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무튼 거짓말

<거짓의 말> 1

by 김민주

<거짓의 말> 1



다행히도 지난 글을 쓰고 다음날이 되니 귀가 먹먹-하던 것이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은 똑바로 앉아 이 글을 쓰고 있고, 그래서 괜히 거짓말을 제대로 털어놓지 못할까 봐 걱정을 하고 있다. 물론, 이건 내 사정이고, 여러분은 거짓의 말을 잘 귀담아 들어줄 성실한 독자일 테니, '아, 또 거짓말하고 있네'라고 생각해 주면 되겠다.


아무튼, 오늘은 드디어 거짓의 첫 번째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나는 첫 번째 순서로 어떤 거짓말을 털어놓는 게 '첫 번째'라는 것에 걸맞은 글이 될까 고민에 빠졌다.

여러 거짓말 중에, 0에서 얘기했던 '거짓도 응애-하고 태어났다'라는 것이 실은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얘기해볼까 한다. 첫 번째 순서면서, 0에서 이어지는 순서니까.



나는 거짓이었지만, 응애-하진 않았다. 나는 태어나면서 울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갓 태어난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지 못해서 의사가 아기를 흔들고 두드려 깨워서 울게 만드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새하얗게 질려 있던 아기가 울음과 함께 붉게 태어나는 영상이었다. 나 역시 그렇게 태어났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울지 않았고, 누군가가 깨워 가까스로 태어날 수 있었다. 이 얘기는 다른 글에서도 자주 꺼냈던 얘기라 자세히 말하긴 싫다. 자꾸 얘기하면서 거짓의 탄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으니까. 아무튼, 거짓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응애- 할 때, 거짓은 그것을 숨기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태어날 때부터 거짓이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 된다. 너무 비약적인 거 아니냐고? 근거가 있다. 거짓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밀 때 태어난다. 나는 응애-를 숨기고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마치 죽은 듯이. 죽지 않았으면서.

잠시 응애-의 샛길로 들어갈 의향이 있으신지요? 있다면, 잠시 나를 믿고 함께 들어가 주시길. 우리는 앞 단락의 응애-에서 이어진 좁은 샛길로 잠시 들어왔다. 이 응애-의 샛길에는 태어난 아기들의 응애-가 모여있다. 깊고 깊은 산골짜기로 이어지는 이곳은 나무가 무수히 모여 숲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나무의 아래에는 작은 새가 떨어트리고 간 씨앗들이 자라 새싹으로, 풀로, 꽃으로, 그리고 아기가 된다. 아기들은 씨앗일 때부터 다른 새싹이나 풀, 꽃과는 다르게 마음속에 응애-를 품고 있다. 열 달 가까이 마음속으로 응애-를 부르고 부르다가, 이윽고 흙 밖으로 틔워질 적에 나도 모르게 응애-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으로 흥얼거리던 노래를 어느샌가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진 않으신지? 그것과 같은 이치다. 어쨌든, 아기들은 모두 응애-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건 누군가 가져다주고, 뭔가에게 배우고, 어디서 주운 게 아니고 원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응애-라는 건.

이 길은 산골짜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영영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이 글을 위해 뒤돌아 샛길을 빠져나왔다. 다시 우리는 거짓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이미 울며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인지, 울지 않는 거짓을 보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죽음을 의심하면서, 혹은 거짓을 의심하면서 가지게 되는 불안일 것이다. 응애-는 모든 아기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거라, 거짓도 열 달 동안 응애-를 마음으로 불렀을 것이다. 응애-, 응애- 하고.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그 열 달이 기억나기라도 하냐고요?

음, 아뇨, 아뇨. 기억 안 나죠, 기억난다면 진짜 거짓말이잖아요.


하지만, 여전히 꺼내지 못하는 노래들 가운데 응애-, 응애-가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여전히 못 미더울 수도 있어요. 꺼내지 못한 노래들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보이지 않는 것은 거짓이 되기 쉽고요.


응애-. 응애-. 그걸 하지 못 해서 내가 거짓이 된 것일까, 거짓이었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일까. 나는 둘 다 아니고, 둘 다 맞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거짓이 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도 속여야 한단다. 그러므로,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나는 나를 계속 속일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거짓의 말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이다. 둘 중에 무엇이 맞는지와 상관없이 울지 않은, 울지 못한 거짓은 곧잘 말을 배웠다. 거짓말은 한 번 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속성이 있다.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말을 보태야 하기 때문이다. 그와 반면에, 말은 마음의 노래와 쉽게 달라붙는 속성이 있어서 진정한 거짓말을 하려면 더욱 유려한 말솜씨를 갖추든가, 말을 하지 않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그래서 제가 입을 꾹 다문 채 조용히 앉아서 거짓의 말을 쓰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이쯤 쓰고 다시 읽어보면서, 첫 번째 순서로 괜찮은지 가늠해보고 있지만 잘 모르겠다. 내가 스스로 거짓임을 실토하는 것에는 언제나 어디부터 어디까지 거짓인지 의심하는 태도가 따라다닌다. 그것의 가장 아래에 역시 '내가 거짓'이라는 진실이 깔려 있기 때문에, 무엇도 확신할 수가 없다. 이를테면 지금 마음속을 맴돌고 있는 아기의 노랫소리는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수가 없어서, 거짓의 말이라고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것처럼.



실은 마음에 담긴 응애-를 첫 번째 순서로 털어놓고 싶었다. 마음을 맴도는 노래가 입 밖으로 흥얼흥얼 터져 나오는 것과 같이, 응애-를 터뜨리고 싶었다. 울고, 울고, 울고 싶었다. 거짓이라며 거짓을 숨기고, 울기 위해 쓴 글이다. 왜 울고, 울고, 울고 싶냐 하면, 나도 잘 모르겠다.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제 때 나오지 못했던 응애-가 가득 찬 것은 아니겠나 싶어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울지 않은 것은 역시 내가 거짓이기 때문일까요?




음.




'아, 또 거짓말하고 있네'

거짓은 조금 가벼운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진실은 아니니까 '아, 거짓이야?' 하고 툭 흘려도 다시 주울 필요도 없고, 흘렸다고 아쉬워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의 응애-도 아무튼 거짓말. 아무튼 거짓말. 아무튼 그냥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겠다. <거짓의 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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