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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균 Oct 04. 2023

김치찌개의 이데아

김치찌개로 알아보는 포스트모던

집 앞에 김치찌개 집이 두개 있다.                                 



마나님: 요즘 유튜브를 보면 16편짜리 드라마 30분만에 줄여서 스토리 알려주는 영상들 많잖아.


나: 응.


마나님: 그렇게 보면 재밌나? 그런 영상들 숫자가 점점 느는 걸 보면 컨텐츠를 이런식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마나님: 작가로서 어떻게 생각해? <하얀 로냐프강 10분 다이제스트> 같은 영상이 있다면 말이야. 


나: 모던한 생각이네.


마나님: 모던? 


나: 누군가 정한, 혹은 사회가 합의한 작품의 올바른 감상 방법이 있다는 가정을 한 생각이니까, 모던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지. 그 방법을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것은 계몽적 태도고, 그 방법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평론적 태도고. 


마나님: 간만에 알아 듣기 힘든 소리를 하네? 


나: 감상의 이데아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이야.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하는 것이 맞다. 도중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그게 올바른 방법이다.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그 태도는 모던한 태도라는 거지. 


마나님: 그럼 요약해서 보는 방법은?


나: 작품을 감상하는 표준적인 방법은 없고, 그 방법은 각자 향유자들이 선택하는 것이다, 라는 태도는 포스트모던한 태도라고 할 수 있겠지. 그게 요약 감상일 수도 있고, 2배속 재생일 수도 있고, 그것도 귀찮아서 '하얀 로냐프강 결말'이라고 네이버에 쳐 보는 것일 수도 있겠고. 


마나님: 감상의 이데아는 없다? 


나: 포스트모던은 이데아를 부정하면서 출발해. 이데아는 그저 이상향일 뿐만이 아니라 위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포스트모던의 생각이야. 이데아에 가까운 것이 선한 것이고, 우수한 것이고, 이데아에서 먼 것이 악한 것이고, 열등한 것이고. 이렇게. 포스트모던은 이 위계를 거부해. 이런 관점에서는 정주행과 요약 감상이 모두 동등한 지위를 갖는 감상 방법이 되지. 


마나님: 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 포스트모던의 관점에서는, 예를 들어 열등한 김치찌개는 없어. 좀 더 짜고, 싱겁고, 진하고, 순하고, 시큼하고, 밍밍하고, 고기가 많고, 김치가 많은 김치찌개가 있는 거지. 


마나님: 그건 실망인데. 주주형제 김치찌개가 지금 우리가 먹는 OO김치 찌개 보다 우수한 건 사실 같은데.


나: (웃는다)


마나님: 나는 역시 이데아주의자로 남겠어. 더 맛있는 김치찌개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던따위. 그러니까 작품을 감상하는 제대로 된 방법은 있는 걸로. 


나: (웃는다)


(잔을 부딪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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