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말> 6
지난 글에서 거짓은 '거짓의 말은 마음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을 기어코 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이어져 여섯 번째 글로 왔으니 그 말을 책임져야 할 텐데, 어떤 말로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 며칠 동안 골머리를 썩었다.
그 사이에 날이 많이 뜨끈해졌다. 더워지면서 마음도 끓어오르는 모양인지 괜히 조급하다. 그래서 작업하러 나오는 길에 발걸음이 자꾸만 빨라졌다. 그 덕에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지만, 마음은 딱히 도착할 데가 마땅치 않으니 제자리만 자꾸 구르고 있었다.
그렇게 발을 구르다 참지 못하고 하는 말인데, 실은 지난 화에서 사랑을 고백하면서 한껏 들떴다. 뜨끈해진 날씨 때문도 아니고 정해진 목적지가 없는 탓도 아니다. 단지 사랑을 말했다는 것만으로 들떠버린 것이다. 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아름다운 순간인지. 남들 다 하는 응애-도 못하고 계단에 혼자 앉아서 울던 녀석이, 외딴섬의 얼굴도 모르는 이가 종이배를 주워주는 상상이나 하고, 초승달이 언제 뜨는지나 찾아보고 있으면서 대뜸 사랑한다는 말을 꺼냈으니 말이다. 이걸 또 한껏 감격스럽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거짓을 보면 얼마나 들뜬 것인지 가늠이 되겠다.
그와 동시에 그 들뜬 정도만큼 지금 쓰고 있는 이 여섯 번째 글을 제대로 써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나는 이것이 몹시 하찮은 것으로만 남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거짓의 말> 안에서 일어나고 있고, 말하는 이 역시 '거짓'이다. 나는 줄곧 '거짓이니까 마음 쓰지 말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왔다. 그러니 나의 들뜬 사랑도 이 안에 머무를 것이고, 그것이 하찮게만 남을 것이 싫어 이 여섯 번째 글에 나의 사랑에 대해 정당성을 넣어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사랑은 여전히 내 안에 있고, 당신의 사랑도 당신의 안에 있다. 나는 거짓이기에 거짓의 말을 하는 것처럼 거짓의 사랑을 한다. 당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끝없이 외딴섬에서라도 누군가 주워줄 것을 바라면서 망망대해를 수영하게 될지도 모른다. 말과 마음 사이에 닮은 구석이 있다는 것이 그런 것이다. 닮았다는 것이 우리에게 퍽 위험한 믿음을 가지게끔 한다. 단지 닮았다는 것만으로, 그 닮은 것을 보여줬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마음이라고 착각해 버리는 것이다. 마치 내가 사랑을 썼다고 들떠서 발을 구르고 있는 것처럼. 게다가 그 닮은 것이 당신에게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당신의 마음이 망망대해를 떠도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것이 싫다면 잠깐 나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 마음이 뭘까요? 어떻게 마음을 전하고 어떻게 닿게 만들 수 있는 걸까요? 나는 닮은 것이라도 꺼내오려고 내가 모아 온 것들을 뒤적거리면서 당신에게 내밀고 있다. 가장 사랑과 닮은 말이라면서. 당신은 그저 어리둥절하다. 그건 닮은 것이라는 나의 믿음일 뿐, 당신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애써 그것을 당신의 손에 쥐어준다. 이거 사랑이야, 사랑이라고. 다정한 당신은 어쩌면 '아, 이 녀석한테는 이게 사랑이구나.' 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당신에게는 그것이 사랑으로 와닿진 않는다. 그러니 사랑과 사랑 사이에, 마음과 마음 사이에 잔혹한 거리감이 생긴다. 그 잔혹함에 마음이 혀를 내두르며 도망을 가서 망망대해를 떠돌게 되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마음이랍시고 무언가를 건네고, 당신은 마음을 받지 못한다. 무엇에게도 닿지 못한 마음이 지레 겁을 먹어 종이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뻔히 알면서 종이배를 처연하게 바라보고, 누가 주워주겠나 불쌍한 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을 마음으로만 두지 못하는 내 지독한 고집이 만든 종이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는 와중에 '아, 이 녀석한테는 이게 사랑이구나.'라던 당신의 진실한 마음도 함께 종이배를 타고 도망을 갔을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안타까워하며 그 말조차 받지 못했을 테니까. 모두가 마음을 주었지만 모두가 마음을 받지 못했다. 거짓이라는 인간 하나 때문에. 당신은 마음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어떻게 마음을 전하고 어떻게 닿게 만들 수 있다고 믿어요? 사랑이면 사랑이고, 마음이면 마음이고, 말이면 말인 걸까? 저는 자꾸 그것들을 어설프게 엮어놓고 사랑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닌 것들과 서글픔을 남겨 놓으려고 해요. 이것 참, 거짓의 사랑은 안타깝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 누구도 사랑이란 마음으로 사랑할 순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사랑을 하고 있다. 어떻게 마음이 전해지는 건지, 어떻게 마음을 닿게 만드는 건지도 모르면서. 전해지지 않을 마음이든 닿지 않을 마음이든 이미 나와 당신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자꾸 마음을 쓰는 것이다. '거짓이니까 마음 쓰지 말라'라고 했는데도 자꾸 내 글을 보러 오는 당신처럼 다정해질 수밖에 없다.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이 다 무엇도 아닌 것처럼 망망대해나 헤엄치고 있을 테니까. 나의 사랑이나 당신의 다정함이 모두 정말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 나는 왜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걸까요. 어설프고, 그저 닮은 구석일 뿐이어도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에 사랑으로 남을 테니까. 서글프고 안타까운 사랑의 진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두를 사랑스럽고 대견하게 만든다. 그러니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이곳에 온 지 벌써 3시간이 훌쩍 넘었고, 글을 네 번 다시 썼다. 거짓이면서 마음에 닿을 말을 하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오늘은 지난 화에서 사랑을 말했던 만큼 당신을 왜 사랑하는지 고스란히 적고 싶었다. 여전히 나는 거짓의 말을 쓰고 있기에 고스란히 담겼다고 확신하진 못 하겠지만.
그리고, 말미에 닿아서야 깨닫는다. 역시 난 거짓이구나. 마음을 마음으로 전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내 사랑 이런 거야, 소중하게 대해줘.'라고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 버린 것이다. 그저 거짓이라 닿지 못하는 것 뿐일텐데.
아직 해가 지지 않아 밖이 뜨거워 보인다. 날씨 탓인지 마음이 자꾸 들뜬다. 내 마음은 마땅히 도착할 데가 없어 뜨거운 수면을 둥둥 떠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이 글을 읽은 당신의 마음만큼은 굳게 세상에 남았으면 좋겠다. 이미 마음으로서 당신 안에 있겠지만, 노파심에 하는 말이다.
말이 길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신은 이미 진실이니까 거짓의 노파심쯤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