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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Mar 21. 2021

먼 하늘의 은하수를 보며 걸어가는 이들을 위해

그는 목발을 짚고 별로 간다 - 이산하

최근에 언론을 통해 아래 시를 처음 접했다. 알고 보니 이산하 시인은 내 고향 제주의  4·3사건의 비극적 진실을 담은 서사시<한라산>을 발표한 일로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1년 남짓 옥살이까지 했다고 한다.


맞바람 치는 백척간두를 목발을 짚고 오르는 심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나야말로 아무런 힘이 없지만 마음으로 기도하고 응원한다.  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며 걷고 있는 이 시대의 쇠똥구리들을 위해...



그는 목발을 짚고 별로 간다
- 바닥을 치면 떠오른다(니체)

                                                       이산하


이제 그가 목발을 짚고 다닌 지 세 달쯤 되었다.
목발을 허공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나날이었지만
두 겨드랑이에 바짝 밀착해 지름길만 골라 걸었다.
두 다리는 한 발씩 번갈아 딛고 목발은 동시에 딛는다.
번갈아 걸으면 한 발은 땅을 짚으며 지탱해야 하고
동시에 걸으면 두 발은 잠깐씩 공중에 떠 있어야 한다.
언제나 다리는 번갈아 걷고 목발은 동시에 걷고자 한다.
처음에는 목발과 다리가 서로 어긋나 자주 휘청거렸고
나중에는 호흡에 익숙해져 오히려 길이 길을 불러왔다.
어쩌면 그가 그 길을 따라 목발을 짚고
별들을 향해 걸어간 것도
모두 다리와 목발의 계급적 분열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른다.


발목분쇄 사고가 일어난 날 아침 그는 조간신문에서
쇠똥구리가 캄캄한 밤 은하수를 보며 방향을 찾는다는 것과
쇠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짧은 직선경로를 선택해
자기 집으로 신속하게 굴리며 이동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날 밤에도 별빛은 강처럼 흐르고 있었다.
홀로 눈부시다 지친 별들이 함께 반짝이는 은하수였다.
그는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는 그 아찔한 순간에도
간혹 목발을 짚으며 휘청거릴 별들의 지름길을 생각했다.


그는 오늘도 평소처럼 목발을 짚고 별들을 향해 걸어간다.
아파도 가야하고 아프지 않아도 가야하는 길
쇠똥구리가 지나간 길들은 매순간이 백척간두였다.
그 아찔한 순간이 진일보의 찬란한 순간이라면
무릇 바닥을 치고 떠오른 것은 모두 계급적 분열이리라.
이제 그는 두 개의 목발을 나란히 연결해 직선경로를 만든다.
쇠똥구리가 먼 하늘의 은하수를 보며 목발을 타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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