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 기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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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그림도 글도 제대로 되는 게 없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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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던 그림에 대해서 고민이 좀 많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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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려고 하는 방향이 이 방향이 맞는지. 처음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 구상했던 것에서 방향이 틀어져 있었고,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 그림을 그리는지 의심을 품게 된 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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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앉아서 고민을 해봐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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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맞나? 이래도 되나? 이거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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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슬럼프가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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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친구들과 모여서 작업을 할 때면 뭔가를 하는 척하면서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림이 손에 안 잡히니 머리도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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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그럼 어때? 그냥 그리자. 그냥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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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친한 언니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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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보면 잘 안 될 때도 있고, 너 성격상 힘든 때가 있을 수도 있어. 근데 그냥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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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닥치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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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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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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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그릴 때 늘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이 모두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곤 했었다. 어떤 그림을 그리다가도 그곳에서 뭔가 새로운 게 생기면 새로운 그림을 그려오곤 했다. 과거에 내가 그렸던 그림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그림이 나올 수 있었고, 지금의 그림을 통해서 미래의 내가 또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 내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잠시동안 그걸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뭔가를 그려내야만 한다는 강박을 느낀 것이다. 이것으로 뭔가를 해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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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나도 모른다. 다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뿐. 그림도 그렇다. 미래의 내가 무엇을 그리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내가 지금 그릴 수 있는 것들을 그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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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그리고 싶은 걸 그리자,라고 생각하고 나니 그림이 술술 나왔다. 일주일 사이에 5장의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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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 좀 괜찮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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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 좀 멋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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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 극복, 어떤 짧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