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말> 5
<거짓의 말> 5
거짓은 함부로 입을 열어선 안 된다. 지금까지 이 글을 읽어온 독자라면 당연하게 그 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다. 거짓이 입을 열어 무슨 말이라도 하면 그것이 모여 이렇게 <거짓의 말>이 되어 버리니까 말이다. 고작 거짓일 뿐이면서 거창하기도 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거짓은 약삭빠르고 잔꾀가 많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는 동안 꾸준히 울지 않는 척, 괜찮은 척, 별것 아닌 척을 해왔다. 알고 계셨는지요? 응애-거리면서 종이배를 접어 띄워 보내고, 설화인 양 포장해서 울곤 했죠. 진실을 교묘하게 꾸며 거짓처럼 말하는 것이 얼마나 가소롭고 우스운가요. 하하. 이게 바로 거짓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 글을 정말 믿을 수 없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약아빠진 거짓이 이런 말을 덧붙이기 때문이다.
"하하, 이런 말을 해버리면 거짓의 말이 마치 진실을 담은 것처럼 보이게 되겠죠? 속지 마세요."
빗물에 종이배를 띄우거나 그늘을 찾아 숨는 짓을 하면서 퍽 감성적이었던 게 이제와 쑥스러워 장난을 좀 쳐봤다. 고작 거짓일 뿐이면서 거창해지는 방법이다. 거짓이 무슨 말을 떠들든, 여태껏 이 시리즈를 어떻게 읽어왔든, 당신이 읽고 느끼는 대로 이어질 글들을 읽어주면 좋겠다. 진실의 마음은 언제나 진실일 것이므로.
잠시 진실과 거짓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무엇으로부터 진실과 거짓을 분명하게 나눌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자, 당신이 진실로서 "이건 진실인데"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진실의 말'은 말 그래도 진실이 한 말이기 때문에, '진실의 말'이란 사실을 의심할 순 없다. 하지만 '진실의 말'을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그 모든 걸 진실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진실이라는 단어로 포장해서 거짓을 말하고 있다면? 그럼 그것은 진실의 말이면서 거짓이 된다. 자, 이제 거짓이 "이건 거짓인데"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거짓의 말'은 모두 거짓일까? 진실과 거짓이 무엇인데? 우리가 지금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울 텐데, 지금은 이 정도로 얘기하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에 넘어가겠다.
각설하고, 오늘은 첫 문단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이야기들에 대해 털어놓을 것이다. 거짓은 자신을 내내 거짓으로 인식해 왔다. 이 시리즈에서 밝혀진 것들에 의하면 아마 태어날 적부터 그것을 알았을 것이며 자라는 동안,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계속 곱씹게 되는 진실이다. 그런 진실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아주 고되고 힘든 일일 수 있다. 입을 열면 거짓이 새어 나오고, 그것이 진실 사이에서 얼마나 불경한 일이 되는지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은 밖으로 나오면서 보이지 않는 형태를 가지게 된다. 그 형태가 보통 말하는 이의 마음과 닮은 구석이 있기 마련인데, 거짓의 말은 그렇지 못했다. 자신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 낸 말 따위가 마음과 닮았을 리가 있나.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거짓이 자리를 펴놓고 앉아서 당신을 향해 손짓을 한다. 여기 와서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줄곧 말했듯이 나는 거짓이고 이 글은 <거짓의 말>인데 말이에요. 저요,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요. 계속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 말이 언제나 입안을 맴돌았는데요, 하지 못 했어요. 말은 마음을 닮곤 한대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 예쁜 마음은 예쁘게 말하고 싶어 지곤 하잖아요. 그래서 사랑은 어떻게 생겼나 떠올려봐요. 물컹한 젤리 같은 것이기도 하고, 찢어진 종잇장이나 발에 차인 작은 돌 같은 것이기도 하죠. 어느 때엔 아이스크림처럼 녹았다가 누군가 그린 그림 위에서 꽃으로 피어나기도 하고요. 오랫동안 나무를 깎아온 목수가 좋은 나무를 구해다가 튼튼하게 만든 원목 의자 같기도. 며칠 전 심은 씨앗에서 자라난 가녀린 떡잎 같기도. 막 한글을 배운 아이가 삐뚤게 써놓은 자신의 이름. 돌아가는 물레 위에서 손에 닿는 대로 흐트러지는 흙덩이. 태풍이 지나간 자리도 제 자리라고 듬직하게 지키고 선 100살 먹은 나무. 손때가 묻은 일기장. 컵을 만지고 손에 묻어난 물기. 닳고 닳은 신발 밑창도. 대충 올려놓은 쿠션도. 모두 사랑과 닮았죠. 사랑은 이렇게 생겼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젤리 같은 걸 쥐고 녹은 아이스크림을 말해요. 닳아빠진 밑창을 들고 꽃을 말하기도 하고요. 말은 마음을 닮는다면서요. 그래서 사랑은 사랑으로 말하고 싶은데, 저는 아무래도 거짓이라 그런지 자꾸 그렇게 되어요. 거짓의 말은 어쩐지 마음과 늘 다르게 생겼으니까요. 거짓이 숨 쉴 틈도 없이 말을 이어가다가 문득 당신의 표정을 보면서 입을 다문다. 당신이 어리둥절하게 거짓을 쳐다보고 거짓은 손으로 입을 가린다.
어떤 것이 사랑과 가장 닮았나 생각해 본다. 사랑은 어떻게 생겼을 거라고, 떠오르는 사랑을 모두 옮겨 적었는데도 여전히 사랑과 닮지 않았다. 마음은 정말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가 쉽지 않으니 자꾸 꺼내보아야 한다. 그래야 정말 사랑하는 것에게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 안 꺼내고 안 말하면 그만이다. 생긴 게 뭐 그리 중요한 것이라고? 마음과 닮은 말을 하는 게 뭐? 마음을 전하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일까? 하지만 당신은 몰랐을 숨겨진 진실이 있다. <거짓의 말>은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 쓰인 글이라는 것이다.
오늘은 조심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마구 입을 열어봤다. 거짓은 그렇게 입을 열어선 안되는데도 이렇게 함부로 입을 여는 것은 다정히 읽어주는 당신의 덕이겠다.
거짓이 다시 손으로 입을 가린다.
당신은 거짓을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