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불패의 법칙>, 알베르토 사보이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시점에 좋은 책을 읽었다.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 완독. 난데 없이 비즈니스 관련 서적을 읽었다. 프로젝트를 새로 준비하는 단계에 동료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이 책은 왜 최고의 팀이 최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데 늘 비즈니스는 실패하는가? 라는 오래되고 어려운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늘 시장을 오해하는 이유를 밝히고, 시장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프리토타이핑'이라고 하는 접근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을 간단하게만 요약해 보겠다.
당신은 판교 테크노밸리에 근무하는 개발자다. 볕 좋은 점심시간에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으러 쏟아져 나온 많은 사람들을 보다가 당신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왜 테크노밸리에는 서점이 없을까? 독립 서점을, 특히 개발과 IT에 초점을 맞춘 서점을 만들면 대박을 치지 않을까?
문득 당신은 교보문고 시니어 매니저 출신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기억이 났다. 개발 전문서를 늘 읽는 당신과 교보문고 매니저가 의기투합하면 정말 좋은 서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친구에게 아이디어를 말했더니 친구가 점포를 계약하기 전에 먼저 시장조사를 해보자고 한다. 당신은 구글폼으로 간단한 설문조사를 만들었다. 테크노밸리에 개발서적 전문 서점이 생긴다면 이용해보시겠습니까? 당신은 테크노밸리 개발자들이 모인 단톡방에 폼을 올리는 동시에 인쇄물을 만들어 점심시간에 실제로 만난 사람들에게(서점에 직접 접근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에게)도 설문을 받았다.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50%의 사람들이 서점에 관심이 있다고 했으며, 35%의 사람들이 최소 주 1회 서점에 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 35%의 사람들 중 절반이 한 달에 최소 두 권의 책을 구입한다고 말했다.
당신은 계산기를 두드린다. 테크노밸리의 근무자의 35%가 두 권은 아니더라도 한 권의 책이라도 구입한다면 매출은 얼마인가? 당신은 원하던 숫자 이상을 얻었고, 결과를 들은 친구는 당장 점포를 계약하자고 한다.
당신이 점포 계약을 맡고, 친구는 책 공급을 맡았다. 점포를 2년 계약하고, 인테리어 공사를 했으며, 손님들의 동선을 고려하여 매대를 배치하고(교보문고의 노하우를 활용하여!) 최고의 책들을 큐레이션했다(당신의 노하우를 활용하여!) 성공은 눈 앞에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점포를 오픈날이 되었다.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그렇다. 우리는 늘 경험한다. FGT에서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았던 게임은 늘 시장에서 참패한다. 설문조사에서 반드시 이 게임에 과금할 거라고 말했던 유저들은 과금하지 않는다. 친구에게 꼭 추천할거라던 유저는 친구와 함께 늘 하던 LOL을 할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 모든 설문조사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스스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사람에겐 진심이 없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에 답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 그래. 근처에 서점이 있으면 좋지. 당장 필요한 책을 당일에 구입할 수 있고 말이야. 생겼으면 좋긴 하겠어." 하지만 그가 그 서점을 이용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 대신 저자는 이렇게 해보라고 권한다. "당신이 이 서점에 관심이 있다면 이후 정보를 받은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세요.", "당신이 이 서점에 관심이 있다면 이후 정보를 받을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주세요." 이렇게 하면 그의 본심을 알 수 있다. 개인정보는 분명히 비용이다. 이 지점에서 사용자는 비용을 지불한 것이다. 진심임을 고백한 데이터는 의미가 있다.
'프리토타이핑'은 이러한 접근에서 한 발 더 나간 기법이다. 매장을 계약하고, 수천권의 책을 주문하고, 인테리어를 하고, 매대를 배치하고 오픈 홍보를 하기 전에, 즉 수억원의 돈을 쓰기 전에, 매장을 실제로 테스트해보는 것이다.
테크노밸리 상가 건물 1층에는 늘 커피숍이 있다. 그리고 늘 어딘가는 인테리어 공사중이다. (대개는 커피숍이 망한 곳에 커피숍이 들어온다) 공사를 막 시작한 점포의 계약자를 찾아가 열흘의 임대료를 내고 전대차 계약을 한다. (임차인에게 다시 점포를 임차하는 것이다) 그리고 외부만을 마감하고, 간판을 달아둔다. "테크노밸리 북스토어", 하지만 책은 한 권도 사지 않는다. 가게 안 책장에는 당신이 집에서 가져온 당신의 개발 서적 수십권 정도가 전부이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당신은 사실은 가게 오픈을 준비중이라고 설명하며, 간단한 선물(간식 같은)을 제공하고 위와 같은 설문을 받는다. 바깥에서 친구는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숫자와, 간판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숫자와, 실제로 문들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숫자를 센다. 당신과 친구는 수억원이 아니라 단지 수십만원 수준에서 매장을 열었을 때의 상황을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기법들을 프로토타입에 앞서(pre)있다는 의미에서 '프리토타이핑(pretotyping)'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껏 읽었던 비즈니스 서적들 중 가장 좋았다. 여기에 있는 이야기들은 당연하지 않았다. 내가 업력 내내 놓치고 있었던 것들, 실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 애써 외면해왔던 것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해 주었다. 없는 시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우를 더는 범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정말 적은 인원으로 오래 준비할 것이다. 때가 됐으니 제안서를 쓰고, 시간이 지났으니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식으로 시장에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디어를 충분히 다듬고, 숙성시키고, 나 스스로 납득하는 무엇을 손에 쥔 후 만들겠다고 할 것이다.
타임라인의 모든 분들 께 이 책을 권한다. 내가 철학서나 과학서가 아닌 책을 추천하는 것은 처음 아닌가? 믿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