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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브 Jul 30. 2020

클론이세요?

맥시멀리스트의 비워내기 01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두둑하게 나온 아랫배를 보며 내가 이것들을 어떻게 모았는데!! 맞다. 쌍쌍바가 100원이던 시절을 지나 빵또아가 500원이 되더니 얼마 전 엑설런트가 9,000원이더라. 그동안 먹어왔던 아이스크림이 몇 개며 빙수가 몇 그릇이던가. 그걸 10년만 더해도 얼마지? 뷔페에서 모임이라도 할라치면 낸 돈이 아까워 몇 접시를 입에 넣었던가. 그리고 그 날 저녁엔 꼭 까스활명수를 하나 들이키고 잠들었다. 사실 '본전'을 생각하자면 비워내는 것이 어렵다. 이게 살 때는 가격이.. 내가 이걸 구하려고 그 새벽에.. 나는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현재에서 조금 벗어나려면 다른 행동과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 마음을 다잡자! 정말 안 되겠는 것을 제외하고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모두 처분하겠어! 난 단호하지! 그렇게 소심하고 대범하게 물건을 하나 둘 처분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의외로 떠나보낼 땐 가슴이 미어지던 것이 그게 정말 그 자리에 있었는지조차 생각나질 않았다. 정말이다. 이건 내가 건망증이 심해서가 아니다. 아마도 내 생활에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는 방증이겠지.


유행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아니지만 나의 취향은 내가 자라는 속도에 맞춰 변화해 왔다. 덕분에 그 취향 끝물에 산 옷이나 물건들은 한두 번 혹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방구석 가장 깊숙이 숨어 있었다. 바로 그놈의 '본전' 때문에. 아, 나 이 옷 한 번밖에 안 입었는데, 이건 선물 받았던 거라, 아니 이건 나중에.. 여러 이유로 한켠 쌓아놓고 살다 보니 입지 않는 옷과 물건 책들이 생활 반경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그래 인정. 내가 쓸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물건들이 많았다.


무조건 분리수거함으로 가는 것보단 꽤 쓸만한 물건은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고자 했다. 나는 대학 선배와 같이 살고 있는데 우리 둘의 취향은 비슷하면서도 미묘한 그 어디쯤이다. 그리고 그 덕에 나의 과거 옷들 대부분이 이 양반에게로 넘어갔는데 아마 그녀의 옷장 1/4은 출처지가 나일 것이다. 이번 여름옷 쇼핑은 다 했다고 평한 것을 보면 1/2일 지도. 아무튼 지난 주말 오랜만에 외식을 하자며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번화가로 향했는데 아주 요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뭔가 눈에 걸리는 듯 익숙한 듯, 한 순간 깨달았다.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의 옷들을 걸치고 있었다!! 모자, 옷, 신발, 가방 뭐 하나 내 물건이 아닌 게 없는 것이었다. 마치 내 클론과 나란히 걸어가는 기분이어서 소름이 돋았다. 복제품을 바라보는 오리지널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그래서 할머니가 저녁엔 손톱을 깎지 말라고 하셨나 보다. 놀라운 것은 그 사실을 걸어 내려오는 10여 분동 안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자, 비워내기를 준비 중인 여러분. 내려놓자. 이렇듯 비워놓고 보면 심지어 남이 내 옛 물건을 쓰고 있는 것을 보아도 전혀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꽤 높다. 물건 한가운데 내 이름과 함께 사진을 붙여놓지 않는 이상. 당장 지금의 기분이 섭섭할지라도 막상 내 손을 떠나면 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다만, 너무 한 사람에게 나눔 하지는 말자. 자신의 클론을 보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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