있었는데, 기억하세요? 그때 한참 책 읽는 걸 좋아했어서, 늦게까지 책을 읽고 있었는데 엄마가 방에 들어와서 이 책 읽어보라고 책을 한 권 주고 가셨어요. 책 제목이나 이런 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얼추 기억하기로는 가족끼리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서로 힘이 되어주는, 따듯하고 포근한 내용의 책이었다고 기억해요. 사실 저 그때부터 이미 늦은 밤까지 혼자 울다 자는 날도 많았고, 그즈음해서 학교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서 옥상 문이 잠겨있는 걸 보고 절망하며 난간에 기대어 울기도 했었고, 내 삶을 버겁다고 느끼곤 했어서 그 책을 엄청 인상 깊게 읽었어요. 우리 가족은 대체로 애정표현이나 감정표현 같은 것에 약했으니까. 가족끼리 그런 말을 주고받는다는 것도 되게 신기했던 것 같아요. 응원해주고, 위로해주고, 지지해주고, 그런 것들이요. 그리고 생각했죠. 우리 엄마가 나를 위로해주는 거라고. 엄마가 그때부터 제가 이미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건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요. 어찌 되었든, 그래서 저도 편지를 쓰고 싶어진 거예요.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었어요. 아뇨, 사실을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어요. 어린 이 소녀의 손을 잡아주십사 이제 학교 옥상에 올라가는 계단 위에서 우는 일을 막아주십사, 나에게 이 삶의 의미를 알려주십사 하고. 도와주세요, 저는 죽는 게 무서운데, 자꾸만 죽고 싶어요, 엄마는 방법을 알고 있겠죠? 엄마니까. 그러니 도와주세요, 저를 막아주세요, 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편지를 쓰면서 손이 자꾸만 덜덜 떨렸어요. 이상하게도 지금은 전혀 손을 떨지 않고 있지만요. 그리고 아침에 학교에 가면서 엄마의 가방에 몰래 넣어놓고 등교를 했어요. 늘 들고 다니는 가방이니까, 여기라면 볼 수 있겠지. 어린아이의 생각에 그런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은 꽤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이 무섭고 싫었으니까, 엄마에게 직접 전해드릴 용기가 없었거든요.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아서 편지를 가방 속에 넣는 작은 손이 덜덜 떨렸어요. 하교하고 돌아왔을 때, 저는 편지에 대해 잊고 있었어요. 집에는 작은 이모도 와 있었어요. 그리고 이모랑 엄마가 그랬죠. 편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엄마를 협박하는 거냐, 집을 나가고 싶다니 방을 구해줄 테니 나가 살겠느냐, 그런 이야기였어요. 기억하세요? 어쩌면 엄마가 말씀하신 의도랑 다르게 제가 알아들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엄마가 이 일을 억울해하실지도 모르고요. 그렇지만 조금 자기방어를 해보자면 저 어린애였고, 제가 멋대로 오해를 했을 수도 있지만, 때로 말하는 의도와 다르게 말하는 투가 그렇게 나올 때도 있구요, 분명히 기억하는 건 작은 이모가 매우 비아냥거리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분위기였다는 거예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더군요. 누군가에게 길고 큰 칼로 가슴팍을 찔린다면 이런 기분일까, 길을 가다 커다란 트럭에 치인다면 이런 기분일까, 갑자기 이 5층짜리 낡은 아파트가 무너져 나를 깔아뭉갠다면 이런 기분일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때 엄마가 조금 더 따듯하게 이야기해줬으면 좋았겠다, 그때 조금 더 신경 써주었으면 좋았겠다, 이런 생각 하시겠지만 그런 건 의미가 없다는 거 아시죠? 아니, 아니, 엄마를 탓하려는 게 아니에요. 이미 지난 일로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지금은 그 일로 엄마를 미워하지 않으니까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 기억이 떠오르고 꽤 오랫동안 많이 괴로웠으니까, 언젠가는 엄마에게 이 얘기를 직접 하면서 엄마랑 대화해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얘기하게 되어서는 그저 일방적으로 제가 엄마 탓을 하는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사실은 내가 조금 더 안정적이게 되면 엄마에게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그냥 그렇게요, 이런 일 있었던 거 기억나, 엄마? 