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균 Jan 08. 2024

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는 솜씨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유시민

ⓒ WOOLTARI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완독. 점심 시간에 짧은 독후감을 남긴다. 


역대 한국 작가들 중 가장 아름다운 문체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혼불>을 쓴 故최명희 작가와, (여러 번 페북 등지에서 개인적인 팬심을 흘렸던) 김훈 작가다. (김훈 작가의 경우 전기 김훈과 후기 김훈의 문체가 많이 다른데, 나는 전기 김훈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시어(詩語)만으로 소설 전체를 꾸미는, 저런 신계에 속한 작가들의 문체는 닮고 싶어도 닮을 수 없어서, 나는 현실적으로는 채사장과 유시민 작가의 정갈하고 단아한 문체를 가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채사장과 유시민 작가의 책은 나올 때 마다 사서 읽고 있다. 


아마 <알쓸신잡>에서 김상욱 교수나 정재승 교수를 만난 것이 큰 자극이 되었나 보다. 유시민 작가가 김상욱 교수에게 “김상욱처럼 따뜻한 사람에게 배웠다면 과학을 다정하게 대했을텐데”라고 소회를 밝힌 것은 유명하다. (김상욱 교수님의 저서에 여러 번 유시민 작가가 언급된다) 그런 유시민 작가가 이번엔 과학 책을 썼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에서 유시민 작가는 뇌과학, 다윈주의, 생물학, 화학, 양자역학, 우주론, 수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들을 얕게 소개한다. 하지만 그저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는 않는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유시민은 과학의 여러 분야를 인문학의 세부 분야에 하나씩 매칭시키고, 그들을 비교하고 통찰해서 재밌고 놀라운 결론들을 도출해 낸다. 


예를 들어 유시민 작가는 신경과학과 경제학을 옆에 놓고 비교하고, 뇌과학을 칸트의 물자체에 연결한다(이 논의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논의고, 비슷한 주제로 글도 여러 번 썼었다) 양자역학의 결론을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불교의 통찰과 겹쳐 보고, 다윈주의를 좌파(진보진영)와 우파(보수진영)가 각각 어떻게 이용해서 자신들의 논리를 보강하는지 밝힌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사회 생물학을 마르크스주의와 대결시키는 부분이었는데, 이 부분은 궁금한 분들은 꼭 찾아보시기를 바란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거침없이 문과 자폭개그를 터트리는 유시민 작가의 태도가 다정하고 유쾌해보였다. 그가 얼마나 지식과 인문학을 사랑하는지도 알 수 있었고, 평생을 그랬듯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 낭만적인 태도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놓인 책을 집은 것은 개인적으로는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지식을 쌓을 생각으로 이 책을 대하는 것 보다는, 과학을 절묘하게 인문학에 연결시키는 유시민 작가의 솜씨를 보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필요 없는 기대를 피하기 위한 사족: 저는 유시민 작가의 정치적 신념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23년 독서 결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