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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균 Oct 02. 2023

오펜하이머와 물자체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면 세계는 어떻게 보일까


내가 속한 철학 소모임 [아침부터 안부도 안묻고 헤겔이라니요] 구성 멤버가 이제 모두 영화 <오펜하이머>를 다 보았다. 철학 소모임이긴 하지만 과학을 좋아하는 멤버도 있어서, 여러 관점에서 평을 나누다, 내가 ‘물자체’를 시각적으로 묘사했던 것이 좋았다, 고 했더니 과학을 별로 읽지 않는 멤버가 솔깃해 해서, 이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혹은 오펜하이머가 고뇌할 때 등장하던 (첨부한) 사진의 의미가 궁금했던 분은 읽어 보시기를 바란다. (사실 이미 여러 번 한 이야기고, 자기복제적일 예정이다) 


이 이야기는 철학자 칸트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사과가 빨갛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먼저 광원이 있다. 태양이든 형광등이든 어딘가에서 발사된 광자가 사과의 표면과 만나서 일부는 흡수되고 일부는 튕겨 나온다. 광자는 파동이기도 한데, 이 때 튕겨 나온 광자의 파장 길이는 대략 750nm 정도가 된다. 이어 이 광자는 망막에 닿고, 시각세포는 이 750nm 길이의 파장을 특정 전기 신호로 바꾼다. 시신경을 따라 뇌까지 이 전기신호가 전달되면 뇌는 알아차린다. 아, 빨간색이로구나. 뇌는 눈도, 코도, 어떠한 감각기관도 갖고 있지 않다. 오로지 신체의 각 부분에 연결된 신경을 통해 전기적 신호를 받아들인다. 이 신호들이 종합과 해석의 과정을 거치면 짜잔, 눈 앞에 빨간 사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빨간색’이 과정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광자의 파장 길이와 시각세포가 발생시킨 전기적 신호, 시신경이 이를 뇌에까지 운반하는 과정 그 어디에도 빨간색은 없다. 그렇다면 대체 빨간색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 신체의 바깥쪽에 있는가, 내 안에 있는가?


합리적으로 후자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이제 엄청난 질문을 만나야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다채로운 색깔로 드러나는 우리의 외부 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빨간색이 내 안에 있는데, 외부의 세계가 바깥에 있을 수 있을까?


비로소 우리는 놀라운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세계는 실은 우리의 내면에 비친 세계이다. 진짜 세계가 아니다. 사과는 우리 인식의 원인이 아니다. 사과는 결과다. 인식이라는 과정을 통해 탄생한 심상心象, 즉 이미지인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외부 세계는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 과정을 통해 해석되어 내부에 존재한다. 놀랍지 않은가?


아직 믿기지 않는다면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오늘 아침에 내가 아침 식사로 준비한 에그 스크램블은, 소금을 좀 많이 넣었는지 좀 짰다. 그런데 짠맛은 있을까? 소금(NaCl)은 혀에 닿아 침(물)을 만나면 나트륨이온(Na+)와 염화이온(Cl-)가 된다. 사람의 혀에는 미각세포와 지지세포로 구성된 1만개의 미뢰가 있는데, 이 미뢰는 나트륨이온(Na+)이 닿았을 때 특별한 전기 신호를 뇌에 보낸다. 비로소 뇌는 느낀다. 아, 짜구나. 짜다는 것 역시 전기 신호다. 조금 더 얘기하면, 실은 이 짜다는 전기 신호는 “나트륨이온과 같은 전하량을 가진 양전하 원자가 혀에 닿았다”는 신호다. 나트륨이온과 전하량이 같은 리튬이온이나 칼륨이온이 혀에 닿아도 우리는 짜다고 느낀다. 


그리고 역시나 이 과정 어디에서 '짠맛'은 없다. 소금이 물을 만나 나트륨이온이 되고, 미각세포가 대뇌에 전기신호를 보내는 과정 어디에도 '짠맛'은 없다. 짠맛 역시 인식 과정을 통해 해석되어 우리의 내부에만 존재한다. 


이렇게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우리가 해석한 세계다.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초월한 진짜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사실은 진짜 세계라는 것을 정의할 수도 없다) 이렇게, 명백하게 우리의 바깥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우리가 실제로 닿을 수 없는 진짜 세계를 칸트는 [물자체物自體]라고 불렀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자.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신이 있어서, 그가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신은 사과를 어떻게 볼까? 신도 짠 맛을 느낄까? 


만약 신이 사과를 본다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을 볼 것이다. 만물은 입자로 되어 있다. 나와 당신과 사과를 구성하는 모든 양자들은, 아주 작은 핵과 텅 빈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도, 당신도, 사과도, 세계도, 지구도 실은 텅 빈 공간이다. (오펜하이머가 키티를 처음 만났을 때 “나와 당신과 이 탁자는 사실은 대부분 빈 공간으로 되어 있다”는 말을 하는데, 그 대사가 이것과 같은 맥락이다)


만약 신이 빛의 입자를 볼 수 있다면, 그는 빛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빛 자체를 볼 수 있는 신은 사과 표면에 반사된 파장으로 사과를 볼 필요가 없다. 그는 빛의 입자와 사과를 구성하는 여러 원자들의 입자를 직접 보게 될 것이다. 원자는 대부분 빈 공간이므로 그렇다면 그 공간은 비어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빛조차 존재하지 않는 암흑 속에서 가끔 만나는 입자들이 저마다의 에너지를 가지고 소용돌이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보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면, 이것이 세계의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빛조차 존재하지 않는 암흑 속에서 입자들이 저마다의 에너지를 가지고 소용돌이 치는 세계, 그 것이 <오펜하이머>에서 놀란 감독이 묘사한 바로 이 세계이며, 이 것이 우리의 바깥에 있는 [물자체]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오펜하이머는 침대에 누워 이러한 물자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펜하이머> 공식 티저의 한 장면. ⓒ UNIVERSAL PICTURES





https://youtu.be/UigvImy-GbE?si=pkART8v0Mp8s-63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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