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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의 가치

<불온한 것들의 미학>, 이해완

by 이상균


25년 첫 책으로 <불온한 것들의 미학> 완독. 이 책은 분석미학 입문서인데, 결론만 말하면 매우 추천한다.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고, 미학이 어떤 것들에 관심을 갖는지 몇개의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요하네스 페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소장. 위키피디아 제공.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는 17세기 네덜란드의 국민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들이 있다. 페르메이르의 이름이 생소한 분들도 이 그림,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만큼은 알고 있을 것이다. 페르메이르는 렘브란트와 함께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하나로, 빛을 묘사하는 신묘한 재주와 정교하게 세부를 묘사하는 솜씨를 가졌다. 그의 작품들은 이후 19세기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다만 페르메이르가 남긴 작품은 35점에 불과하다.


페르메이르가 남기고 간 작품 숫자가 적다는 것에 착안한 것일까? 1930년대 판 메이헤런이라는 무명화가는 대담한 사기 계획을 세운다. 아무도 구분해 낼 수 없는 페르메이르의 위작을 만들어, 마치 페르메이르의 36번째 작품이 발견된 것 처럼 꾸며보려 한 것이다.


세기의 위작꾼 판 메이헤런 (1889~1947)


먼저 판 메이헤런은 페르메이르의 기법들을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 무려 4년 동안 페르메이르의 수 많은 작품들을 모작했다. 페르메이르와 완전히 똑같이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확신하게 되자, 메이헤런은 미술품 시장에서 17세기, 그러니까 페르메이르가 활동하던 시대 무명 화가들의 값싼 그림들을 사들였다. 그들의 그림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캔버스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미 그림이 그려진 17세기의 캔버스 위에 위작을 그렸다.


위작을 그리기 위한 안료(물감)를 준비하는 과정은 더 놀라운데, 그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안료를 사용하면 간단한 검사에도 작품이 최근에 만들어졌다는 걸 들킬거라는 것을 알았다. 위작 여부가 논란이 되면 캔버스는 물론이고 안료에 대한 성분 분석 결과도 위작 판정에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그래서 메이헤런은 시중에 판매되는 안료를 쓰지 않고, 17세기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안료를, 17세기의 제작 방식 그대로, 스스로 만들어냈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판 메이헤런은 페르메이르가 사용했다고 하는 붓과 동일한 붓을 구했고, 특수 제작된 오븐으로 자신의 작품 표면을 구워 300년 된 유화 물감의 재질을 표현했다. 실린더를 이용해 세월에 의해 생겨나는 균열(crack)을 구현해냈으며, 잉크를 이용해 세월의 먼지까지 위조했다. 이정도 치밀함을 갖췄다면 사실 위조는 성공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세기의 위작, <엠마오 집에서의 저녁식사>


1936년, 드디어 메이헤런은 완성된 위작, <엠마오 집에서의 저녁식사>를 공개했다. 페르메이르의 작품이 갑자기 발견된 것에 의문을 제기한 소수의 비평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페르메이르의 새 작품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너무나 완벽한 위작이었기 때문이다. 수 많은 찬사들이 이 작품에 쏟아졌다. 이 작품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와 함께 페르메이르의 또 하나의 대표작이 되었고, 엄청난 가격에 네덜란드 예술협회에 판매됐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언젠가는 밟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메이헤런의 위작 행각이 밝혀진 것은 누군가의 문제제기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메이헤런 본인의 고백을 통해서였다.


<엠마오 집에서의 저녁식사>가 성공하자 메이헤런은 기고만장해졌고, 그 밖에도 여러장의 위작들을 그렸다. 그 중 하나인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는 당시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나치 장교 헤르만 괴링이 구입했는데, 이것이 전쟁 후 문제가 되었다.


