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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배우 Apr 17. 2019

연출가의 읽기

스토리의 감정선을 찾는 읽기 - 텍스트에서 주제 찾기

 내가 어린 시절  - 밀레니엄을 전후하던 즈음 - 한동안 대학입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던 것이 논술평가였다. 당시 수능을 보고 오랜 기간 동안 논술을 준비하던 때가 있었다. 그즈음 대부분 출제되던 문제들은 3가지 정도의 문학이나 사설을 주고 거기서 문제를 뽑아내고 문제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문제였다.

 최근 가장 위와 비슷한 성향의 문제는 역량평가의 Inbasket 평가 같다. 현안 업무와 상황들을 주고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 많이 닮아 있다.

 위의 두 가지 평가에 필요한 역량은 현대인들-사회인과 학생들 포함하는-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이 아닐까 생각된다.  


 현업에서 일하고 있는 강사들이나 HRD 담당자들 인사담당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입사원들을 비롯하여 관리자에 이르기까지 보고서에서 자료 등 거의 모든 텍스트의 주제나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다. 문제정의가 힘들기 때문에 뒷따르는 해결책은 헛다리를 짚기 일수다.

 Text와 context를 다 가지고 있어도 세부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마치 bigdata전문가가 방대한 데이터에서 하나의 흐름을 읽어내는 기술처럼 text에서 주제를 파악하고 숨어있는 진의를 파악하는 것 역시 스페이셜 리스트가 존재한다.


 연극은 희곡이라는 문학작품에서 숨어있는 감정을 찾아내고 살아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예술이다. 희곡을 한 번쯤 읽어본 사람이라면 희곡이라는 문학 장르가 그저 작품을 읽기에 얼마나 어련 운 장르인지 공감할 것이다. 소설처럼 속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주지 않고 보고서에 흔히 등장하는 표나 그래프는 기대할 수 없다. 등장인물의 말에서만 힌트를 얻어 상황을 만들 내고 살아있는 스토리를 찾아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시 보다 더 읽기 힘들다.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데 텍스트는 더 많고 지루하며 길다. 연출가란 그런 희곡을 관통하는 주제를 찾아낸다. 그리고 입체적으로 관객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스토리라인을 만들어 간다. 심지어 자신의 배역만 연구하는 배우를 상대로 인물의 분석까지 논리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우위에선 논리를 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출은 text의 진의와 주제를 파악하는 것은 스페이셜 리스트 일수밖에 없다.



 

 ‘A야, 숙제는 다했어?’라고 시작하는 대본이 있다고 하자. 거의 대부분의 희곡이나 대본은 이렇게 문장이 시작한다. 초반에 인물에 대한 설명 2줄은 빈약하기 그지없고 그나마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의 엄마의 질문에 자연스럽게 A가 대답한다. 

 '오늘 숙제 없어.'

 '중간고사 기간은 언제인데?'

 이렇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독자들은 대부분 음 엄마가 TV 그만보고 들어가 공부하라는 거구만 이란 생각을 갖게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subtext(숨겨진 2차 의도)를 발견한 것이다. 보통 읽기는 순간적으로 캣치되는 이 정도의 분석을 가지고 서도 희곡을 읽어나가는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연출의 읽기는 여기에 생각과 상상을 더해간다. 엄마와 아들 간의 묘한 긴장감을 끌어 나갈 수 있는 감정의 흐름을 이끌어 내기 우해서 눈에 불을 켜고 힌트를 찾아내고 없는 것은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중학교 2학년인 A가 저녁을 먹고 보고 싶은 예능을 보려고 TV 앞에 앉았다 그때 시간은 7시 즈음이었다. 그러나 A가 원하는 예능은 밤 시간대 11시가 넘어 시작하는 심야 예능이었다.' 희곡에 나와있지 않은 내용을 상상하여 더하고 혹시 상황의 극대화를 위한 설정에 문제는 없는지 희곡 안에 설정을 한번 더 살피고 문제가 없는지 살핀다. 

 위에 나온 설정은 단순한 상황 설정인데 그다음은 인물별 욕망(감정의 흐름)을 찾아낸다. 저녁을 아들과 단둘이 먹이는 엄마의 마음은 뭘까? 평소와 다르게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저녁으로 신경 써서 내놓은 엄마는 아들이 좋아해 주고 들어가서 공부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들이 좋아하는 갈비찜을 하기 위해서 평소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기에 아들의 행동에 견뎌줄 마음의 준비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이만큼 신경 쓰면 너도 알아서 어느 정도는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찾는다. 

 아들은 신경 쓰였던 쪽지시험이 성공적으로 끝이 났고 그동안 준비하느라 힘들었던 자신에게 자신만의 힐링타임을 선물하고 있다. 때마침 엄마가 갈비찜을 만들어줘서 기분도 좋았고 평소 보고 싶었던 예능 재방송이 제 때에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만 보고 나면 다음 시간 보고 싶던 예능을 본방사수할 수 있다. 

 a4용지 한 장도 되지 않는 대본이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는 상상하고 고민하고 숨어있는 내용을 발견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연출의 희곡 읽기는 '일'로 생각하면 어머어마한 작업량을 자랑하는 야근각의 기피업무이지만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는 재미가 존재한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처럼 긴장감이 가득한 감정에너지가 흘러가는 흐름을 찾아내는 context의 special list인 연출의 읽기를 배운다면 요즘 필요한 독해력의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 거의 확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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