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를 처음 만났던 순간
일요일 저녁 나와 마나님의 일상은 늘 비슷하다. 아주 가벼운 저녁거리를 준비해서 밖이 보이는 테이블에 놓고, 와인을 한병 딴다. 이번 주에는 뭐가 좋았었어, 다음 주에는 이런 약속이 있어, 하며 서로의 스케줄을 맞추어 본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오랜 시간 동안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새롭게 생성되는 얘기(회사에서 새로 맡은 프로젝트, 요즘 새로 읽은 책 같은 것들) 외엔 할 얘기가 별로 없다. 그래서 옛날 얘기를 하면, 실은 이미 예전에 여러 번 한 얘기다. 고맙게도 여러 번 반복한 내 어릴 적 에피소드들을 마나님은 처음 듣는 척 들어준다. 어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 방학식 날의 추억에 대한 얘기를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내 방학식 일정은 늘 비슷했다. 함께 오락실 가자는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나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어머니 손을 잡고 버스를 탔다. 버스는 종로 어딘가에서 섰고, 그렇게 어머니와 나는 정류장에서 한 블록 정도를 걸어 교보문고에 도착한다.
방학식 날은 내겐 '방학 내 읽을 책을 사는 날'로 기억된다. 나는 어린 시절에 추리소설과 모험소설들을 참 좋아했다. 나는 해문출판사에서 나온 추리걸작선 전 시리즈를 다 읽었고, 아가사 크리스티 전집도 거의 다 읽었다. <삼총사>, <해저 2만리>, <철가면> 같은 모험 소설은 정말 닳도록 읽고 또 읽었다. 가끔 <죄와 벌>, <폭풍의 언덕>, <모비딕>, <레미제라블> 같은 고전 소설들의 청소년 문고판도 읽었다.
신중하게 한 권씩 읽고 싶었던 책을 고르면,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는 백화점 로비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는데, 나는 늘 딸기와 바닐라가 반반 섞인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아버지는 종로에 있는 회사를 다니셨는데, 퇴근 후 나와 어머니와 합류하셨다. 우리는 늘 같은 곳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간판도 없는 희한한 집이었다. 메뉴는 둘 뿐이었다. 김치찌개와 순두부찌개. 주문을 하면 현금을 선불로 지불해야 했다.
재밌는 것은 종업원들이 커다란 앞치마를 하고 있었는데, 순두부를 시킨 사람이 있으면 앞치마 주머니에서 날계란을 꺼내 탁, 하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계란 아래쪽이 살짝 찌그러지며 계란이 고정된 것을 나는 콜럼버스의 계란 보듯 매번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집은 영업을 중단한 이후에도 그 이름을 빌려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수도 없이 많은 '소공동 뚝배기집'이었다. (이 집은 간판도 없이 영업을 해서 사람들이 이렇게 불렀다)
배가 가득 차도록 저녁을 먹고 나면 아버지 어머니 손을 잡고 산책을 했는데, 산책이 끝나갈 때 즈음 아버지는 명동 성당으로 올라가는 입구 앞에서 기름에 막 튀긴 도넛을 사셨다.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된 그 집의 이름은 '케익파라'다. 당시에 명동에서 꽤나 유명한 집이었던 모양이다.
배가 터지게 김치찌개를 밥까지 말아먹고도 나는 그 도넛을 포기하지 않았다. 막 튀겨서 입천장이 홀랑 벗겨질 것 같은 도넛을, 나는 집에 돌아오는 아버지 자동차 뒷좌석에서 후후 불며 먹었다. 그 맛이 아직도...
나: 그 맛이 아직도 기억나. 바삭한 껍질을 깨물고 나오면 안에 있던 기름과 단팥이 한꺼번에 쏟아지는데...
마나님: 우와, 기름하고 단팥이 한꺼번에 쏟아진다니... 그래서?
나: 쏟아...
마나님: 쏟아...?
나: ... 니체.
마나님: 응?
그 순간 어떤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었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명동 끝자락에 있었던 도넛 가게, 그 집에서 가져온 도넛의 맛을 상상하는 순간 어떤 목소리가 생생하게 플래시백 됐다.
어머니: "신이 죽었다고 하는 철학자도 있지. 니체라는 철학자야."
나: "신이 죽어요? 어떻게 죽어요?"
어머니: "어떻게 죽었는지는 엄마도 모르겠어. 니체는 신이 죽은 세계에 대해 얘기하는데, 그래서 니체는 허무주의자라고 불려."
나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한강 다리로 올라가는 길이었는지, 복잡한 인터체인지가 보였다. 초등학생의 깜냥으로는 신이 죽었다는 말이 어떤 말인지 이해할 도리가 없었다. 신이 죽기 위해서는 먼저 신이 살아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신은 생명을 가졌었다는 말일까? 신의 죽음이 대체 무엇에 대한 비유인지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며칠 전 칸트를 재밌게 읽었다는 얘기를 SNS에 올리니, 존경하는 업계 선배님이 "최애는 하나뿐이니 칸트와 니체 둘 중 하나를 결정하라"며 농을 거셨다. 거기에 나는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는 니체고,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는 푸코고, 가장 재미있는 철학자는 라캉이고, 제일 숭고한 철학자는 칸트다"라고 답글을 달았다. 그렇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는 니체다.
내가 만든 독서모임 [인생에 보탬은 안되지만]의 이름은 역설적이다. 이 이름은 우리가 읽는 책들이 인생에 보탬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언뜻 인생에 보탬이 안 되는 것 같은 이 책들이 우리를 니체의 초인을 향해 인도해 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의식처럼 치르는 행사가 있다. 우리 독서 모임은 각 시즌의 마지막 날, 우리가 '초인 테이블'이라 부르는 빨간색 테이블 앞에 앉아 니체와 초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난 10년간 철학을 읽는 내내 니체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의 자리에 있었는데, 도넛이 플래시백 시켜주기 전까지, 정작 나는 이 사실을 거의 40년을 잊고 있었다. 내게 처음으로 니체를 알려준 사람은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는 박찬국 교수님이나 예도 선생님도 아니고, 코치인 B군도 아니었고, 바로 내 어머니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책장에는 헤르만 헤세, 오헨리,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고전 소설가들의 책부터, 이문열, 조성기 같은 당대 이름난 한국 소설가들의 저작들, 라이너 마리아 릴케, T.S. 엘리엇의 시집. 사르트르나 스피노자의 철학서, 법정 스님의 에세이도 있었다. 어머니는 다독가셨다.
니체를 허무주의자로 읽는 것은 실은 니체를 절반만 읽는 것이다. 니체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라 허무주의의 극복자에 가깝다. 신이 죽어 없어진 허무의 시대를, 우리 각자가 신에게 의존하지 않는 초인이 되어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니체다. 그러니 다독가셨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니체에 대한 어머니의 이해는 그렇게 깊지 않으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뭔가 궁금해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어떤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그 말씀을 하셨을 거다. 그리고 어머니의 의도는 훌륭하게 동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이렇게 니체에 대한 말씀만은 내 무의식에 남아, 플래시백 될 때를 40년 동안이나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 대화 외에 내가 방학식 날 하고 들었던 대화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생각이 없었는데, 문득 어머니께 이 에세이를 보여드리기로 했다. 혹시 이 날 기억하세요? 하고 말이다. 40년이나 된 기억인데, 뭐라고 하시려나. 하하.
(보너스) 혹시 니체가 선언한 신-죽음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은 분이 있다면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https://brunch.co.kr/@iyooha/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