네덜란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 동안 나치에 협력한 전범들을 청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네덜란드 법정은 국보급 미술품을 나치에 팔아 넘긴 죄로 메이헤런을 기소한 것이다. 메이헤런의 위작은 어느새 국보급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반역죄로 교수대에 매달리게 된 메이헤런은 결국 재판대에서 모든 것을 실토한다. 그 작품이 위작이라고 말이다. 나는 나치에 부역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치를 엿먹인 것이라고 말이다.


미술 평론가들, 그리고 그 그림들을 진품으로 감정하고 거래해온 전문가들과 상인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메이헤런이 나치 부역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단정했다. 메이헤런과 전문가들의 의견이 맞서자 결국 법정은 메이헤런에게 법정에서 위작 제작을 시연하라고 명령한다.


법정에서 위작 제작을 시연하고 있는 메이헤런.


그리고 당당히 법정에서 페르메이르의 화풍을 따라 그려보이는 메이헤런 앞에 전문가들도 할 말을 잊었다. 당대 최고 전문가들로 꾸며진 진상 조사팀이 꾸려졌고, 결국 치밀한 과학적 분석 결과 메이헤런이 소개한 모든 작품이 위작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대표작 <엠마오 집에서의 저녁식사> 마저 말이다.


메이헤런의 형법상 죄는 반역죄, 나치 부역죄에서 미술품 위조죄로 바뀌었다. 그는 금고 1년형을 선고 받았는데, 결국 건강 문제로 그마저도 치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치 부역 혐의를 벗고 나서도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메이헤런은 당시 미술계에 다음과 같은 딜레마를 던졌다.


1. 내가 제작한 위작을 과거에 페르메이르와 같은 수준의 훌륭한 작품이라고 칭찬했던 평론가들에게는 앞으로 두가지 길이 있다. ① 과거의 칭찬을 철회하든가, ② 여전히 칭찬을 유지하던가.


2. 만약 ① 과거의 칭찬을 철회한다면, 평론가들은 자신의 감식안이 부족함을 자인하게 된다.


3. 만약 ② 여전히 칭찬을 유지한다면 나는 페르메이르와 같은 수준의 훌륭한 작가이다.


실제로 이 딜레마는 당시의 평론가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페르메이르의 새로운 대표작에게 던졌던 열렬한 지지를 철회할 것인가? 페르메이르의 작품이 아님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감식안이 형편 없었음을 고백하고?


아니면 자신들의 미적 가치 기준을 유지하기 위해 '작품은 위작으로 밝혀졌지만 여전히 감상할 가치가 있다'는 편에 서야 할 것인가?


당신은 어떠한가? 위작으로 밝혀졌다면 그 미술품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바뀔 것인가?


오래 기다렸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앞에 섰다면, 이제 철학이 필요해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 부터 근대 데카르트, 칸트를 거쳐 헤겔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관심은 이성적인 것들이었다.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저기에 나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이러한 질문은 인식론이 되었다. 삶이란 무엇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생철학이 되었다. 존재란 무엇인가?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가 있는가?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존재론이 되었다.


이런 질문들은 모두 이성적인, 냉철한 것들이다. 이성의 바깥, 그러니까 감성적인 부분은 오래도록 철학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시(詩)를, 지식을 쌓지 않으면서 감정만을 불러일으키고, 인간의 비이성적인 부분을 자극하기 때문에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경계해야 할 것으로 지목했다. 플라톤은 감성적인 것들은 지식이 될 수 없으므로 철학의 대상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처럼 적대적이지는 않았지만, 역대 철학자들은 대개 감정을 우리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긴 하지만 본능에 가까운 것, 그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주어진 무엇, 그러한 의미에서 합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철학의 한계로 간주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더는 철학적으로 분석할 필요도 없고, 분석이 가능하지도 않다고 본 것이다. (여담인데, 이성 따위로는 철학을 할 수 없고, 철학자 너희들이 철학을 하는 것은 실은 본능에 충실하기 위함일 따름이라고 일갈한 철학자가 바로 니체다. 무척 재미있는 얘기지만 이 글의 범위가 아니므로 다음 기회에 해 보겠다.)