그래서 나 그때 힘들었다, 상담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저 일을 계기로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잘하지 못하는 게, 힘들어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끙끙 앓는 버릇이 굳어졌을 수도 있다고 그러시더라. 엄마, 좀 너무 했지? 하면서 그냥 털어내고 싶었어요. 정말로 괜찮아지고 난 다음에는, 그냥 엄마의 작은 실수였다고 서로 웃어넘기고 싶었거든요. 엄마가 이 일을 기억하고 계셔서, 엄마가 그때 무슨 생각을 하셨었는지 알 수 있다면, 그것도 굉장히 큰 수확이었을 것이고요. 이 이야기로 한참 그림을 그렸었어요. 시리즈로. 그때 저녁 늦게까지 혼자 실기실에 남아서 그림을 그릴 때가 많았는데, 그 시간이 어찌나 괴로웠는지 몰라요. 그런 날이면 늘 어김없이 울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붓을 쥔 손이 캔버스 위를 휘적휘적하고 있을 뿐인데 마치 칼 같은 걸로 나를 찌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내가 그렇게 괴로웠던 건 그저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그런 게 아니었어요. 엄마, 내가 괴로웠던 건 엄마를 미워하는 걸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나는 엄마를 미워할 수 있지? 이 못난 딸이, 이 바보 같은 딸이. 어떻게 엄마를 미워한단 말이지? 누군가는 계속 내 탓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고 있었는데, 저는 계속 제 탓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엄마를 미워하는 나 자신이 밉다 뿐만 아니라 혐오스러웠어요. 잘난 거 하나 없는, 평생을 모자라던 딸이 제 엄마를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괴로웠어요. 엄마,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미안해요. 미워해서 미안해요.
엄마, 저는 다른 사람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살아있었어요. 그건 그거대로 고통스러웠어요. 저는 늘 싸워야 했어요. 죽으라고, 죽으라고, 포기하라고, 그만두라고 늘 저를 닦달하고 있는 저 자신과 조금만 더 힘 내보자, 조금만 더 버텨보자, 조금만 더 견뎌보자 애쓰고 있는 저 자신과. 하루는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제가 되어서 버텨보려 안간힘 쓰고 있는 사람과 싸워야 했고 하루는 버티려고 애쓰는 제가 되어서 죽으라고 등 떠미는 사람과 싸워야 했죠. 결국에 모두가 같은 사람이었지만요. 나더러 죽으라고, 죽으라고 애원을 하던 날에는 제가 그랬어요. 나는 죽을 수 없다고, 내가 죽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겠느냐구요, 나는 그걸 볼 수 없다구요, 너무 마음 아프다구요, 나 때문에 우는 많은 사람들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구요. 그러니까 내가 또 그러더군요. 누가 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다고 그래? 누가 슬퍼한다고 그래? 하물며 어떤 마음 여린 이가 눈물을 흘려준다 한들 넌 죽으면 끝이잖아. 너는 그걸 볼 수 없잖아. 무슨 상관이야? 매일 밤, 그리고 최근에는 밤낮 할 것 없이 계속 싸워댔어요. 끝이 없더군요. 끝이 나려면 누군가 져야하잖아요. 그런데 중재자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양쪽의 말이 모두 맞지만 살아있고자 하는 아이야, 너는 계속해서 이렇게 힘든 삶을 살게 될 거야, 너는 버티지 못할 거야, 니가 한발 물러선다고 해서 지는 게 아니야, 나는 니가 힘들지 않길 바래. 그러니 내가 그랬죠, 아아, 그렇구나. 나는 더 이상 힘들고 싶지 않아, 누구와도 싸우고 싶지 않아, 너에게 내 삶을 양보해 줄 테니 이제 가지고 떠나가렴. 누구도 이기지 않았고, 누구도 지지 않았어요. 저는 저에게 다른 해답을 주었어요. 마음이 편안해요. 사실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무섭지도, 슬프지도 않아요.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에요. 참 어려웠어요, 살아있다는 거, 살아있어야 한다는 거.
