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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배우 Apr 26. 2019

'관찰'에서 '표현'하기까지

연출자의 관찰

 “자네가 100번을 올라왔던 계단이 몇 개인지 기억하나?”

 코난 도일의 소설 셜록홈스에서 왓슨 박사가 나도 이제 자네만큼 추리할 수 있다는 투로 말을 하자 셜록홈스가 왓슨 박사에게 되물었던 질문이다.

 실상 우리는 보고 있지만 보고 있지 않다.라는 명제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예전에 나는 ‘이프온리’라는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그때만 해도 영화 포스터가 길거리에 붙어있던 시절이다- ‘이온 플럭스’라는 애니메이션에 심취해있었다. 워낙 좋아했던 터라 머릿속에 ‘이온’이란 단어가 선명했던 것일까? 스테디셀러처럼 흥행 중이던 ‘이프온리’를 ‘이온 프리’라고 읽고 그렇게 기억하고 약 1달 정도의 시간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가 친구와 대화하던 중 영화의 제목이 ‘이프온리’라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 영화 포스터를 보니 그제야 ‘이프온리’라고 글씨가 보였다.

 거리에 영화 포스터가 심심치 않게 많이 붙어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이온 프리’라고 읽었던 것이다. 나는 영화 포스터를 봤던 것일까? 봤다고 생각한 것일까?




 어쩌면 ‘본다’는 것의 의미가 재정의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것의 본다의 의미는 어쩌면 ‘관찰’에 더 가까울 것 같다. 눈으로 보고 본 사실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인과관계의 해석을 하는 것 까지 ‘본다’의 의미를 확장할 수 있을 것 같다. - 뇌는 외부로부터 보거나 듣거나 맛보거나 냄새 맡거나 만져보는 등의 외부 자극을 판단하고 분류하여 저장하게 설계되어 있다. - 그러므로 본다는 것은 눈으로 본 것을 바탕으로 분류하고 판단하고 인과를 만들어내는 것까지로 재 정의해 볼 수 있다.

 ‘보다’라는 것에 이런 집착을 하는 것은 시각적 자극이 나에게 특별히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청각이나 후각적 자극보다 더 시각적 자극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후에 VAK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다 보니 나에게  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한 행위였다. 또한 연극을 하면서 시청 감각의 다양한 자극을 사용해야 하지만 실제로 조명과 무대디자인 미장센 연출은 거의 대부분 시각적인 인사이트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래서 연출의 본다의 의미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감각적이고 직관 직인 ‘보기’에서 부터 의도적으로 판단과 분류를 보류하고 많은 정보를 수집한 뒤에 얻어진 정보의 인과를 연결해 극적인 해석을 하는 ‘보기’에 까지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연출에게 희곡 읽기라는 텍스트 분석이 마쳐지면 이제 실제로 실험대에 오른 연습이 이어진다. 한 가지의 대본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해온 배우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많게는 20명이 넘기도 하고 적게는 2명의 배우와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모놀로그의 경우 배우 한 명이 끌고 가는 연기라 연출가는 밖에서 봐주고 흐름을 연결해주는 정도의 작업을 하기에 모놀로그는 빼고 이야기하기로 한다.) 그렇게 시작된 연습에서 연출은 마치 있지만 없는 사람처럼 관찰자로 배우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움직임 하나 숨소리 시선 순간 변하는 표정에서 읽히는 다양한 감정들과 감정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살핀다. 거기에 배우들의 연기가 전체의 극에 잘 묻어나고 있는지 감정의 방향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는지 살핀다.

 배우가 무대에서 집중을 한다면 연출은 연습에서 초고도의 집중을 요구한다. 그들의 눈은 순간의 감정들을 잡아내는 초감각의 시각을 가지고 무대에서 흘러오는 정보들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그리고 무대에서 배우가 최상의 모습(배우가 극 속의 배역이 된 상태)으로 무대에 설 수 있게 도와준다. 그 과정에서 배우들과 싸우기도 하고 서로의 논리로 다투기도 한다. 그 싸움을 위해서는 완벽한 대본 분석과 더불어 연습하는 과정에서 배우를 관찰하는 매의 눈이 필요하다. 어찌 눈뿐이랴 귀로 그들의 음성에 담김 조그마한 감정으로 떨림도 포착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그들의 초 긴장상태로 무대를 본다는 것은 마치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할 때 너무나 많은 소리가 있어 조그마한 피치의 어긋남이나 박자의 어긋남을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그것을 잡아내는 지휘자처럼 온 신경을 곤두세워 극이 흘러가고 있는지 지금 미세한 엇박자나 어긋난 하모니를 내고 있는지 찾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때론 의도적으로 엇박자나 하모니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다도 마치 불협을 화음으로 만들어 내는 재즈처럼 그의 배우의 연기가 다시 하모니로 들어오는지 지켜봐 주기도 한다.



 

 바로 위의 과정이 너무 추상적이고 어려워 설명하기가 너무 힘든 영역이지만 굳이 위의 과정을 설명해보자. 정말 많은 연습을 진행하다 보면 한 가지 대본을 가지고 여러 가지 모양의 연극이 나오게 된다. 여기서 나온 모습들을 연출은 빅데이터 수집하듯이 배우의 감정 흐름을 각배 역별로 수집하게 된다. 그것이 하나의 장면일 수도 있고 전체를 흐르는 배우의 감정일 수도 있고 단 한 번 나왔던 폭발하는 에너지였을 수도 있다. 다양한 형태의 모습을 수집하고 그것을 소팅하기 시작한다. 물론 소팅하는 데이터의 기본 디폴트에 본인이 연습을 시작하기 전 했던 대본 분석은 필수 요소이다.

 그렇게 소팅된 장면과 모습 캐릭터의 모양을 가지고 인과관계를 역어서 의미 있는 한 명 한 명의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배우에게 요구하기도 하고 질문을 던지며 최고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글로만 썼는데도 그 당시를 회상하는 토할 것처럼 힘이 든다.




 최근 디자인 싱킹 교육과정을 함께 세팅하면서 공감과 퍼소나 분석하는 부분을 다시 한번 보면서 관찰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내게 강조됐다. 진짜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서 심도 깊은 관찰과 인터뷰가 필요하다는 내용에 심하게 공감했다. 그리고 실제로 문제 해결 과정에 그러한 과정이 필요하다면 연출가의 무대를 관찰하는 기술을 (마치 디자인 싱킹처럼 체계화된 이론으로 설명하기 힘든 분야이지만) 읽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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