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es any daugher really know her father?
이 글은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데 영- 하기가 싫고, 그래서 좋아하는 것들을 섞어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시작되었습니다. 가벼운 낙서와 함께 제가 남겨두고 싶은 소소한 이야기 혹은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에 대해 풀어냅니다. 그러니까 영어공부를 목적으로 쓰는 글이지만 영어보다 한글이 더 많은 글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선장님이다. 그렇다. 고기를 낚는 뱃사람. 어쩌면 그 핏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사실 그는 바이킹의 후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해보는, 그는 그런 거친 사내다. 물론 아버지는 처음부터 뱃사람이지는 않았다.
그는 어릴 적 큰 꿈으로 뭍에 나와 공부를 했고, 그러다 고집을 피울 때면 툭 튀어나오는 귀여운 입을 가진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가진 거라곤 큰 포부밖에 없는 철없던 그 시절에, 네 다리가 있는 상을 어깨에 덜렁 메고 프러포즈를 하고 말았다. 낭만인지 치기인지 모를 그 기행으로 갑자기 입이 하나 더 붙은 그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았는데, 배운건 기계공 기술이라 처음엔 쇠를 깎았다. 뜨거운 불똥을 맞으며 그는 매일 쇠를 자르고 자신도 잘랐다. 매일같이 잘려나가는 자신으로 부끄러움이 많은 여자를 먹이고, 집에 홀로 두고 장을 봐도 울지 않는 아이를 먹였다.
흔한, 그러나 우리에게도 불어닥친 IMF는 그를 거리로 나오게 했고, 내쫓긴 거리에서 이번엔 쇠를 달궈 빵을 구웠다. 이미 딸린 자식이 셋이고 한 번도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아내가 집에서 웅크리고 있을 때, 그는 홀로 비닐집을 짓고 서서 살지 않는 물고기를 구워냈다. 아무도 오지 않는 밤에도 그는 1평 되지 않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정말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은 그 후로도 아주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쭉- 몇 해간 우리는 꽤 엉망인 시간들을 보냈다. 사랑은 증발된 듯 화를 내며 서로 상처를 주었고, 보듬지 못했으며 자주 슬퍼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일을 했다. 닭을 잡기도 하고, 굴을 캐기도 하고, 주꾸미도 잡다가, 어느 날엔가 뱃머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바다로 나갔다.
어릴 때, 나는 아버지를 굉장히 싫어했다. 싫어하다 못해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나의 눈에 그는 너무 거칠고 투박했으며 여리지만 못된 사람이었다. 그러다 내 나이 스물, 그러니까 아버지가 나를 품에 안던 나이와 같아지던 그 해. 나는 아버지를 마음 깊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게 힘에 부친다.
“ 요브야, 내가 새벽에 4시에 바다에 나가잖아. 한참 멀리 바다 나가서 어느쯔음 멈춰 섰지. 주변이 밝아지는 게 해가 뜰 것 같더라고. 난 그 순간이 참 좋거든. 사위가 조용하고 해가 수면 위로 막 떠오르는, 응? 바다가 반짝반짝이고. 그러다 잠깐 뒤에 닻을 내리러 밧줄을 풀러 다녀왔는데. 그러니까 아마 3분? 아니 한 1분도 안되었을 거야. 그런데 그 사이에 해가 수면 위로 둥그렇게 떠 있더라. 그러니까. 내가 잠깐 밧줄을 풀러 다녀온 그 아주 잠깐 사이에 말이야. .... 시간이 그렇게 빠르다. ”
아버지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그가 멀고 그러나 피부 아래 바싹 가깝게 느껴진다.
나는 가끔 그가 바다에 홀로 있을 때, 노곤한 몸을 끌고 집에 들어와 앉아있을 때, 순간의 그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