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카페에서 일단의 오타쿠 청년들과 마주쳤다
주말에 새로 발견한 카페에 앉아서, 나는 트레바리 과제책을 읽고, 마나님은 철학 입문서를 읽고 있었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네 명이 카페에 들어와 각자 음료를 시키고, 우리 근처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넷이 비슷한 또래였고, 딱히 신경쓰지 않은 외모를 가졌고(여자들에게 별로 인기 없을 것 같은 외모를 가졌고) 헐렁하고 편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앉자 마자 게임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남자A: 몬스터헌터 찐들은 월드를 인정 안해. 특히 아이스본은 몬헌으로 쳐주지도 않아. 몬헌은 그런 게임이 아냐.
남자B: 몬부심 ㅋㅋ
남자C: 가혹한걸로 따지면 다크소울이 더 가혹하지 않나?
남자A: 다크소울이나 엘든링을 그 가혹함 자체가 컨텐츠지만, 몬헌은 패턴을 파악하고 최대 DPS로 보스를 상대하는 것이 본질이야. 둘은 서로 다른 게임이지.
남자D: 맞지. 엘든링이 오픈월드를 선택한 건 자유도 때문이 아니야. 플레이어 스스로 가혹함을 경감할 수단을 주는 것이 목적이지.
마나님이 나를 빤히 쳐다보셨고, 나는 헛기침을 하고 책장을 넘겼다. 내가 모른 척 하자 마나님은 이번엔 나를 쿡 찌르셨고, 나는 다시 헛기침을 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결국 마나님은 핸드폰을 들어 내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하 그 문자의 내용.
마나님: 저분들 무슨 공통점이 있는 모임이죠? 회사는 아닌 것 같은데?
남자 중 한 명이 "그래도 괜찮아 나는 오타쿠니까. 하지만... " 이라고 말한다.
나: 오타쿠 모임. 방금 고백했네. 동호회나 게임 클랜이거나, 아마 그런 쪽일 듯요.
마나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책을 편다)
나: (씩 웃고는) 저런 남자를 골라야 해요.
마나님: (동공지진) 뭐라구요?
어느 새 그들의 대화는 건담으로 넘어가 있었다. 건담 얘기가 나오면 늘 그렇듯, 우주세기 근본주의자인 B와 수용주의자 D가 다투기 시작했다.
나: 저런 남자가 찐이에요. 착하고 돈 잘벌고 가정에 충실하고 도박 안하고 폭력 안 휘둘러.
마나님: 하지만... 너무 매력이 없는데?
나: 그게 포인트지. 그래서 저들을 못 알아봐. 잘 들어봐요, 욕도 안하고 허세도 안부려. 토론의 대상이 게임과 만화일 뿐이지, 사용하는 언어는 고급스럽잖아요.
마나님: (안경을 쓰고 남자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나: 저런 남자들이 일등 신랑감이라는 걸 여자들이 모르지.
나: 하지만 그래서 마나님께 기회가 온 거 아니겠어요? 나 20대 때 딱 저랬는데?
마나님: (현실에서 빵 터진다) 나 다행인거야?
나: 아, 예전에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 오타쿠들하고 술마시고 굴러다니던 시절 생각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