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할 말이 있어

작가의 말

by 김민주

작가의 말


내가 작가의 말을 쓰게 되다니, 이 책을 진짜로 냈다니. 꿈결 같다. 무슨 생각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더라. 그냥 마음속에 있는 걸 툭툭, 내던져 보고 싶었다. 죽고 싶단 생각을 하는 것조차 엄벌을 받아야 할 죄라고 생각했던 예전의 나를 ‘괜찮아, 괜찮아.’ 하고 달래주고 싶어 쓴 글인지도 모른다. 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나 봐요. 이렇게 얘기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러니까 밖으로 나오세요. 나와서 얘기하고, 위로받고, 응원받으면서, 사랑받고 있다는 걸 충분히 느끼면서 우리 같이 살아봐요.’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2017년 가을, 서울로 올라오고 우울증이 극에 치달았다. 그때에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우울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시기적으로 그랬을 수도 있고, 낯선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서울에 온 후, 함께 살기로 했던 친동생이 한 달 동안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위해 떠났다. 그 한 달 사이에 나는 배짝 배짝 말라갔다. 몸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다시 심리상담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내 우울감을 모두 상쇄시켜 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결심을 했다. ‘죽어야겠다.’라고. 그건 내가 죽지 않고서는 이 괴로움이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2018년이 막 시작되었을 때, 유서를 썼다. 그때에는 가족들이 모두 너무 힘들어해서, 내가 그 무렵 죽어버리면 가족들이 얼마나 더 힘들지를 재보느라고 나는 죽을 날을 조금 떨어진 날로 결정해 두었다. 어쩌면 그게 지금까지 나를 살아있게 만들어 준 중요한 결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없었더라면 진작에 죽고도 남았을 만큼 그때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메아리들이 울려 퍼졌다. ‘죽어야 한다.’라고. 실제로 소리가 들렸다기보다 그 생각밖에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소리를 떨쳐버리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흔들고, 바닥에 머리를 쾅쾅 내리찍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다니던 상담도 핑계를 대며 그만두었다.


나는 되도록 일상적인 모습을 유지하려 애쓰면서, 그리고 동시에 죽음을 준비하면서 하루하루를 애써 보냈다. 매일 일기를 썼다.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남길 편지들도 적어 내려갔다, 지금은 엄마에게 썼던 편지밖에 남지 않았지만. 친구들을 만나 마지막 포옹이라고 생각하며 껴안고 돌아왔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동생과도 시시콜콜한 일상을 함께 보냈다. 하던 공부를 끝마치기 위해 도서관에도 매일같이 나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는 주마등을 보듯 과거들을 자꾸 꺼내어 와 보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거지?


나는 포기했던 그림을 다시 그리기로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신 그림을 그만두고 새로 도전하고 있던 심리학 공부를 포기했다. 죽으려고 마음먹었던 때의 글들을 토대로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나 죽으려고 했어.’


그 후로 나는 때때로 술을 마시고 다짜고짜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곧 죽을 것 같아. 언제든지 죽을 수 있을 것 같다고.’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말없이 울기도 했다. 이 자리를 빌려 내 전화를 받아주고 묵묵히, 혹은 이따금씩 날 다그쳐주기도 했던 친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그만두었던 심리상담을 다시 예약했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양극성 감정 장애, 즉 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먹게 됐다.


나는 지금도 일기를 쓰고, 이런 글들을 쓰고, 아직도 사는 건 쉽지 않다. 때때로 아무도 모르게 울기도 하고, 기분이 다시 가라앉을 때면 수면이 어딘지 기억도 못 하고 바닥만 쾅쾅 내리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살 수 있는 것은, 내가 일기를 쓰며 일상을 사랑하게 됐고, 이런 글들을 쓰면서 나를 돌봐줄 수 있게 되었고, 사는 게 쉽지 않더라도 어떻게 살아갈지 궁리할 수 있게 되어서. 그래, 이 글은 내가 살기 위해 쓴 글이다.


이 글에서 ‘엄마와 딸’이 주된 인물로 나오는 것은, 그리고 글의 끝에 내가 엄마에게 썼던 편지를 번외로 붙인 것은 어쩌면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 보다도 엄마에게 나의 우울을 이해받고 싶어서인 것 같다. 하지만 이 글을 엄마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엄마가 보시면 너무 마음 아플 것 같아서. 그래도 나는 보여주고 싶다. 어쩌면 내가 이 글을 책까지 펴낸 것에는 그 이유가 가장 큰 것 같다. 그래도 좀 그럴싸하게 책으로 내서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책을 많이 팔고 싶은 욕심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은 있다. 글솜씨가 좋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봐줄는지 모르겠지만. 봐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그들의 삶을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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