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말> 7
비가 잔뜩 오고 나니 세상이 온통 눅눅하고 축축해졌다. 끈적거리는 길거리를 헤집어가며 글을 쓰러 나왔다. 살결에 달라붙는 물 먹은 공기가 싫어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나는 유난히 덥고 습한 것에 약하다. 모든 것이 끈끈하게 철썩 붙는 게 싫다. 게다가 한 번 붙으면 좀처럼 제 혼자 떨어질 줄도 모른다. 아무래도 끈적하니까 떨어지려 해도 제 마음처럼 움직이지 못 할 것이다.
그래서 떨어지지 않는 것들을 그냥 하나하나 만져보기로 한다. 이왕 붙은 김에 만져나 보자고.
그 지독하게 떠나지 못하는 것 중에 내가 지금 가장 잘 만져볼 수 있는 것을 골라본다. 이를테면, 이 끈적한 것을 싫어하는 내 마음 같은 것 말이다. 끈적한 것을 왜 끈적하냐 따져 묻는다고 그것이 끈적거리길 포기할 리가 없다. 말 그대로 끈적한 것인데 그렇게 따진다고 쉽사리 떨어져 나갈 거라면 끈적한 것이라고 불리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걸 그대로 내버려 두지 못하는 내 마음을 만져 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끈적한 것은 들러붙어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과 달리 나는 손쉽게 움직인다.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니까, 나도 정당히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정당한 데에는 반박할 수 없는 근거가 있다.
자, 이곳에는 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가 앞서 종이배를 띄우곤 했던 그 강이 흐르고 있고, 하늘에는 구름이 떠간다. 물론 종이배는 앞서 어딘지도 모를 외딴 섬에서 휴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보다 바람에 흔들린 옷이 살결에 닿아오는 감촉을 느끼고, 그 바람에 구름이 밀려 떠가는 모습을 보자. 물결을 따르거나 거스르면서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을 보자. 그리고 무엇이 그것들을 흐르게 만드는지, 그것들로 우리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짐작해보는 것이다. 조금 더 나의 이야기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작은 실마리를 제공해 보자면, 그것은 계속 흐르고 지나간다. 지나감과 동시에 다가온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한 끊김없이 이어져 있다. 여전히 감이 안 잡힌다면, 이것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거나 느껴지는 것들로 이것을 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오기엔 아직 감이 안 잡힐 수도 있다. 괜찮으니 아래 문단으로 넘어가보겠다.
창문을 뚫고 햇볕이 방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느즈막이 깨어나서 책상 앞에 앉는다. 시계를 보면서 2시라는 것을 확인한다. 한참 글을 적다가 다시 시계를 보니 5시가 넘었다. 뒤늦게 나갈 채비를 하여 카페에 왔다. 그 와중에 바람이 부는지 나뭇잎이 무더기로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본다. 얼마쯤 걸어 카페에 도착했다. 글쓰기에 열중하다가 창밖을 보니 하늘이 좀 갰다. 구름은 어디론가 흩어져 사라졌다. 시계를 확인하니 7시 30분이다. 조금 더 있으면 해가 질 것이다. 아메리카노를 식히던 얼음은 녹아 작아졌다. 그동안 해가 움직였다. 나뭇잎은 흔들리고 컵엔 물기가 맺혔다. 나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잠에서 깨어나고, 책상 앞으로 가 앉고, 글을 쓰고, 카페에 오고,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우리는 당연하게 이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음을 안다. 짐작하거나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제 좀 아시겠나요? 움직인다는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다. 시간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기 때문에 그 안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내내 움직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움직이는 것들 중에 마음이 있다. 마음은 내내 움직인다. 돌아다니고, 모양을 바꾸고, 사라지거나 흘러갔다가 또 다른 모양으로 다시 온다. 마음 역시 시간과 함께 움직이니,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새가 언제나 다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마음이 움직이는 모양새도 언제나 다를 수밖에 없다. 계속 흐르는 시간 안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움직이고, 그것들과 함께 내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와 나의 마음의 움직임이 늘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 다시 끈적한 것을 싫어하는 내 마음을 만져봐야겠다. 끈적한 것은 알다시피 들러붙으면 좀처럼 잘 떨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말 같은 것은 들러붙는 성질이 있다. 언젠가 말했듯이 마음은 말이 되면서 형태를 가지게 된다. 말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서 움직이지 못한다. 형태를 가진 덩어리로 남게 되는 것이다. 시간은 무언가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데, 세상에 나온 말은 움직이지 않으니 말과 마음 사이에는 항상 거리가 생긴다. 말을 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마음은 움직이니까. 그러니 이 거짓의 말이 얼마나 거짓될 수밖에 없을지 재고 따지지 않아도 자연히 알 수 있다. 그걸 알면서도 일곱 편씩이나 이 말들을 이어온 것은 또 얼마나 어리석은가요. 세상이 생겨먹은 대로 우리는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고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것에 반해 움직이는 것을 자꾸 꺼내어 묶어두려고 하니 필연적으로 거짓으로 머무르게 된다. 거짓이라 어쩔 수 없나 싶으면서도, 이렇게 어리석게만 구는 것은 움직이는 마음 중에서도 자꾸 집착하게 되는 헛된 바람 때문이다. 말하면서도 창피스러운데, 감히 마음과 마음을 이어보려는 바보같고 용감한 바람 말이다. 그런데 거짓의 말은 거짓이기도 하고, 말이기도 해서 언제나 끈적하게 들러붙는다. 마음을 잇겠다면서 말을 붙여 놓으니 마음도, 말도, 당신과 나도 괴로워지고 말 것이다.
아마도 영영 나의 허튼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생긴 모양새가 그렇다. 그러니 사랑과 마음 같은 것이 마냥 애처롭게만 느껴진다. 세상이 그렇든 말든, 시간이 어떻고, 말이 어떻고, 그러든 말든 흐르는 대로 살면 될 것인데 나는 그저 외롭게 홀로 흘러갈 마음을 생각하면 안타까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거짓인 주제에 무엇을 애처로워하고 안타까워하겠냐만은, 흘러갈 마음들이 안타깝고 아까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 거짓의 말과 거짓의 마음은 항상 먼 사이를 유지하기 때문인지, 괜한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마냥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여 당신의 진실된 마음들 역시 언제나 닿을 수 없다고 확정지으며 슬퍼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야 뭐, 거짓이니 내 모든 말이 어떻게 남든 괜찮겠지만, 당신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으면 하여 아주 태연하게 바라만 볼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절절하게 실감하여 마음을 만져보자는 터무니 없는 말을 해본다. 그리고 끈질기게 마음을 만져본다. 잡을 수 없는 것을 만져보려는 것이 퍽 허황한 일이라 나를 몹시 공허하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거라도 해보려는 속셈이다. 그럼 뭐라도 될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거겠지. 자신이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소심한 반발을 하는 것이다. 거짓의 말은 끝내 끈적하게 들러붙어서 내내 무엇과도 닿지 않은 채 어떤 자리에 앉아만 있을지라도, 당신의 마음은 이곳에 남아 잘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는 새에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창밖이 어느덧 캄캄해졌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10시 48분이다. 몇 시간동안 써온 이 글이 결국에 주저 앉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마음이 씁쓸하다. 그것 역시 거짓의 마음인데 또 어느새 흐르고 있겠지. 그러니 괴로워할 것도 없는데 나는 괴로워 하고 있다. 거짓의 마음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