엄마가 요새 부쩍 힘들어하고 계셔서 걱정이에요. 그래서 저는 또 하루씩 미루다 미루다, 결국엔 조금 먼 날로 계획을 잡아뒀어요. 그때쯤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엄마가 저를 떠나보내는 일로 힘들지 않았으면 해요. 정말,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렇지만 그것만큼 바라는 게 없어요. 이 글에 어디까지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디까지가 엄마가 받아들이실 수 있는 한계점 일지 짐작이 가지 않아서요, 어쩌면 애당초 이런 글 따위가 없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자 한 자 적을 때마다, 수 천 번씩 생각하고 있긴 해요. 제발, 제발, 제가 신을 믿었더라면 죽어서 그 앞에 찾아가 빌었을 거예요. 처음부터 이 세상에 제가 없었던 걸로 해주세요, 하고. 그래서 어느 누구도 제 죽음 앞에서 마음 쓰는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하고. 그런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겠죠? 어느 것 하나 무섭지 않은데, 오히려 그날을 전 지금 기다리고 있어요. 하루하루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어느 때보다도 편안한데. 그런데 엄마나 아빠나, 우리 가족들, 내 친구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마음 아플 수가 없어요. 이제 그런 거 신경 쓸 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힘이랑 관련 없나 봐요.
깜깜한 밤에, 어딘지 모르는 낯선 곳의 벤치에 앉아서 생각했어요. 처음 보는 이곳이, 낯선 이곳이 나는 어딘지 모르지만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마냥 앉아있지만 그럼 처음 보는 곳이 아니라면, 낯선 곳이 아니라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고 있었을까? 그럼 내가 하릴없이 이렇게 앉아 날이 밝아지기만을 기다릴 일이 없었을까? 엄마 저는 늘 혼란스러웠어요. 나는 누구고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고. 저는 늘 궁금해했어요, 당신은 누구이며 너는 또 어디서 왔고 또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엄마, 이게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아마 저는 죽는 그 순간까지 답을 얻지 못할 것 같아요. 모르고 이대로 떠나도 되는 것일까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너무 혼란스러워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음, 그래, 그 날이었어요. 고등학교 때, 어느 여름의 밤. 집 앞에서 홀연히 사라졌던 날이요. 그날 밤새 길거리를 헤매면서 또 다른 의미로 저는 헤매고 있었어요.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뭘까요, 저 뭘까요? 이게 저한테 왜 그리 필요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누군가는 자신이 누군지 몰라도 잘만 살아가고, 또 누군간 고민 없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곤 하던데, 나는 어느 하나에도 속하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헤매기만 했어요. 걷다 걷다, 걷고 또 걷다 어딘가에 도착하게 되면 그곳엔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그곳에도 아무것도 없더군요. 걸어서, 걸어서 끝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처음으로 다시 돌아온 것일 뿐이었어요. 어디에도 저라는 건 없더군요. 생각해보면 그렇더라구요. 온전히 나라는 인간을 위해서 살았던 적이 있었던가? 너무 어렸을 때의, 기억나지 않는 시기를 제외하고 제가 기억하는 한은 늘 그랬더라구요. 저, 늘 무언갈 원하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다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엄마에게 전 어떤 아이였어요? 어떤 사람이었어요? 저요, 어렸을 때 늘 엄마가 저를 못 미더워한다고 생각했어요. 엄마가 생각하는 저는 늘 바보 같고, 서투르고, 모자란 아이일 거라고.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늘 그렇게 생각했죠. 나는 늘 모자라, 늘 내가 잘못했어, 나만 참으면 돼, 나만 조용하면 돼, 나만, 나만, 다 내 탓이야, 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는 무엇 하나 잘난 것 없는 못난 사람이 되어있었죠.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사실,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되돌아 생각해보니, 저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보살핌 받고 있었다는 걸 알아요. 누군가에겐 내가 정말 중요한 사람이었고, 누군가에겐 내가 정말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죠. 누군가에겐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고, 정말 착한 사람이었고,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렇지만 전 몰랐죠. 저는 늘 제 친구 관계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곤 했어요. 어쩌면 이 세상에 정말 신이란 존재가 있고, 그랬을 때에 신이 보기에도 나는 너무너무 모자란 게 많은 사람이기에, 저 아이를 도와주거라, 하고 내 주변에 너무도 많은 좋은 사람들을 보내주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무언가 일이 잘 될 때, 무언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때, 무언가 성공했을 때, 저는 단 한 번도 그걸 제가 이룬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늘, 누군가가 도와줬기 때문에, 혹은 운이 좋아서, 우연히 생겨난 일이라고 생각했죠. 정말 단 한 번도, 저 스스로 해낸 적이 없었을까요? 저에게 저란 존재는 항상 그런 식이었기 때문에, 저는 사람들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었어요. 