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1>, 류츠신
<삼체> 1권 완독. 출근 전에 후다닥 후기를 쓴다.
<삼체>는 중국 작가 류츠신이 쓴 3권짜리 SF 소설이다. 나는 그 중 1권을 읽었다. 일단 추천.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이하 소량의 스포일러 있음*
나는 보이저 세대다. 태양계 바깥으로 인공물을 날려 보내는 프로젝트인 보이저 프로젝트는 그 세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보이저에는 골든 레코드라고 하는 LP판이 한 장 실려 있는데, 그 안에는 세계 수십개국 언어로 된 인사말이 들어 있다. 그리고 이 LP의 재생 방법과 함께 우리의 태양계가 어디에 있는 지 겉 면에 정보가 표시되어 있다.
이 때 사실 과학계에선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만약 매우 낮은 확률이지만 보이저를 정말 문명을 가진 외계인이 습득한다고 했을 때, 지구의 위치 정보를 그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 과연 지구에게 좋은 일일까? 인류 역사에 고도로 발달한 문명과 발전 전의 문명이 만났을 때, 언제나 약탈과 식민지화가 일어났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보이저 프로젝트의 고문을 맡았던 칼 세이건은 로맨티스트였고, 당시 누구보다도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는 과학자였다. 칼 세이건은 골든 레코드 프로젝트를 밀어붙였고, 결국 골든 레코드에는 삼각함수를 사용할 수 있는 외계인이 보이저를 발견한다면, 지구의 위치를 대략 짐작할 수 있는 정보가 새겨졌다 (우라늄 238의 반감기를 이용한 힌트라고 하는데 나도 과학적인 것은 잘 모른다)
보이저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 지구를 향해 카메라를 돌려 찍은 Pale Blue Dot (창백한 푸른 점)에 대해서는 다들 들어보았을 텐데, 이 작업도 칼 세이건이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칼 세이건의 낭만성은 그가 쓴 소설(후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컨택트>에도 잘 나타난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Arrival)과는 다른 작품이다) 외계인으로부터 처음으로 메시지가 도착한다면 그건 무엇일까? 칼 세이건의 <컨택트>에서 외계인은 숫자를 보낸다. 시간 간격을 두고 파동이 도착한다. 처음에는 2개, 다음엔 3개, 그리고 5개, 7개. 주인공은 이 숫자가 소수임을 알아차린다.
스포일러이긴 하지만, 이 내용을 알고 소설을 보기 시작하는 편이 낫다. <삼체>는 외계인과의 접촉이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다. 처음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런 엉뚱한 플롯들이 전개되나 싶어 몰입하기 어려운데, 이 사실을 알고 난 중 후반 이후가 훨씬 재밌어진다. 오히려 처음부터 이걸 알려주면 좋지 않았을까 한다.
외계에서 첫번째 메시지가 도착한다면 그건 정말 소수일까? 나는 역시 그건 순진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스티븐 호킹은 외계에서 메시지가 도착한다면 그건 선전포고나 항복요구일 거라고 말했다. 나는 호킹의 생각에 동의한다. 외계인이 지구를 발견해 낸다면, 그 목적은 호기심이 아니라 정복 혹은 식민지화 일 것이다. 지구상에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발전 전의 문명을 발견해 냈을 때 늘 그랬듯이.
그런데 류츠신의 상상력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삼체>에서, 외계에서 처음으로 도착한 메시지는 “대답하지 말라”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정말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대체 왜 이런 메시지가 온 걸까? 더 이상 얘기하면 정말 스포일러가 되므로 여기까지만 하겠다.
1권 다 읽고 바로 2권을 샀다. 색다른 SF 소설을 발견했다. 당분간 점심시간이 즐거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