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너무 아파서, 울며 잠에서 일어났다
저며지는 고통에 신체가 벌벌 떨며 아파하자
놀란 머리가 서둘러 깨웠다
고약한 사레질에 튕겨져 나오듯 꿈에서 깼다
머리를 보호한 건지 마음을 보호한 건지
정신을 시킨 건지 육체를 지킨 건지
신기한 일이다
친구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안녕. 그리고 또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아버지는 내가 심약하다고 했다. 어머니는 내가 예민하다고 했다. 두 분 다 나는 미련하다고 했다. 심약해서 예민한 건지, 예민해서 심약해지는 건지. 결과적으로 미련하니 그 고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싶은 형용사들이 나를 더 자신 없게 했다. 그들이 원하는 모양으로 나를 빗고 싶어 할 때마다 나는 깎이고 작아졌다.
아둔한 것과 미련한 것은 다르다. 차라리 멍청한 게 좋다. 그건 어이없게 귀엽기라도 하지. 남들 앞에서 미련하고 싶지 않지만 예민한 것은 보다 더 많은 문제를 만들어 냈으므로 자주 미련함을 선택했다.
학교로 가는 길, 한 무리의 아이가 인도와 차도를 가르는 낮은 펜스를 넘었다. 다른 아이들이 감탄하며 줄줄이 펜스를 넘기 시작했다. 이어 다른 무리들이 합류하고 서로를 신발가방으로 가방을 치며 키득거렸다. 나는 홀린 듯 담을 넘다 발이 걸려 넘어졌다. 철푸덕소리에 앞서가던 아이들이 일제히 뒤를 돌았고, 나는 도움을 요청하는 눈으로 그들을 올려보았다. 아주 잠깐 눈이 마주쳤다가 다시 그들은 앞서 걸었다. 나와는 멀어지고 싶은 마음처럼, 바쁘게. 나는 빨개진 얼굴을 무표정으로 무마하며 걸었다. 쩔뚝. 오른발이 아팠다. 그들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의 부끄러움도 금방 잊히지 않았다. 아파서 눈물이 났다.
하교할 때까지 발은 낫지 않았다. 발이 부어 신발이 꼭 끼었다. 나만 넘지 못했던 펜스를 지나치며 아침의 일이 떠올랐다. 쩔뚝. 서둘러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잘 걸어지지 않았다. 파란불이 들어온 횡단보도를 건넜다. 신호 안에 다 건너지 못해 조바심이 일었다. 차가 나를 치고 가면 어쩌지. 계속 빵빵대면 어쩌지. 마음이 다급했다. 걱정했던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땀에 흠뻑 젖어 집에 도착했지만 엄마는 없었다. 피아노학원을 빼고 싶었는데. 좀 더 기다리고 싶었지만, 이미 집까지 오는데 많은 시간을 써버려 여유가 없었다. 나는 발이 아프다는 말을 조심히 적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학원으로 갔다. 쪽지를 발견한 엄마가 피아노학원으로 나를 데리러 오는 상상을 하며.
소나타를 치고 사선으로 긋는 동그라미가 다 사라지도록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는 일은 없었다. 수업시간 내 시계와 문밖을 살폈지만 바랬던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난 의젓하니까. 학원을 나올 때쯤, 더 이상 신발에 발이 들어가지 않아 위로 얹고 끌고 가야만 했다. 지-익, 쩔뚝. 지-익, 쩔뚝. 밤이 일찍 찾아오는 늦가을이었다. 하늘이 컴컴해지고 네온사인들이 켜졌다.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고, 너무 늦어 혼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나를 더 숨 가쁘게 만들었다. 별거 아냐, 아픈 거 아니야, 할 수 있어, 갈 수 있어.
한참을 걷는데 뒤에서 누가 나를 불러 세웠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경찰 두 명이 나를 보고 서 있었다. 경찰아저씨는 나에게 발을 다친 거냐고 물었고,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겠고 했고 나는 걸을 힘이 없었기에 말없이 끄덕였다. 한 명은 나를 등에 업고, 한 명은 내 오른쪽 신발을 쥐었다. 그들은 금방 횡단보도와 경사로를 걸어 올라갔다. 나는 평생 어리광 없이 그렇게 듬직한 어깨에 기대본 일이 없었다.
집 주소를 몰랐는데, 신기하게 두 사람은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놀란 어머니가 나를 채가며 감사하다고 납죽 인사를 했다. 그들은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더니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문을 닫자 그녀는 벼락같이 추궁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 몇 시야! 아프면 말했어야지! 너!! 학원은 왜 가! 나는 냄비가 올려진 식탁을 곁눈질했다. 내 쪽지는 냄비 받침 아래 깔려 김치찌개 국물에 물들어 있었다. 펜스와 뒤로 보던 아이들의 눈이 겹쳐졌다. 말을 하려고 입을 떼는데 울음만 나왔다. 눈물로 목이 메어 숨을 참았다. 깨끗한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흙투성이인 채로 땀에 절어 혼자 울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참은 숨 뒤로 또 눈물이 흘렀다. 밝은 집에서 오직 나만 더러웠다.
엄지발가락에 금이 가서 한 달 반동안 깁스를 해야 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펜스를 볼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목발을 어깨에 끼고 신호에 다 건너지 못해도, 계단을 올라가지 못해도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종종 궁금했다. 경찰아저씨는 어떻게 날 알아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