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양혜왕 장구上 7장
2019년 12월이었다. 라이더들은 차가 막히면 가장자리의 하수구길 위를 달리거나, 직진 차로보다는 여유가 있는 좌회전 차로의 원활함을 이용한다. 그렇게 양 사이드를 통해 대기 중인 차량들 맨 앞 선두에 서곤 한다. 대학로를 중심으로 일하다가 황학동에 있는 B마트를 중심으로 새로이 적응하고 있는 요즘, 그날도 좌회전 차선을 이용해 맨 앞으로 나가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은 신설동역 오거리로 매우 큰 교차로여서 출퇴근길 시간대에는 가끔 경찰들이 교통관리를 하는 곳이다. 마침 교통관리를 하던 경찰 중 한 명이 반대차선에서 건너와, 나에게 공손한 말투로 한쪽에 대 달라는 말을 하셨다. 찝찝한 마음으로 한쪽에 오토바이를 대니, 차선 변경 위반을 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돌아보니, 내가 좌회전 차선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유턴만 되는 차선이었다. 유턴만 되는 차선은 앞으로 전진이 금지되기 때문에, 땅바닥에는 황색 선이 빗질하든 그어져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를 시작으로 오토바이들이 줄줄이 걸려서, 내 뒤에 차례로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위반하는 오토바이를 하나씩 잡다 보니, 신호를 한번 기다리는 사이에 3명이나 걸린 것이다.
차선 변경 위반이라서 무벌점에 벌금만 2만 원이었다. 벌점이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찝찝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안전을 위해서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는 경찰 아저씨의 그 ‘안전’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경찰 아저씨 그러면 저기 인도와 차도 사이의 좁은 하수구 길로 오는 건 괜찮아요?”
“거긴 괜찮습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비어있는 넓은 차선을 이용하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좁은 하수구길 역시 합법적인 길은 아닐 것이다. 거기는 이륜차도 겨우 지나갈 만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결코, 이륜차 통행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법적 근거가 없기에 유사시 독박을 쓸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 모른 척 눈감아주고 있을 뿐이다.
하수구 길을 가는 건 이륜차니까 괜찮고, 내가 했던 행동은 이륜차가 아니라 사륜차 법을 적용한 것이니, 위반이다. 배달 이륜차는 그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취급하고 당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법에 명시되어 있듯 자동차처럼 다녀야 하는 오토바이다. 엄연히 다른 사륜차와 이륜차를 동일하게 사륜차라고 취급하는 법령에 매번 답답함을 느끼지만, 우리를 대변해 줄 사람은 없다. 이런 취급을 당할 바에야, 차라리 법에 맞게 배달 오토바이들이 모두 차선을 점유하여 자동차처럼 다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종로중구 도로가 오토바이와 차들로 길게 늘어서 있는 진풍경을 맞이하는 게,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어쨌든 이렇게 줄지어 딱지를 받는 진풍경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단톡 수다방에 얘길 했더니, 누군가 대답하기를 “거기 잘만하면 수백만 원 땡기는 자리다”라고 하셨다. 경찰들에게 있어 이 자리는 손쉽게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꿀자리’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사실 경찰들도 매일 딱지를 끊다 보니,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자리에 가야 오토바이들을 손쉽게 엮을 수 있는지를.
반면에 그 딱지 끊기 좋은 꿀 자리에는 다른 곳처럼 시선 유도봉 같은 장애물을 설치해놓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어차피 유턴만 가능하게 황색 선을 그어놓은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좀 더 나은 개선책을 내놓아야 하는 현장 공무원의 임무보다는 그냥 위반하는 오토바이들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신호 한번 기다리는 데 세 대나 위반하는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과연 오토바이들이 법을 안 지킨다는 데에만 혐의를 둘 수 있을까. 왜 오토바이들의 ‘안전’을 위해 시선 유도봉 같은 적극적인 개선책은 시행하지 않을까. 이런 상태로 내버려 두고 관행적으로 ‘안전을 위해’ 딱지만 끊고, ‘안전을 위해’ 개선하려 함이 없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것은 맹자의 말마따나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일은 아닐 것(不爲也, 非不能也)’이다.
혹시 꿀을 좋아하는 데 있어서 경찰들과 우리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