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철학 소모임 멤버인 B군이 최근 슬라보예 지젝의 <Less than Nothing>을 번역하고 있다. 번역 중간본을 채팅창에 던져서 쓱 살펴보다, 번역하는 서문에 나온 문장 하나가 번쩍하고 머리를 쳐서 잠시 딴짓을 하기로. 내 뒤통수를 치고 지나간 문장은 이러하다.
"현실의 픽션을 넘어선 곳에, 픽션의 현실이 존재한다."
1633년 종교재판소는 종교 재판에 앞서 갈릴레이에게 고문 도구들을 구경시켜 주었다. 별 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네가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너에게 이 고문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는 무언의 협박을 한 것일 게다. 효과는 확실했다. 재판관 앞에서 갈릴레이는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는 자신의 입장을 철회했다.
그리고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소를 나서며 중얼거렸다는 유명한 말,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은 이 순간 등장한다. 이 말,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은 협박과 강요로 진실을 부정하게 만들어도, 진실은 여전히 거기에서 빛난다는, 과학 혹은 어떤 진실의 가치의 확고부동함을 나타내는 잠언으로 쓰인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아시다시피 갈릴레이가 이 말을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갈릴레이가 이 말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잔인한 고문 도구들을 관람했으며, 몸서리치는 공포를 느끼고 방금 종교재판관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한 이가, 누군가 들을 수도 있는 순간에 일부러 "그래도 지구는 돈다" 같은 말을 했을까? 그 말을 들은 재판관이 "어이 거기 잠깐만," 하고 갈릴레이를 부를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체 에피소드를 볼 때엔 이 말은 너무나 이 상황에 적합하다. 아니, 이 말이 없었다면 이 에피소드가 이 시대까지 남아 구전되고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어찌 보면 갈릴레이의 재판보다 이 한 마디가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갈릴레이의 속 마음은 정말 그러했을 것이다. 내가 내 주장을 철회해도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 사건은 없었을 수 있지만, 주체로서의 갈릴레이에게는 오히려 이 말을 했다는 것이 이 사건을 설명하는 맥락상에서는 진실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 놓고 지젝은 위와 같이 말한다. "현실의 픽션을 넘어선 곳에, 픽션의 현실이 존재한다." 우리는 픽션을 받아들임으로써 현실을 더 선명하게, 높은 해상도로 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문장이 첨가됨으로 인해 갈릴레이의 에피소드는 "협박과 강요로 진실을 부정하게 만들어도, 진실은 여전히 거기에서 빛난다"는 숭고한 무엇으로 완성된다. 이제 그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진다. 이 순간 우리는 허구주의를 지지하게 된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딸아이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환원주의 물리학자처럼 말이다.
한편, 카톨릭 교회가 이 재판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은 재판으로부터 370년이 지난 1992년이다. 교회는 지동설을 2008년이 되어서야 승인했다.
뭐야, 왜 이렇게 길어졌어. 다시 일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