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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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는 준비물을 꼭 하나씩 두고 다니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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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체육과 음악 수업이 있는 날이어서 체육복과 리코더를 챙겨야 했다면, 나는 둘 중에 하나는 꼭 두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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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도 잘 잃어버리는 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실내화 주머니를 꼭 들고 다녔었는데 그 주머니를 잃어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지갑이나 카드 같은 것은 물론이고 핸드폰을 들고 다니기 시작해서는 핸드폰도 곧잘 잃어버렸다. 실내화 주머니 같은 경우에는 잃어버렸다 하면 되찾는 일이 없었다. 어디에 두고 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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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그림 그릴 때 필요한 준비물
1. 아이패드
2. 애플 펜슬
3. 아이패드 거치대
4. 단축키 키보드
5. 드로잉 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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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친구들과 작업을 하기 위해 나왔는데, 모든 걸 다 챙기고 애플 펜슬을 두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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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없어도 작업할 수 있지만 애플 펜슬은 없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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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펜슬을 두고 온 나 스스로에게 분통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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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펜슬에게 발이 생겨서 내게 걸어올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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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오면 이곳까지 한 시간도 더 걸릴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무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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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카드 쥐어주고 오라고 하면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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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는 지금 다 내 손에 있다. 애플 펜슬이 버스를 타고 올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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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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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휴일을 보내는 애플 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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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끄적끄적 써보는 어떤 짧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