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말> 2
<거짓의 말> 2
비가 오고 있다. 처음 눈을 떴을 땐, 아직 해가 뜨지 않을 시간이라 캄캄했다. 쉬이 잠에서 깨지 않아 뒤척이다가 다시 잠들었다. 요상한 꿈을 꾸다가 눈을 떴다. 여전히 캄캄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미 여덟 시가 넘어 있었고, 눈을 뜨고 있는 것이 퍽 힘들어 다시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빗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와서 캄캄한 거구나, 단지 비가 와서 어두운 것이라는 게 안심이 되었다.
두둑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거짓에 대해 생각해 본다. 빗소리를 들으면 괜히 센치해지곤 하지 않으신지. 나는 그런 경향이 있어, 빗소리를 따라 두둑두둑 바닥을 두드리는 마음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거짓이 될 것을 알기에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거짓이면 생각해선 안되냐고요? 그럴 리가요. 거짓이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 생각이란 걸 하면서 살고 있는 걸요. 그렇게 이 글도 쓰고 있는 거고요. 아무튼, 거짓도 마음이란 게 있긴 해서, 거짓의 마음이더라도 털어놔 보겠습니다.
사실, 거짓은 응애-를 숨기고 태어났으면서 곧잘 우는 아이가 되었다. 느닷없이 빼앵-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왜 우냐 물으면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나도 내가 왜 우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눈물이 나오는데요?라고 대담하게 말할 수 있는 녀석도 아니었기 때문에, 대답 대신 입을 꾹 다물곤 했다.
내가 다니던 유치원은 몇 층 짜리 큰 건물로, 지금은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시점이라 그런지 정확히 몇 층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어린 내가 보기에는 그 몇 층 정도가 아주 크게 느껴져서인지, 아주 큰 건물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 유치원이 몇 층 짜리 건물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고, 교실 내부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어떤 친구들이랑 어울렸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장소가 하나 있다. 계단이다. 나는 그 계단에서 혼자 울었다. 종종 위층으로 심부름을 가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가 내가 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계단을 총총 올라가다 훌쩍거리면서 눈물을 훔쳤다. 내가 기억하는 것 중에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 울었던, 눈물의 첫 번째 기억이 되었다.
왜 울었냐 물으면, 나는 역시 그냥 눈물이 나왔어요-라고 밖에 할 수 없는데 그렇게 말하면 다들 의아해하니까 이유를 찾아본다. 그러면 아무래도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응애-일 수밖에 없는데. 벌써 3편째 응애-에 대해서 쓰고 있기 때문에 지루하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만, 응애-가 시작이었던 만큼 응애-없이는 글을 이어쓰기가 힘들 것 같으니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아무튼, 태어나면서 응애-를 숨겨 놓아 그런지 나는 숨겨 놓는 게 힘들 적에 느닷없이 툭 눈물을 떨궜다. 이를테면 응애-라는 건 물 같은 성질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마음에 응애-를 담아놓는, 컵 비스무리한 것이 하나씩 있는 것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응애-, 응애-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컵에 담아두다가 마침 태어날 때에 가득 차서 응애-! 하고 힘차게 외치게 되고, 컵이 비워진다는 것이다. 반면에 거짓은 응애-를 틔우지 못했으니 그 컵에는 물이 가득 찬 것처럼 응애-가 가득 차 있을 것이다. 표면장력에 의해 버티고 버티다가 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지면 물이 넘쳐나듯이, 응애-가 툭 떨어지면 우르르 쏟아져 내린다. 그럼 그때에 나도 뿌앵-하고 울게 되는 거겠지.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마음이나, 마음속 물이나, 컵이나 모두 보이지 않는 것이니 확신할 순 없다.
사실 정말 왜 울었냐면,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울었다. 7살이 다 되어서야 뒤늦게 유치원에 입학했다. 매일 엄마와 함께였는데, 엄마 없이 혼자 유치원 생활을 하는 것은 정말 고된 일이었다. 예민한 기질 탓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려워했고,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자극들을 견디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아무 때나 울어버리면 울보라고 놀림을 받곤 하니 울음을 꾹 참고 있다가, 계단을 오를 때에야 울 수 있었다. 그마저도 소리 내어 울면 누가 듣고, 왜 울어? 하고 달려들까 봐 눈물만 주륵주륵 흘렸다.
여전히 그렇다. 응애-가 컵의 끄트머리까지 차있는 상태로 세상을 살다가, 알 수 없는 때에 툭 떨어진 응애- 한 방울로 갑자기 눈물이 와르르 나온다. 그것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가지고 태어난 심성인지, 아니면 자라면서 얻게 된 습관인지 잘 모르겠다. 마음의 컵이 보이는 건 아니니까. 분명한 건, 요즈음 컵이 통 비워질 틈이 없었는지 작은 파동에도 쉽게 눈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언제나 응애-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끓고 있다. 여차하면 지금도 울 수 있다. 물론 응애- 하고 울진 않을 것이지만.
하지만 이것도 비 오는 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생각해 보다가 떠오른 거짓에 대한 단상이다. 거짓의 컵 같은 게 응애-를 쏟아낸다고 해도, 거짓의 응애-인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거짓이 하는 말이 거짓말이 되는 것처럼, 거짓의 응애-도 거짓응애-가 될까 봐 눈물을 쏟아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눈물은 그저 다 눈물일 텐데도.
아무튼, 이 글을 퇴고할 때에는 날이 화창했다. 괜스레 센치해지는 일이 없어, 조금은 건조하게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빈 컵을 하얀 천으로 뽀득뽀득 닦아 물기를 없앤다든지, 바짝 마른 뺨을 괜히 슥슥 문질러 본다든지. 응애-가 가득 찼으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