언제나 늘, 좋은 일들은 나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저는 뭐든지 혼자서 시작하는 게 두려웠던 거예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으니까요. 늘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무궁한 감사함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었죠. 그 불신이란 게 얼마나 무섭고 끝이 없던지, 옆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내게 칭찬을 해주고, 좋은 평가를 주어도, 저는 그걸 곧이곧대로 들을 수가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어요. 그게 그렇게 불편하더라구요. 이건 겸손함과는 다른 것 같아요. 그냥,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거나,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이 저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당신들이 내게 이런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아주 아주 못났고, 못된 사람이라고. 늘 저 스스로를 증오해온 탓인지, 불신해온 탓인지, 제가 느끼는 저라는 사람은 마치 악의 근원지 같은 느낌이었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두려웠어요. 제가 이 세상의 악이라고 한다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세상의 악을 퍼뜨리는 게 아닐까 두려웠죠. 누군가 나를 깊숙이 아는 게 두려웠어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검은 물을 들일까 봐서요. 저는 늘 그렇게 그런 것들을 노심초사하곤 했는데, 친구들은 저에게 수도 없이 많이, 고맙다거나, 저밖에 없다거나, 좋은 친구라거나, 착하다거나 하는 말들을 전하고, 또 저에게 기대고, 의지하곤 해요. 저는 악일까요, 선일까요. 사람들이 보는 저의 선함은 진정 선일까요, 아니면 꾸며진 선일까요. 지금의 저로서는 어느 것 하나 확언할 수가 없네요. 이렇다 하기에도, 저렇다 하기에도, 그냥 제가 하는 모든 말에, 모든 생각에 실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 엄마가 나에게 '사람은 본래 고독하고 외로운 것이라.'라고 이야기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어요. 나는 울고 있었고, 힘들다고 하고 있었죠. 무엇 때문에 힘든지, 얼마나 힘든지도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저는 그저 힘들다는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숨 쉬는 게 힘들 정도로 괴로웠을 때였죠. 그런데 엄마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눈물이 쏙 들어가더라구요. 엄청난 절망감이 밀려왔어요. 그 이유의 첫 번째로 '사람은 원래 고독한 것'이라면 나는 평생 이 고독함과, 이 외로움과, 이 쓸쓸함과 싸우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그게 참 절망스러웠어요. 자신이 없었구요, 두려웠어요. 그 두려움이 얼마나 크던지 지금 내가 힘든 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구요. 울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했어요. 힘들고 말고, 누구에게 매달려 울 필요 조차 없겠구나, 그런 삶이라면 포기하는 것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는 예전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더군요. 나는 그저, 엄마가 따듯한 말 한마디 해주기를 바라며 그렇게 울었는지도 모르죠. 좋아질 거라는, 거짓말이라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나는 그날 엄마의 앞에서 목놓아 울어버렸는지도 몰라요. 저는, 늘 엄마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면서도 엄마가 내게 끈질기게 물어와 주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다시금 엄마는 사람은 본디 외로우며, 나는 그림을 그리니 더 그런 것일 수 있다, 라며 저를 타이르는 말씀을 하셨죠. 저는 그저 엄마가 많이 힘드냐며 저를 한 번 토닥여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거면 정말 괜찮았어요. 물론 엄마가 나를 위해 해준 말이란 거 알고 있어요. 그때에도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너무 힘들 때였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엄마가 미웠어요. 전혀 힘이 나지 않아서, 그 말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말이었어서요. 시간이 지나고 좀 좋아진 후에 다시 그 일을 떠올려보니 그게 엄마의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아, 엄마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타이르며 살아온 것이로구나, 모두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모두들 외로워하고, 모두들 힘들어하며 살아간다고, 당신의 외로움도 그런 것일 뿐이니 서글퍼 말자고, 당신의 힘든 시기를 그런 식으로 이겨내 온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엄마를 더 미워할 수가 없겠더라구요. 그게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어요. 안쓰러움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해요. 좀 더 단정 지어 말하자면, 미워할 수 없었다기보다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 같아요.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엄마도 무서웠던 게 아닐까.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게 무서웠던 게 아닐까, 하구요. 참 이상하게 엄마가 그럴 거라고 한 번 생각이 들고 나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하는 게 무서워지곤 해요. 그래서 입을 꾹 다물고 살았어요. 마치 엄마 탓하는 것 같네.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일 뿐이니까 엄마를 탓하진 않아요.
