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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Apr 20. 2021

프로필 사진 안부

‘벌써 손녀를 보셨구나.’

‘둘째가 초등학생이 되었네?’

‘드럼을 배웠구나’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못 알아볼 만큼 달라졌네’

‘절에 다녔었는데 이제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나 보다. 무슨 일로 종교를 바꾸게 되었을까? 여하튼 신앙이 생활의 힘이 돼 주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우연히 카카오톡 친구들(정작 이 중에 진짜 ‘친구’는 몇 명 되지 않는다)의 프로필 사진들을 보았다. 초성 ㄱ부터 ㅎ까지. 은퇴하신 한 선배 선생님은 늘 자랑스러워하시던 아드님이 어느새 장가를 가서 딸까지 낳았나 보다. 손녀 보시는 맛에 사시는지 온통 손녀 사진들이다. 아이 사진 찍으실 때 그분이 얼마나 행복한 표정을 지으셨을지 눈에 선하다.


고등학교 때 내 하숙방 이불속에서 몇 시간이고 같이 만화책을 읽었던 친구는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나 보다. 아이가 엄마에게 쓴 편지,

“엄마, 벌써 내가 2학년이 되서 공부도 잘하라고 마니 시키는 거 고마워요.”

하하하! 이 친구, 본인은 공부 안 해 놓고 자식들한테는 공부 엄청 시키고 있나 보다. 당장 만나거나 전화를 걸어,

“웃기고 있네!”

라고 놀리고 싶지만, 그러고 보니 우리가 연락이 끊긴 지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버렸다. 지금 갑자기 연락하기도 어색하다. 이 친구의 결혼식 날에 우리 아이 유치원 재롱잔치가 있었다. 결혼식에 꼭 가겠다고 약속해 놓고 재롱잔치에 빠지기도 아쉬워서 유치원 마당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고민하다가 결국 친구보다 엄마의 역할을 택했는데 지금도 그것이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각자 아이 키우며 살기 바빠서 여유롭게 만나서 차 한 잔 할 새도 없이 어느새 이만큼 시간이 흘러버렸다.


중학생이던 제자들은 어엿한 어른이 돼서 드럼도 배우고 여행도 다니나 보다. 거리에서 마주치면 못 알아볼 만큼 키도 크고 얼굴도 달라졌다. 사춘기를 정면 돌파하던(무진장 흔들리면서) 청소년들이 이제는 한결 표정이 여유로운 청년들이 되었다. 그들이 성인이 돼서 떠올리는(떠올릴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나는 어떤 모습, 어떤 느낌일까? 내가 그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살짝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과분할 것이요, 인상을 잔뜩 찌푸리거나 가슴 한켠이 아프진 않기를 바란다. 어쩌다 이제 다시 만난다 해도 내가 그들에게 가르쳐줄 것이 있을까? 지식은 나보다 더 많이 갖추었을 것 같다. 새로운 시선과 도전의 자세 등 내가 배울 점이 더 많을 것 같다. 제자들의 눈을 의식했을 때,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면 좋을지 고민하게 된다.


고향 친구는 어릴 때부터 종교가 불교였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 대해 오히려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었는데 지금은 사진과 글귀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가득하다. 친구의 얼굴에 풍파의 흔적이 남았다. 그럼에도 그 친구가 감사하며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종교의 힘이었나 보다. 다행스럽고 감사할 일이다.


한때, 한 데 어우러져 살았지만 이제는 흩어져서 각자의 삶을 산다. 모든 사람과 다 잘 지낼 수는 없었기에 그중 누군가는 다시 만나면 불편할 것 같다. 스스럼없이 편하게 지내고 서로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들도 떨어져 지낸 세월이 두터워진 만큼 거리감이 생겨서 새삼스레 연락해서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락처 목록에 있지만 정작 평소에 연락하는 사람들은 손에 꼽힌다. 그럼에도 이 밤, 진심을 다해 빌고 싶다. 나를 아는 사람들, 내가 오늘 기억하는 사람들 부디 잘 지내기를... 오늘 밤도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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