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필라델피아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이야기가 정치와 종교이야기라고들 한다.
쿵작이 잘 맞고 취미를 공유하던 사이도 정치와 종교가 맞지 않으면 서로 죽일 듯이 달려들기도 한다.
인류가 시작한 이래로 취미 때문에 전쟁을 하지는 않아도 정치와 종교로는 전쟁을 했으니 말 다했다.
전에도 밝혔던 적이 있지만
나는 남도의 복판 광주에서 격동하는 80년대에 태어나 운동권의 마지막 끝자락을 '전남대학교'에서 보냈다 내 대학생활의 절반은 운동권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기독교였다.
30살에 서울에 올라와 연극을 하기 시작하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은 대부분의 기독교는 보수적 정치성향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놀랄 수밖에 없었던 건 전라도의 특성상 기독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어도 보수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5.18이라는 지워지지 않는 커다란 상처와 '전두환'이라는 살아있는 원망의 대상이 존재했기 때문이었을까? 마치 국권을 빼앗겼을 때의 대한민국과 같이 그리고 나라가 남북으로 갈릴 때처럼 광주는 어마어마한 인권의 유린과 정의를 찾아야 하는 목마름이 그런 현상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조심스레 추측해 볼 뿐이다.
그러나 뭔가 아픔에 비대해져 정의를 위해서 나의 삶을 축소하거나 정의를 위한 희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를 만나는 순간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의'가 얼마나 큰 것인지 만날 수 있었다. 아마 지금 던진 2가지 정도의 화두만을 가지고도 한 가지 주제당 하루 이틀을 꼬박 새울 정도로 할 말이 많이 있지만 사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 들은 아니다.
6.25 당시 피난민이 다 건너지 못했지만 한강 다리를 폭파했던 사람, 김구와 정치적 대척점에 서있는 한 사람 권력을 마지막까지 놓지 못해 개헌을 단행하다가 실패하여 실각한 인물
그렇게 내 머릿속에 평가받고 있던 '이승만'이란 사람에 대한 재평가
그리고 그런 재평가 속에서 변한 나의 생각은 왜 그렇게 나아가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위의 비인간적 행위에 대한 평가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를 위대한 위인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연극을 오랫동안 해오며 그가 그렇게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그의 배경과 마음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격동의 전쟁 한복판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동지들을 사지로 몰아넣어가며 나라를 세워 활동을 하던 사람과 희망의 나라 미국의 발전과정을 보고 그들이 짧은 시간에 이뤄낸 결과물을 보고 또 그 원동력을 보고 나라의 기초를 세우고자 했던 사람의 생각과 의견의 차는 어쩌면 당연지사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고 잔인하게 죽어가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또 나도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 상실된 인격에 노출된 사람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트라우마와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격한 해결 방식이 민주주의와 인도주의 위에 설립되어야 할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는 죽음을 향해 가는 특급열차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또 사회주의 전선과 통합이 대의민주주의로 가는 엄청난 걸림돌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믿는 신념은 전쟁을 경험한 강성함과 맞물려 어마어마한 추진력을 얻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며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정의와 약자를 보호하는 완전 선이라 믿었던 나의 동지들이 사회에 나가 우리가 함께 말하던 정의와 조금씩 멀어지고
애초부터 우리가 싸우던 기득권층의 사람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사실 이렇게만 보면 정치에는 희망이 없다.
다 그 밥에 그 나물이다.
그래서 내가 깜짝 놀랐다 나는 하나님이 아닌 정의에 기대를 걸고 정의에 마음을 기대고 있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정의롭지 못했던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왕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가르치기도 하시고 이교도인 페르시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루기도 하신다.
정치는 그저 도구에 불과하다는 희망을 품을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약관화해졌다.
어제 보고 온 '1919 필라델피아'는 연극하는 사람으로 서는 많이 아쉬운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 영리한 연출이 보였다.
1919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자유대 회의 회의록을 재연 드라마처럼 재연함으로써 가장 어려운 종교와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덤덤히 풀어나간다. 심지어 연출가적 해석을 의도적으로 줄여나간다.
소극적인 간섭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연출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는데 나의 해석을 더하여 스토리라인이 굴러가게 하는 것 이것을 으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좋았다 나빴다라는 평가는 의미가 없다. 그것이 좋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싫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역사적 탐구나 그냥 그때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5.1일까지만 공연하고 추가 공연은 아직 계획되고 있지 않다고 하니.. 보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