엄마, 계속 제자리를 뱅글뱅글 도는 기분이 들었어요. 힘들었다가도 어느샌가 힘듦이 사라지고, 힘들지 않았다가도 다시 힘들어지곤 했죠. 다시 힘듦이 찾아올 땐 언제나 그랬듯이 곧 죽을 것처럼 위태롭게 지냈어요. 힘들 때에는 이러다가 또 말겠지, 하곤 어떤 노력도 없이 희망도 없이 언젠가 수그러들겠지,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냈고 그러다가 수그러들었을 때엔 이러다 또 힘들어지겠지, 불안의 시간을 보냈지요. 어느 시간에도 희망은 없었고, 행복도, 사랑도 없었어요. 저에겐 불안과 불행과 나의 불운을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부터 숨기기 위한 거짓과 가식밖에 남지 않았던 거예요. 나는 멀리 돌지도 못하고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았던 거예요. 불안과, 불행과, 불운 속을 뱅글, 뱅글. 뱅글. 뱅글. 엄마, 더 시간이 지나서는 그 밖으로 나가는 게 무서웠어요. 내가 불행에서 한 발 내딛으면 이 동그란 원이 내 발자국으로 인해 펑 터져서 나의 불행이 밖으로 퍼져나갈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내 주변의 사람들이 불행해질까 봐 무서웠죠. 엄마, 이제 저는 불행을 터뜨렸고 터져 나온 불행들이 저를 잠식시켰어요. 그렇게 저는 죽어가고 있고, 저는 죽을 것이고 이 죽음으로 인해 사람들은 불행 속으로 빠져들겠죠. 터져 나온 불행이 이윽고 사람들을 불행으로 이끄는 것이에요. 그걸 알면서도 나는 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겠어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요. 죄송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실 어떤 말도 해선 안 될 텐데도 저는 엄마에게 이렇게 많은 말을 남기고 가네요. 이것도 죄송해요. 이 편지가 엄마를 어떻게 만들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엄마에게 또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해봐요. 나를 조금은 이해해줄 수 있을까요, 엄마가. 억지로 이해하려 할 필욘 없어요. 세상에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없으니까. 그게 아무리 딸과 엄마 사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남이니까. 엄마가 내 인생을 살아본 것은 아니니까. 내가 엄마의 삶을 살아보지 못해서 엄마를 미워하고 엄마를 싫어했던 시간들처럼 엄마도 나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해도 좋아요. 그게 엄마의 마음을 편히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주세요. 안녕. 안녕, 엄마. 엄마 곁에 더 오래 있지 못해서 미안해요. 다음 생에는 우리 스쳐 가는 친구 사이 정도로 만나요. 서로의 기억 속에서 '그 친구 참 괜찮았는데.'하고 누구 하나가 죽더라도 마음 찢어질 만큼 아프지 않은 정도의 사이로요. 엄마의 딸로 태어나 엄마의 마음을 찢으며 떠나가서 미안해요. 죄송해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