이성이 관심을 두지 않은 감정적인 것, 조금 더 넓게는 감성적인 영역을 다루는 학문을 포괄적으로 미학(美學, Aesthetics)이라고 한다. 미학은 미와 예술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미학에도 연구 분야와 방법론 등에 따라 여러 세부 학문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중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통해 미와 예술, 미적 가치의 본질을 사유하는 분야를 분석미학(Analytical Aesthetics)이라고 한다.




방금 한 이야기는 내가 추가로 정보와 자료를 찾아보고 좀 더 이야기답게 구성했을 뿐, 실은 이 책 <불온한 것들의 미학>이 다루는 네개의 꼭지 중 첫번째 꼭지의 중심 이야기를 옮긴 것이다.


방금 전까지 하던 논의는 이러하다. 명작으로 칭송하는 작품이 위작으로 판명된다면 칭송을 취소할 것인가? 칭송을 취소하면 나의 미적 감각이 후지다는 것을 자인해야 하고, 칭송을 유지하면 그 칭송은 위작 작가의 것이 된다.


이 딜레마는 미학적으로는 두개의 질문으로 되어 있다. 첫번째 질문은 이런 것이다. 미적 감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예술 작품이 가지고 있는 미적인 가치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다.


조금 놀랍게도, 이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답변한 근대의 첫번째 철학자가 칸트다.


IMG_0086.jpeg (c) thesurvivalisland.com


일본도 등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칼의 목적은 우선 사람을 베는 것이다. 다른 칼도 있는데, 고기를 자르거나 생선 비늘을 다듬는 데 쓴다. 그 보다 조금 더 작은 칼도 있는데, 나무를 다듬거나 연필을 깎을 때, 혹은 택배 상자를 개봉할 때 쓴다. 이렇게 칼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다. 목적이 있고, 그 목적에 부합하도록 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 사진의 일본도는 이상하다. 내가 저 칼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칼을 사람을 베는 용도로도, 생선을 다듬거나 연필을 깎을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목적으로 대하는 것인가? 목적이 없는 것이다. 목적이 없는데도 나에게 쾌(快)가 일어난다. 이것을 칸트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라고 한다.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라는 말이 좀 어려워서 조금 더 풀어 써 보자. 목적이 없다는 것은, 대상이 봉사해야 하는 어떤 목적을 상정한 후, 그 주어진 대상이 그 목적에 부합하는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도는 사람을 잘 베어야 하고, 생선칼은 생선 비늘을 잘 벗겨야 한다. 생선 비늘이 깨끗이 떨어져 나가고, 껍질이 투명할 정도로 잘 저며졌을 때 우리는 생선칼을 통해 목적에 부합하는 쾌를 얻는다.


그런데 일본도의 아름다움에는 목적이 없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고자 하는 목적을 어떤 대상을 통해 이룰 수 없다. 아름다움은 의도를 가지고 경험할 수가 없다. 아름다움은 교통사고처럼 온다. 저녁 나절 산책을 하다 발견한, 울타리 사이 핀 이름 모를 꽃의 아름다움은 내가 의도해서 경험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속 무언가에 부합하여 쾌를 이룬다. 이것이 아름다움이라는 경험이다. 칸트는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가 예술 속에서 미를 발견해내는 원리를 설명한다.


칸트의 설명 이후 '미와 예술의 감상은 대상의 순수한 속성에 반응하는 것'이라는 하나의 전통이 자리잡는다. 아름다움을 가진 어떤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이 가진 아름다운 속성에 우리의 마음이 반응하는 것이다.


이것이 근대 이후의 대상의 아름다움과 미적 감각과의 관계였기에, 메이헤런의 위작 딜레마는 풀어내기 쉽지 않은 것이다.


