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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선 Aug 22. 2019

도로 위에 끼인 존재

주역

오토바이는 자동차와 자전거 사이에 끼인 존재다. 도로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교통체계가 짜여 있다. 예를 들어, 오토바이가 유턴이 되는 공간이라 할지라도, 자동차가 유턴할 공간이 안 나오면 둘 다 유턴이 금지된다. 또,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양방향으로 다닐 수 있는 공간이라 할지라도, 자동차가 양방향으로 통행이 되지 못하면 둘 다 양방향 통행이 금지되어, 일방통행이 되어버린다. 지금의 도로교통법은 오토바이를 생각해주지 않는다. 그냥 주류인 사륜차에 맞춰 다녀야 한다.     


오토바이를 몰다 보면, 이런 답답한 상황을 종종 마주한다. 할 수 있는데, 할 수 없도록 법이 금지한 경우를 말이다. 지금의 도로교통법은 오토바이 운전자들에게 더욱 깊은 인내심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 역차별에 순응해야 할까? 저항해야 할까? 오토바이를 타다 보니,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시내에 배달 오토바이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실 없는 존재처럼 취급당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몇 안 되는 자전거 유저들을 위해, 자전거 도로가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가 제대로 된 법적 보호 없이, 불안전하게 이용하던 차선 맨 바깥쪽에 합법적인 자전거 도로가 깔리고, 심지어 횡단보도 한편에 자전거들이 타고 건널 수 있는 공간까지 합법적으로 만들어놓았다. 

이런 걸 보노라면 또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이미 그렇게 사용하고 있는 다수의 사용자를 위해 어떤 법적인 비보호 틀조차 만들어 줄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위해 필요할 수도 있는 불확실성에는 과감하게 돈을 쓴다. 도심에서 개인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있는 지금, 과연 자전거와 전동킥보드 중에 무엇이 더 활성화될지 내심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무거운 오토바이는 여전히 횡단보도에서 내려 끌고 가야 하는데, 그에 비해 가벼운 자전거는 이제 타고 건널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법이 금지하고 경찰이 딱지를 남발해도, 여전히 대다수의 배달 오토바이들은 횡단보도를 타고 건너고 있는 실정이다.     

이쯤 되면 오토바이를 ‘그냥 없는 존재’ 또는 ‘보호가 불필요한 문제아’처럼 취급하는 인식이 공무원 마인드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불공평한 정책 때문에, 지금껏 우리가 많은 인내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역 강의에서 택뢰 수괘를 배웠다. 그중에 저 구절이 있다.     

隨時之義(수시지의) 大矣哉(대의재).

“때에 따르는 뜻이 위대하도다”



이륜차를 단순히 사륜차로 분류해버리는 행정편의주의로 인해, 우리가 이런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때를 만난 것이다. 우리도 생각해달라는 큰 입을 가지지 못해 바꿀 수 없는 현실이라면, 따르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래야 위대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위대하다는 말은 ‘때를 따르는 마땅함’을 추구해야,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P S. 오토바이를 끌고 건너는 게 사실 전 싫었습니다. 그래도 우선권에 대한 생각은 갖고 있어서, 횡단보도 바깥쪽으로 서행하거나 사람들이 대강 다 건너면 뒤이어 건너기를 여러 번 했었죠. 하지만 경찰한테 걸리면 벌금을 냈고, 벌점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벌점까지 더해져서 교통안전공단에 교육을 받는 신세가 됐습니다.

거기 가서 교육비가 10만 원이 넘게 들었고, 이틀이라는 시간까지 소비했습니다. 그런 큰 손해를 겪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결국 나만 손해라는 것을.     


많은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그 부당함에 울분이 쌓이겠지만, 끌고 건너가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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