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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Jan 09. 2021

영감에 불 붙이기

좋은 글을 오래 쓰고 싶은 나에게

야외에서 성냥으로 장작에 불을 붙여본 적이 있는가?

버튼만 누르면 되는 인덕션이나 손잡이만 잡고 돌리면 되는 가스레인지와 달리 야외에서 불을 붙이는 것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고 한 번에 쉽게 붙지 않는 수가 많다. 바람이 불거나 나무에 물기가 많으면 불이 붙었다가도 금세 꺼져버린다. 처음부터 큼직한 통나무에 불을 붙여서 그 불이 활활 타오르기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그러니 주변 여건과 땔감의 상태를 점검해야 하고 단계를 거쳐야 한다. 잘 마른 솔잎은 금방 불이 붙지만 순식간에 타서 없어지므로 불쏘시개 역할로 적합하다. 그다음은 잔 나뭇가지, 좀 더 굵은 나뭇가지, 장작으로 불이 옮겨 붙게 해야 오래 불을 지필 수 있다. 한번 불이 붙은 장작은 오래 불을 피울 수 있지만 이 역시 중간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른 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불 지피는 일과 같다. 흔히 어느 날 갑자기 마른 장작에 불이 활활 타오르듯 영감의 세례를 받기를 기대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피카소나 베토벤처럼 후대에 길이 이름을 남긴 위대한 예술가들도 다작으로 유명하다. 널리 알려진 그들의 작품들은 명작임에 틀림없지만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숱한 작품들이 쓰레기통에 처박혔을 것이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쓰레기 같은 글들을 헤아릴 수 없이 쓰는 과정이 좋은 글을 오래 쓰기 위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 내 글이 형편없다고 해서 쓰기를 멈출 이유가 없다. 처음부터 인덕션이나 가스레인지 같이 타고난 작가가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바람 쌩쌩 부는 허허벌판에서 나뭇가지들을 주워다가 자신의 몸으로 바람을 막으며 간신히 불을 붙이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한번 불을 붙이기도 어렵지만 그렇게 붙은 불을 계속해서 잘 살피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글쓰기도 멈추지 말고 꾸준히 쓰면서 도약과 성장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 불을 붙여야 잘 붙는지, 불을 붙이는 땔감을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글쓰기에도 자신이 언제, 어디서 글을 써야 잘 쓸 수 있는지, 어디서 글감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찰이 필요하다. 무작정 덤벼들었다가 힘만 빼기보다는 일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생각만 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불을 잘 지피는 법에 대해 이론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것보다 실제로 불을 잘 지필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글쓰기 계획을 세우되 자신이 실제로 글 쓰는 행위를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에서 땔감 찾듯 글감을 찾는다. 가만히 서서 찾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생각과 경험의 숲으로 깊이 들어가 봐야 한다. 때론 ‘찾았다!’ 싶은 것이 막상 불을 붙여 보면 피시식 거리며 금세 꺼져버린다. 불은 꺼져 가는데 어디서 무얼 찾을지 몰라 막막해할 때가 많다.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멀리 나갔다 돌아오면 불 꺼진 지 오래된 검은 재만 남아 있다. 어쩌다 잿더미 속에서 희미한 불빛과 연기를 발견하면 영혼을 끌어다 숨결을 호호 불어넣는다. 붙어라 붙어라 제발 다시 붙어라.


영감의 불.

나의 생각과 느낌이 위대한 예술가의 그 영감과 다를지라도 조그맣게 피어오르는 불도 불은 불이다. 내가 피어 올리는 불이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성화(聖化)나 세상을 바꾸는 횃불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덥히는 따뜻한 군불이 되기를 바란다.


© worldsbetweenlines,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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