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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균 Oct 12. 2023

과학에 대한 세가지 태도

<쿤&포퍼: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장대익




일단 추천을 먼저 하고 시작한다. 이 책은 아주 훌륭한 과학철학 입문서다. 과학철학이 궁금하신 분은 이 책으로 시작하면 될 것 같다. 


과학철학은 무엇일까? 과학이면 과학이고 철학이면 철학이지 과학철학은 뭔가? 싶을 분도 있을 수 있어 과학철학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겠다. 과학철학은 과학에 대한 철학이다. 과학철학은 물리학, 생물학, 화학 등 각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 그 자체를 철학의 대상으로 한다. 즉 과학철학은 이렇게 묻는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적이란 것은 어떠한 것인가?”, “과학적 진리는 있을 수 있는가?”


과학적 진리는 있을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은 과학적인 진리일까? 다들 알다시피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코페르니쿠스 이전 시절은 과학적으로 미개했던 시절이라 그랬을 뿐이고, 고도로 발달한 현재의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의 수백 년 간의 연구 결과가 증명하고 있는 바,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은 이제 진리의 지위를 획득했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빛 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는 명제는 어떤가? 이것도 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 


전통적으로 진리를 대하는 세가지 철학적 관점이 있다. 그것은 절대적 관점, 상대적 관점, 회의적 관점이다. (예전에 전회사 이사회 의장님과 식사를 하다, 비슷한 얘기를 게임에 적용해서 개똥철학을 지껄인 것이 <크래프톤 웨이>에 실린 적이 있다. 아래에 링크하겠다) 


절대적 관점은 “진리는 있다”고 한다. 있다고 했지만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철학자 마다 모두 다르다. 탈레스는 물이라고 하고, 플라톤은 이데아라고 하며, 그리스도교는 신이라고 한다.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것으로 존재하는 나, 헤겔의 이성, 구조주의 구조, 마르크스의 계급 같은 것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진리라고 주장한다. 절대적 관점은 철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뉴턴의 절대공간과 절대시간, 아인슈타인의 시공간과 상대성이론 등은 과학에서 오랜 시간동안 절대적 관점에서 진리로 군림해왔다. 


상대적 관점은 “진리는 없다”고 한다. 정확히는 “그때 그때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대주의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유명론, 경험론, 포스트모더니즘이 여기에 해당한다. 과학은 ‘과학은 자연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관측 장비와 자연의 상호작용을 파악하는 것에 불과’하며, ‘우리는 자연을 영원히 알 수 없다’고 닐스 보어가 선언한 순간 상대주의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예컨대 뉴턴 세계관에 맞서, 양자역학은 상대주의 세계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회의적 관점은 “상관 없다”고 하는 태도를 말한다. 혹은 “진리가 있건 없건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라고 말하는 태도이다. 회의주의적 철학자의 맨 앞쪽에는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철학을 모조리 깨부순 니체가 있다. 


그렇다면 과학에 대해 이 세가지 관점을 적용해 보면 어떻게 될까? 


절대적 관점은 “과학적 진리는 있다”고 할 것이다. 과학적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대표적인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반증주의’라는 개념을 과학에 도입한다. 포퍼에 따르면 반증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과학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든 백조는 하얗다’라는 명제는 과학적이다. 하얗지 않은 백조가 발견된다면 이 명제가 반증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새는 알을 낳는다’, ‘모든 금속은 전기를 전도한다’ 등의 명제도 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신은 존재한다’, ‘자유의지는 있다’, ‘UFO는 있다’는 과학적이라 할 수 없다. 반증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편, 이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지구는 평평하다’는 명제는 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할 수 있기 때문인데, 마찬가지로 포퍼의 논리대로라면 천동설 또한 과학적이다. 다만 반증되었을 뿐이다. 


상대적 관점은 “과학적 진리는 없다”고 할 것이다. 대표적인 상대주의 과학철학자는 토머스 쿤이다. 쿤은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과학자 집단이 공유하는 신념, 가치에 불과하며, 그래서 영원한 과학은 없고 시대가 바뀌면 과학도 바뀐다고 말한다. 쿤에게 있어서 과학자들이 하고 있는 과학이라는 행위는, 과학자 집단이 공유하는 신념에 잘 부합하는 예제 찾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야말로 상대주의적이다. 수천년 동안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천동설)은 과학이었고, 그 후 우리는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과학이라고 믿고 살고 있다. 뉴턴 역학도, 상대성원리도, 양자역학도 마찬가지다. 패러다임은 영원하지 않으므로, 아마도 미래 사람들은 우리를 천동설을 믿고 산 중세의 우매한 인간들과 비슷한 취급을 할 것이다. 


회의적 관점은 “상관 없다”고 할 것이다. 회의적 관점의 과학철학은 파이어벤트가 주장한 이론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론다원주의는 과학자들에게 어떠한 규범도 제시하지 않는다. 과학철학이 과학자들의 창조성과 상상력을 방해하는 훼방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바로 '방법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파이어벤트는 '과학에 인식적인 특권을 주어서는 안되며, 다른 지적 전통들도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창조과학, 점성술, 초심리학, 마술, UFO학까지 과학의 배양 접시에 놓이게 된다. 실제로 파이어벤트는 '학교에 마술을 허하라!'고 한다. 그는 아나키스트였다.


이 책은 논리실증주의, 귀납주의, 반증주의, 포퍼, 쿤, 파이어벤트 등 과학철학의 중요한 꼭지들을 모두 설명한 후, 마지막으로 제거주의적, 혹은 허구주의적 관점을 설명한다.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으로 유명해진 사회구성주의의 주장이다. 이 주장은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인데, 이 부분은 궁금한 분은 직접 책을 찾아보시기를 권한다. 정말 재미있지만, 소개하기에 내용이 너무 방대하다. 


우리는 바야흐로 과학주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알파고가 이세돌을 쓰러뜨리는 것을 목도했다. 우리는 Midjourney가 사람처럼 그림을 그리고, ChatGPT가 사람처럼 글을 쓰는 시대를 산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현실이 되었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선 로봇이 서빙을 하고 있다. 세상은 과학이 이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세상에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과학’일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한 발 떨어져서 보면 과학 역시 완전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이 글의 서두에 썼던 문장을 다시 가져와 보겠다. 


과학적 진리는 있을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은 과학적인 진리일까? 다들 알다시피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코페르니쿠스 이전 시절은 과학적으로 미개했던 시절이라 그랬을 뿐이고, 고도로 발달한 현재의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의 수백 년 간의 연구 결과가 증명하고 있는 바,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은 이제 진리의 지위를 획득했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빛 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는 명제는 어떤가? 이것도 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 이 명제를 아인슈타인의 국소성의 원리라고 하는데, 2022년 노벨 물리학상은 빛 보다 빠른 물질(정확히는 현상)을 발견해 아인슈타인의 국소성 원리를 깨뜨린 물리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빛 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 는 명제는 이제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천동설과 같아졌다. 그 명제는 우리가 배운 옛 교과서, 혹은 옛 패러다임 속에 있는 것이다.



https://blog.naver.com/iyooha/222892136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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