생각해보라. 아름다움이 대상의 속성이라면, <엠바오 집에서의 저녁식사>의 아름다움의 속성은 그 작품 자체에 있다. 그리고 내 미적 감각이 그 속성과 반응하여 강렬한 미적 감흥을 만들었고, 그래서 내가 이 작품에 찬탄을 했다. 이 작품이 위작이라는 사실은 그 속성에 영향을 주는가? 엄청난 대가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어린아이의 작품이었다면 그 칭찬을 철회해야 하는가?


칸트로 부터 시작된 근대 전통 미학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다. 이제 미학은 스스로의 노선에 수정을 가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책 <불온한 것들의 미학>에는 이 딜레마에서 탈출하기 위한 미학의 여러 시도들이 소개된다. 심지어 탈출을 포기하고, '위작이라고 하더라도 작품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고집스럽게 예전에 서 있었던 위치를 고수하는 평론가들과 미학 이론들도 있다. 하지만 이미 역대급으로 독후감이 길어지고 있어서, 딱 한가지 전략만 소개하고 문서를 끝내려고 한다. 전통적인 '미적 가치'의 레이어를 그대로 두고, 하나의 레이어를 더 추가하는 전략이다. 바로 '예술적 가치'라는 레이어다.


예술이 인간의 상상력과 감성이 동원된 창조적인 것이며, 그래서 인간의 자유로움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시작한 것은 낭만주의 시대부터다. 그 이래로 창의성과 독창성은 예술의 숙명이자 가치가 되었다. 예술은 늘 새로움을 요구받는다. 예술이 전통을 거부하고, 자꾸 관습과 윤리 등 금기를 위반하려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변기에 이름을 적은 후 미술 전시회에 출품하려 한다면 그 작품은 예술로 인정을 받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100년전 마르셀 뒤샹이 이미 거기에 있는 독창성을 예술적 성취로서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를 <엠바오 집에서의 저녁식사> 적용하면 이 작품이 무엇을 명백히 결여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페이메이르의 다른 작품들이 가진 미적 가치는 갖고 있을 지언정, 페이메이르의 독창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즉 '예술적 가치'를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IMG_0087.jpeg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


재작년 봄, 서울 소재 리움 미술관에서 한 관람객이 전시 중인 작품을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현대 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언>의 일부인 바나나를 관람객이 먹어 치운 것이다. 그 관람객은 내용물을 먹고 남은 껍질을 다시 테이프로 벽에 고정했다.


만약 이 작품이 평범한 작품이었다면 관람객은 작품 훼손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했을 것이다.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면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언론들은 1억5천만원짜리 바나나를 누군가 먹어치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저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 <코미디언>을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분석미학적 틀에 넣어보자. 이 작품의 미적 가치는 어떠한가? 이 작품을 보면 당신의 마음 속에 '목적없는 합목적성'이 달성이 되는가? 대상 내부의 아름다운 속성이 당신에게 미적 감흥을 일으키는가?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의 놀라운 점은 바로 이 점이다. 이 작품, 카텔란의 <코미디언>은 미적 가치가 0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이 이 훼손 사건이 해프닝으로 끝나도 아무일이 없었던 이유다. 작품 훼손을 통해 이루어진 가치 손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엔 '예술적 가치'로서 이 작품을 보자. <코미디언>이 가진 가치는 뒤샹의 <샘>이 가진 가치와 비슷하다. 이 작품은 독창성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메이헤르의 <엠바오 집에서의 저녁식사>와 <코미디언>은 예술적으로 서로 정확히 뒤집힌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엠바오 집에서의 저녁식사>는 미적인 가치는 있지만 예술적 가치를 결여했고, <코미디언>은 미적 가치는 없으나 예술적 가치를 성취한 것이다.


<코미디언>에 대한 이야기는 더 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이미 충분히 길어져서 링크로 대신한다. 이번에도 긴 독후감을 마친다.



https://brunch.co.kr/@iyooha/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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