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잘 도착했나요?

<거짓의 말> 3

by 김민주

<거짓의 말> 3


참 이상한 일이다. 초안을 쓰는 날마다 비가 오고 있다. 오늘도 아침부터 빗소리를 들으면서 깨어났다. 어제부터 이어진 비가 오후까지 내렸다. 밤새 요상한 꿈을 잇달아 꿨다. 3시, 6시, 7시에 한 번씩 깨어 뒤척이다가 9시가 넘어서야 침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요상한 꿈 때문이라고 탓하면서 오전 내내 글 쓸 마음을 잡지 못했고, 허공에 마음을 툭툭 던져놨다. 글 쓸 마음이 되면 다시 주워야지, 하며.

오후가 되어 비가 그치고, 카페로 나왔다. 막상 글을 쓰기 위해 던져 놓은 마음을 주우려고 손을 휘휘 저어봤지만, 비가 꽤 와서 그런지 빗물에 모두 떠내려간 모양이었다. 아마 오늘 이 글을 다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 요즘은 글을 쓰는 게 참 힘들다. 쓰고 나서도 마음에 드는 글이 잘 없다.


마음은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아 사실 허공에 마음을 던지는 일 따위 하지 않았다. 마음을 주우려고 손을 휘휘 저어보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글이 잘 안 써지는 것을 날씨 탓으로 돌리기 위해서 그럴싸한 말을 꾸며낸 것뿐이다. 아하하. 역시 거짓스럽네 싶죠?



하지만, 나는 어떤 마음들이 정말 비에 떠내려간다고 생각하곤 한다. 마음은 내 것이면서 온전히 내가 다 가지는 게 참 힘들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지 마세요. 다 아시잖아요. 아무튼, 이전 글에서 말한 것처럼 마음의 컵에는 물이 차니까, 비도 물이니까, 비가 오는 날에는 마음의 컵이 쉽게 차오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은 물과 쉽게 붙잖아요? 한 번 봅시다. 책상 위로 물을 한 방울 떨어트려보세요. 그 옆에 물을 한 번 더 떨어트려봅시다. 슬그머니 착- 달라붙죠? 그런 거죠. 지난 글에서는 응애-의 컵이라고 했는데, 어느덧 마음의 컵이 되어 버렸다. 실은 언제까지고 애처럼 응애-, 응애- 할 순 없을 것 같아서 은근슬쩍 마음이라는 것으로 치환하려는 시도 중이다. 그렇게 달라질 것도 없는 것이, 응애-라는 것 또한 어떤 마음일 것이기 때문에 이 시도에 크게 저항할 필욘 없을 것 같다. 억지스럽긴 하다만, 응애-, 응애- 하는 것이 보기에도 퍽 좋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뭐든 너무 반복되면 질리기 마련이니까.

어쨌든, 그렇다 치고. 응애-나 마음이나 비가 내리면 동력을 잃은 보트처럼 그저 망연히 물결을 따라 흘러가곤 한다. 특히나 이렇게 이틀 연달아 시원스레 비가 내리는 때에는 노트를 찢어 접은 종이배 정도가 되겠다. 모서리를 잘 맞춰 손톱으로 꾹꾹 눌러가며 접은 종이배는 각이 살아있어 꽤 단단하고 날카로워 보인다. 어떤 파도에도 지지 않을 것만 같아 물 위에 배를 띄워 보낸다. 잘 가. 나 대신 바다까지 가. 내가 물고기 같은 것도 아니면서, 괜히 '나 대신'이라는 말을 붙여 보냈다. 이렇게 하면 왠지 미숙한 종이배가 나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헤엄칠 것 같으니까. 거짓된 소원을 업은 종이배가 물결을 따라 열심히 팔다리를 구른다. 영차, 영차, 바다까지 가자, 민주를 위해서 바다까지 가자. 그러나 어제오늘처럼 이렇게 비가 내리 오는 날을 그가 버틸 턱이 없다. 종이는 물에 젖기 마련이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방울까지 맞아가면 영락없이 가라앉을 것이다. 아아, 아마도 내 시야에서 사라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단단하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다 잃고 흐물흐물 가라앉을 텐데, 바다는커녕 한강에도 닿지 못했을 것인데. 나는 그 종이배가 저 멀리 외딴섬에 도달해, 그 섬의 한 원주민이 그것을 주워주는 상상을 하고 있다. 그는 고달픈 여정을 견뎠을 종이배를 두 손으로 소중히 건진다. 해가 쨍쨍한 날을 골라, 모래사장에 홀로 쭈그려 앉아서 그 앞에 종이배를 내려두고 바짝 말린다. 그는 종이배가 볕을 맞으면서 빠짝하게 마를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준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무엇이었던 것인지도 모를, 응애-인지 마음인지, 어떤 소원을 담은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쩌면 그저 지친 종이배가 가여워 보였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그럼 어떤가. 내 응애-가 외딴섬의 해변가에서 따사로운 볕을 받으면서 바짝, 빠짝 마르고 있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건 물을 따라 흘러 내려가면서도 종이배와 같지만은 않아 저 멀리 외딴섬의 낯선 이가 내 마음을 주울 확률은 완전히 0이다. 그것 참 서글프지 않나요. 나는 비가 온다고, 비에다가 줄줄 마음을 흘려놓는데. 마음은 불쌍하게도 알아주는 이도 없이 주륵주륵 따라가기만 해야 한다니. 아, 마음 불쌍하다. 물에 젖어 흐느적 녹았을까, 갈기갈기 찢어져 흩어졌을까. 마음은 그렇게 사라지나 보다. 아, 불쌍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작은 노트를 찢어 본다. 모서리 하나하나가 단정할 수 있도록 정성스레 접어 본다. 종이배는 마음이 될 수 없고, 종이배에 마음을 태울 수도 없고, 종이배는 바다까지 갈 수도, 누군가가 주울 리도 없는데요. 그래도 하나 접어 보아요. 아, 주워달라고 칭얼대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렇다는 거죠. 부담 가지지 마세요.



그래서.


제 응애- 잘 도착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