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병선 Nov 17. 2019

개인사업자는 개인 사업자답게

논어 안연

2019년 11월 초, 노동부에서 부당한 근무 지시를 받은 배달대행기사를 근로자로 인정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진정을 제기한 요기요 배달기사 5명을 근로자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 파장은 결국 1위 업자인 배민라이더스를 긴장하게 했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 근로시간 스케줄을 없애고, 휴무일만 정하는 방식으로 스케줄 관리가 느슨해졌다. 요새는 휴무일 신청도 아예 없애버렸다. 

따로 스케줄을 안 받는다는 말은 단체문자로 하지 않고, 스케줄 신청 링크만 조용히 없애버릴 뿐이었다. 스케줄 관리가 없어진 줄 모르는 라이더들은 휴무일 신청을 어디다 해야 하는지 묻지만, 대답 없이 그냥 조용할 뿐이다.     

작년 4월에 배민에 입사할 때부터,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했는데, 왜 스케줄을 보고해야 하고 업무통제까지 받는지 잘 이해가 안 됐다. 또 재미있었던 건, 출근날 안 나오면 전화를 하지만, 반대로 휴무일에 출근하는 건 통제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상했다. 출근을 통제할 거면, 휴무일에 출근하는 것도 통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최소한의 스케줄을 넣어놓고 내 맘대로 더 늘려서 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게 나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관리자들에게 얄밉게 일한다는 얘기를 동료를 통해 전해 듣기도 했다. 간접적으로밖에 할 수 없는 건, 떳떳하지 못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개인사업자라 근무 터치가 불가한데, 사실상 지금껏 해온 건 허상이다.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없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척해 온 것이다. 그렇게 많은 라이더가 개인사업자답지 않은 근무형태에 맞춰 근무를 해왔다. 이름에 걸맞지 않게 일을 해온 것이다. 『논어』의 다음 구절과 같다.     


君君(군군), 臣臣(신신), 父父(부부), 子子(자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논어의 유명한 구절이라 여러 곳에서 인용되는 말이다. 임금과 신하는 사회의 위치를 말하고, 부모와 자식은 가정의 위치를 말한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그 위치에 걸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러해서 나도 내심 눈치 보며 어느 정도 발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눈치도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일하기 싫으면 일하지 않는 프리랜서가 된 것이다. 근로자처럼 주5일을 나와 일하라는 족쇄가 풀렸으니, 우리는 어떻게 달라질까? 내심 궁금해진다.     


비 소식이 연달아 있는 요즘이다. 그래서 후발 업체인 쿠팡이츠에서는 매일 카톡으로 한 건당 5천 원 할증 또는 6천 원 할증을 외치며 배달대행 기사들이 일을 시작하게끔 독려하는 중이다. 그러다 고작 10분 후쯤에는 할증해제라는 말이 날아오긴 하지만 말이다. 이제 비 오는 날처럼 일하기 궂은날은 자본주의 시대의 본색인 ‘돈’으로 우리를 유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은 정오부터 종일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공지사항에는 5건을 하면 5천 원을 추가로 준다는 미끼가 던져져 있다. 물고 싶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비 오는 날은 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다. 그래도 비가 안 오는 한두 시간 정도는 하고 싶기에, 1시간 정도 일해서 일용할 식량 정도의 수입을 손에 쥐었다.

이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다음 일정까지는 시간이 좀 비지만, 굳이 비를 맞으며 더 할 필요는 없다. 조금은 당당해진 마음으로 근무용 앱을 종료한다. 할증이 좀 높지 않으면, 이제 비 오는 날 일하는 라이더가 많이 적어지지 않을까 싶다. 나는 매우 높지 않으면 안 할 것 같다.     


이제 어느 정도 개인사업자다운 면모를 갖춰가는 듯하다. 이름에 걸맞게!

작가의 이전글 각자 할 일을 할 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