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서 만나는 원죄

악함의 본성을 만날 때

by 김배우

아이마다 성향이 다들 다르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는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신의 잘못을 감추는 행동은 어떤 아이에게서나 동시에나타는 현상 같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말이다.


아들은 실수를 자주 하는 편이다. 맞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실수로는 잘 혼나지 않는다. 동일한 실수를 계속해서 저지른다면 그것은 또 다른 영역이지만 처음 겪어보는 일의 실수는 가르치고 타이르면 그뿐이다. 그런데 이 야이는 자신의 실수를 도무지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빠와 엄마 몰래 아이패드를 켜 윌라에서 본인이 보고 싶은 만화를 보고 있던 아들은 아빠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깜짝 놀라며 아이패드를 덮었다.


"잠깐 밖으로 나와봐!"

잔뜩 긴장한 채 조심스레 아빠눈치를 살피며 아들이 나온다. 이미 본인이 잘못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아빠의 취조가 시작되었다.


"자신의 할 일을 다하지 않고 부모님의 허락 없이 미디어를 시청하는 것이 되는 일이야?"

아이는 한참을 생각했다. (참고로 우리 집에서는 허락받지 않고 미디어를 시청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생각할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생가했다. 다시 물었다.

"해야 할 숙제가 남아있는데 미디어를 보는 게 잘못된 일이야 아니야?"

다그치는 소리에 아이가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깊은 빡침이 단전을 타고 머리 위로 올라왔다. 그러나 한번 심호흡을 하고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떤 때는 엄마나 아빠가 그것을 허락해주기도 하니까요"

어이가 없었다. 학습이나 활동에 지친 아이에게 긴장을 풀어주는 의미로 베풀었던 호의는 이렇게 돌아왔다.

그리고 한참을 호의와 의무에 대해서 아이에게 설명을 했다.

실은 내 마음에 아이가 모든 것을 인정하고 마음을 빠르게 바꿨다면 본인이 보고 싶었던 만화를 보고 있을 시간이었을 텐데... 이미 그렇게 하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아이의 태도 때문에 모든 계획은 틀어지고 결국 아이는 이른 시간에 취침을 하게 되었다. (아이는 그렇게 잠드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렇게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왜 아이가 이렇게 행동하는지 함께 이야기를 했다. 아이의 행동의 원인을 둘 다 다른 부분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둘의 생각은 정확히 일치했다.


아이는 마치 에덴동산의 아담처럼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셨을 때 자신의 잘못을 축소하기 위한 변명을 하는 사람처럼 잘못한 일이 있을 때면 변명뒤로 숨는다. 그러나 늘 그 변명 때문에 혼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잘못을 그대로 드러내고 아빠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면 혼나지 않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함께 일을 수습해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실수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거짓으로 그것을 덮어 버린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 때문에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실수보다 거짓에 대한 책임을 더 무겁게 지고야 만다.


혹시 아담도 그때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면 그는 아직 에덴에 있지 않았을까? 분명 알려주지 않았는데 피 속에 새겨진 원죄의 DNA는 지금도 아들을 괴롭힌다.


하지만 진짜로 괴로운 건 아들보다 더하게 고집부리는 내속에 흐르는 원죄의 DNA다. 아이에게 가르치고 이야기할 때마다 그 말은 아프게 내 마음을 찌른다. 도망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은혜인 것을 나는 안다.


"아들 문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아빠에게 도움을 구해"

나도 이러한 순간이 찾아올 때 마음을 바꾸고 문제를 드러내고 도움을 구하는 아빠가 되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소탐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