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말> 4
<거짓의 말> 4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왔다. 벌써 네 번째 글이다. 그동안 여름이 되어 해가 길어졌다. 늦게까지 하늘이 밝아 세상이 훤히 보이니 풀잎은 볕을 먹고 생생히 자라는데, 거짓은 자신의 진실이 밝혀질까 겁을 먹어 자꾸 그늘을 찾는다. 잎사귀가 자랄수록 그늘은 풍성해져 몸을 숨기기 좋다. 그렇게 진실이 가려진 때에야 거짓의 말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늘 아래에 숨어 줄담배를 피면서 몸을 사리고 있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이 글을 적기 시작했다. 거짓의 말도 무르익어 벌써 네 번째니까 더욱 생생한 거짓을 고하겠노라 다짐하면서.
나는 오늘 집에 가는 길에 몹시 크고 세찬 소리를 내며 울 것이다. 그 누가 들어도 따라서 눈물을 흘리게 될 정도로 세상의 서글픈 마음을 모두 모아 정성껏 울 것이다. 오늘은 마침 초승달이 뜨는 날로, 소리 내어 울기에 좋은 밤이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달마저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그런 날엔 울다가 마음을 잃는 일이 허다하니, 울 것이라면 오늘 같은 날이 좋다. 당신도 마음을 쏟을 일이 있다면 초승달이나 그믐달을 노리길 바란다. 참고로 다음 때는 6월 22일에서 28일 사이다. 아니, 당신은 아무 때나 울어라. 나와 달리 거짓이 아니니까 굳이 그늘진 달을 찾을 필요는 없다. 진실의 눈물은 작고 예쁜 구슬 같은 것이어서 한데 꿰어 목걸이나 팔찌 같은 것으로 남는다. 당신이 태어나며 터뜨린 응애-가 어머니의 보석함에 소중히 담겨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에 반해 우리 엄마의 보석함에는,
말을 말자. 더 쓰면 여기서 나가기도 전에 눈물부터 터뜨릴 것이다. 아무튼, 어머니는 모두 보석함에 아기의 울음소리를 담아놓곤 한다. 응애-는 아기의 마음 중 가장 강렬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1편에서 말했듯 응애-는 엄마의 뱃속에서 열 달을 곱씹다 터져 나온 것인 만큼 밀도 높고 강렬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만한 진실의 마음도 없을 것이다. 진실도, 마음도 모두 귀한 것인데 더군다나 사랑스러운 내 아기가 터뜨린 진실의 마음이니까 허투루 흘릴 수 없는 노릇이다. 그 어머니는 아기의 작은 눈물을 하나하나 모아둔다. 고운 천으로 표면을 잘 닦아 실로 꿴다. 볕 아래에 목걸이를 비춰보면 한 방울마다 볕이 스며들어 반짝인다. 반듯한 보석함을 하나 꺼내어 목걸이를 다소곳하게 넣어둔다. 어머니는 살다가 마음이 힘들고 불편할 때에 보석함을 자꾸 열어본다. 우리 아가, 우리 아가, 하면서.
나는 그게 늘 마음에 걸렸다. 거짓의 어머니는 보석함에 무엇을 넣어놓았을까. 살다가 힘들고 불편할 때에, 아가를 부르면서 마음을 달래고 싶을 적에 거짓의 어머니는 무엇을 꺼내어 볼까. 거짓은 그 엄마가 열 달을 기다리던 응애-도 들려주지 않았고, 혼자 컵에 울음을 담아뒀다가 유치원 계단에서 몰래 울었으며, 닿지 못할 걸 아는 마음들을 종이배에 띄워 보낸다. 그래서 그 엄마는 작고 예쁜 구슬들을 모으거나, 고운 천으로 그걸 닦아주거나, 반짝이는 모습을 보는 것도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보석함은 홀로 반듯하고 안은 텅 비어 있겠지. 그러니 거짓은 내내 자신을 거짓으로 두고 "엄마아, 어차피 거짓의 눈물이라서 그렇게 예쁘지도 않았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러다 문득 그늘 아래에서 줄담배를 피면서, 해가 떨어질 때를 기다리면서, 홀로 집으로 향하며 엉엉 소리 내어 울 때에, 엄마가 보석함을 안고 울고 있는 모습이 옅은 달빛에 비춰 보였다.
거짓의 어머니가 보석함을 연다. 그의 아기는 태어날 적에 울음을 터뜨리지 못하였지만 자라는 내내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울고 울었다. 밤이 깊도록 울음을 그치지 않아 아기를 등에 둘러업고선 밤이 새도록 동네 어귀를 돈다. 그러면 조용하고 조용히 우리 아가, 우리 아가, 자장가를 불러주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아기는 엄마의 등이 축축하게 젖을 때까지 울어재끼다가 잠이 들고 엄마는 잠든 아기를 업은 채 눈물로 얼굴이 불어 터질 때까지 동네를 돈다. 깊은 그늘이 진 초승달이 멀찍이서 혀를 찬다. 아이고, 저 어미 또 저렇게 울고 있네. 엄마는 집에 돌아와서 젖은 윗도리를 비틀어 짠다. 그때 보석함을 연다. 아기의 눈물이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면 엄마의 향이 짙게 밴 옷으로 눈물을 하나씩 닦아 넣는다. 실도 없어 알알이 굴러다니는 아기의 눈물이 얼마나 가여운지. 그 아기도 잠이 들어 초승달만이 엄마를 지켜보면서 혀를 또 찬다. 아이고, 가엾어라.
그래서 나는 문득 떠오른 축축한 등짝을 두드리면서 울음을 터뜨릴 것을 다짐한다. 세상의 서글픈 마음 가운데에 우리 엄마를 두고서 얼굴이 물러터질 때까지 정성스레 울 것이다. 엄마아, 하면서. 우리 엄마 보고 싶다아, 하면서.
엄마 보고 싶다.
초승달이 뜨는 밤에 어머니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가 있단다. 믿거나 말거나, 그 엄마의 엄마와, 그리고 그의 엄마, 엄마, 엄마, 어머니라면 모두들 보석함을 가지고 있단다. 참으로 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 초승달이 뜰 때엔 누구나 한 번씩 울음을 다짐한다고 한다.
물론 나는 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